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인사 Jun 17. 2020

깨달음

결국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다.

법륜 스님의  말씀이  좋아

법륜 스님의 책을 한 권 더 읽었다.


‘깨달음’이라는 책응 통해 얻게 된,

또 다른 깨달음들을 적어본다.

[깨달음 _ 법륜 스님 저 _ 정토출판]


1)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죽기 살기로 달려가고 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숲 속 동물들처럼 우리는 모두 남이 달리니까 나도 따라 달린다. 따라 달리지 않으면 나만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 길이 죽으러 가는 길인데도 남보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애를 쓰고 달린다. 이렇게 거대한 무리 속에서 정신없이 달리며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며 받는 상처가 지금 우리의 괴로움이며 갈등이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무엇 때문에 가는지 알고 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 길이 죽는 길이라면 아무리 모든 사람들이 간다 해도 나는 가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힘을 다해 달린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 해도 그만두고 돌아서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살 길이 열린다.


2) 괴로움을 벗어나는 법

 우리는 괴로울 때 누군가를 탓한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 남편이 술을 먹어서, 직장 상사가 꾸중을 해서...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괴롭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마음 관리를 잘하면 괴로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건강하면 병균이 있어도 병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면 병의 원인을 알고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뿌리를 뽑는 방법은 이 병이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깨우치는 순간 마음의 병은 단박에 낫는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괴로움에서 즉시 벗어날 수 있다.

 괴로움의 실체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순간순간 미망에 휩싸여 괴로움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괴로움의 바다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간단하다. 괴로워할 만한 그 어떤 것도 본래 없다는 이치를 알면 된다.


3) 자기 방어벽

 자기 방어벽이 없는 사람은 ‘노래 한번 해봐요’라고 시키면 ‘예’하고 벌떡 일어나 생각나는 대로 동요를 부르든 가요를 부르든 한다. 하지만 자기 방어벽이 있는 사람은 노래를 불러보라 하면 자기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다며 뒤로 뺀다. 그래도 해보라고 권하면 몇 번을 거절한 뒤에야 마지못한 듯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왜 그럴까?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노래 못한다고 흉보지나 않을까?’하는 이 생각이 자기 방어벽이다. 이런 사람은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자꾸 그런 것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특별한 모양과 특별한 지위의 옷을 입게 되면 그것이 마음공부를 방해하는 장애가 된다. 남들이 자꾸 불러주고 떠받들고 공경하고 대접해 주면 자기가 마치 무슨 대단한 존재인 양 착각하게 된다. 그러면 자기 방어벽이 더 단단히 쳐지고, 결국 자기만 손해고 불행해진다.

 수행은 자기를 온전하게 살리는 길이고, 무엇이라고 나를 모양 짓지 않는 일이다. 내가 길가에 핀 한 송이 꽃처럼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알면 어디 가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무슨 일을 해도 아무런  불편 없이 잘 살 수 있다.


4) 인연법

 돌은 물에 넣으면 가라앉고 기름은 물 위에 뜬다. 물보다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위로 뜨는 것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이 나는 것,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 이런 자연의 원리를 인연과 라고 한다.

 이런 인연과의 법칙인 인연법은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알든 모르든, 믿든 안 믿든 상관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법칙이다. 나쁜 짓을 해놓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인연법에 어긋난다. 콩 심어놓고 팥 나기를 바라는 것, 돌이 물에 뜨기를 바라고 기름이 물에 가라앉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인연법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인연과에서 ‘인’은 직접적인 원인을 말하고 ‘연’은 간접적인 원인, 조건을 말한다. 콩 씨앗이 인이라면 수분이나 흙, 거름, 햇빛, 공기 등은 연이다. 씨앗은 흙, 물, 공기 등과 만나야 싹이 트는 것처럼, 인과 연이 만나서 ‘과’를 만든다.


5) 사랑이 왜 미움이나 슬픔으로 바뀌는가

 오늘날 우리의 사랑은 어떠한가? 상대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사랑이기보다는 소유욕, 탐욕, 아집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랑은 언제든지 미움이나 슬픔으로 바뀌기 십상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랑은 곧바로 미움으로 바뀐다.

 사랑이 왜 미움이나 슬픔으로 바뀌는가? 그것은 사랑이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닌, 상대를 자기 식대로  소유하려는 아집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은 아주 쉽게 고통으로 바뀐다.

 나는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내 고집으로 그에게 무엇인가를 윽박지르고 있지는 않는가?


6)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

 남이 내 뜻에 순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누가 나에게 자기 뜻에 따라주기를 원할 때 기꺼이 응해 주기는 사실 어렵다. 이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고 화가 생겨난다.

 상대가 내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순종하라, 복종하라’는 생각으로 억압하게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말을 안 들으면 폭력을 행사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자신의 뜻을 이해해 주지 않으면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다.

 또 반대로 남이 내 뜻대로 잘 따라주면 사람이 교만해져서 아무 데나 가서 남을 부리려고 한다. 상대의 생각이나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내 뜻대로 지도하고 설득하려 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상대의 잘못을 따지거나 책망하고 훈계하는 태도로는 결코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뜻을 맞추어 나가는 자세, 뜻이 다른 이를 이행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교만을 없애는 최고의 수행이다.


7) 과보를 바라지 마라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전혀 없는데도 좋은 일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배신당했다’는 말은 내가 너를 도와주었는데 네가 어떻게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느냐는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이는 과보를 바라는 데서 비롯된 원망심이다. ‘절에 가서 보시하고 기도했는데 효험이 없더라’는 말도 과보를 바라고 한 기도였기 때문에 생긴 원망심이다.

 무엇인가를 바라면서 베풀었기 때문에 내 뜻에 차지 않는 대가가 돌아오면 원망심이 생기는 법이다. 공덕을 바라는 마음은 뭔가를 도모하기 대문에 반드시 괴로움을 동반하게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풀 때에도 도모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자식에게 섭섭하여 ‘내가 너를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 네가 내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부모 자식, 친구, 친척, 이웃 사이에서 좋은 일을 하고도 오히려 나쁜 결과를 빚는 일이 많은 것은 베풀었다는 생색내는 마음 때문이니, 모쪼록 공덕을 지었거든 그 마음 없이 베풀어야 할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깨달음이란 책을 통해 내가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결국 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결국은 내가 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모두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이대로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