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기초다
‘공부머리 독서법’을 읽었다.
독서의 중요성을 알기 쉽게 설명해 준
‘공부머리 독서법’을 다시 읽어본다.
사교육을 받으면 읽고 이해할 필요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강사의 설명을 듣고,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시 풀면 되죠. 읽고 이해하는 공부가 아니라 듣고 이해하는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듣고 이해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일단 시간이 너무 많이 듭니다.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면 10분이면 끝날 공부도 강사의 설명을 들으면 1시간이 걸립니다. 쉬운 대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공부법인 셈입니다.
사교육의 두 번째 근본적인 결함은 ‘읽고 이해하는 경험을 극단적으로 줄인다는 점입니다. 사교육을 많이 받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은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단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합니다. 일주일 내내 학원에 가기 때문에 남는 시간은 놀아야 합니다. 그 놀이에 당연히 책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부모님들 역시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는 건 알지만 우선순위에 둘 정도는 아닙니다. 학원에 밀리고, 숙제에 밀리고, 스마트폰에 밀려 독서는 늘 뒷전입니다. 이렇게 터무니없이 독서량이 부족한데 공부마저 ‘듣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읽기 능력을 훈련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중학생이 됩니다. 수업을 들으면 뭔가 알 것 같은데 교과서를 펼치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상태에 빠지는 거죠. 이것이 바로 초등 우등생 70~80%가 중학생이 되면서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뛰어난 독서가이지만 독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학교 공부에 의욕이 없고, 목적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로는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스티브 잡스의 초등학교 성적표에 적힌 평가입니다. 잡스는 초등 3학년 때까지 상습적으로 학교를 빼먹는 문제아였습니다 당연히 성적도 나빴죠. 교과 지식의 관점에서 보자면 잡스는 형편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잡스가 달라진 것은 초등 4학년 때였습니다. 담임이었던 힐 선생님의 배려와 관심이 잡스의 마음을 움직인 덕분입니다 잡스는 힐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우등생으로 변신했습니다. 잡스의 학습능력에 깜짝 놀란 힐 선생님은 잡스에게 ‘수학능력(학문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평가’를 받게 했습니다. 잡스의 수학능력은 고등 2학년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초등 4학년이었던 잡스는 고등 2학년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가졌던 겁니다. 고등 2학년 학생이 초등 4학년 교실에 앉아있었던 셈이니 다른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잡스는 ‘사기 캐릭터’였던 거죠. 잡스가 이런 수준의 언어능력을 갖게 된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독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덕분입니다. 독서만큼 언어능력을 확실하게 끌어올려주는 방법은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 몇 점을 받느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아이가 또래 연령 대비 어느 정도의 언어능력을 갖추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언어능력이 높아도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는 간혹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능력이 낮은데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언어능력이 낮은 아이는 1차 급변동 구간에서 무조건 성적이 떨어집니다. 논술 강사 생활 12년 동안 단 한 번의 예외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어능력이 바로 학습능력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숙련된 독서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일개 독서교육전문가 한 사람이 떠드는 주장이 아닙니다. 숙련된 독서가를 길러내는 것은 전 세계 교육 선진국들이 목표로 하는, 교육의 ‘글로벌 스태더드’입니다. 우리만 이 사실을 도외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핀란드가 세계 1위 교육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나치리만큼 과한 독서교육 덕분입니다. 학교가 독서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세계 0.2%의 인구로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2%, 아이비리그 졸업생의 30%를 배출하는 유대인 교육의 핵심도 독서와 토론입니다. 미국은 ‘국립 읽기 위원회(NRP: National Reading Panel)’를 두고 학생들의 읽기 능력 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또 다른 교육 강국인 일본은 핀란드의 독서 기반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 모든 교육적 노력의 핵심은 딱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힐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책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길러낼 수 있는가.
핀란드의 아이들은 핀란드 알파벳을 모르고, 덧셈 뺄셈도 모르고,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더 나은 점이라고는 책을 좋아한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합니다. 학교만으로는 모자라서 방과 후에도 수많은 학원을 돌려 배우고 또 배우죠. 핀란드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도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책에 대해 배웁니다. 핀란드의 학교 수업 중에는 도서관 사서가 진행하는 수업이 따로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좋은 책 고르는 법, 책을 재미있게 읽는 법 등을 가르쳐주지요. 이렇게 사서에게 배운 독서법으로 학교 수업을 합니다. 선생님들은 수업 과제를 내준 후 아이들을 도서관에 데려가서 관련된 책이나 잡지, 신문 등을 스스로 찾아 읽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내용을 토대로 발표 토론 수업을 합니다. 대부분의 수섭이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독서가 수업이고, 수업이 독서인 셈입니다. 핀란드의 그 유명한 교육철학인 ‘가르치지 않을수록 더 많이 배운다(Teach less, Learn More)’는 이런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우리는 ‘아이가 얼마나 많이 아느냐’에 집중합니다. 핀란드는 ‘아이가 얼마나 잘 읽느냐’에 집중합니다. 숙련된 독서가로 자라기만 하면 뛰어난 능력으로 스스로 학습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유아기에 ‘하루에 한 번 그림책 읽어주기’는 숙련된 독서가로 가는 출발점입니다.
세계적인 교육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즐거움>(해냄출판사)에서 놀이와 일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진다고 지적했습니다. 둘 다 수행할 과제가 있다는 점, 분명한 목표가 있다는 점에서요. 우리가 일에 몰두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을 놀이처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놀이는 자발적이지만 대부분의 일은 비자발적입니다. 타인에 의해 수행해야 할 범위와 목적이 규정될 때, 그 범위와 목적에 동의할 수 없을 때, 일은 괴롭고 지겨운 것이 되고 맙니다. 당연히 몰입을 기대하기도 힘들죠.
이야기책 읽기는 나를 발견하는 독서입니다. 작품을 통해 타인의 삶을 대리 경험함으로써 사람에 대해, 나에 대해 더욱 깊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반면 지식도서 읽기는 세상을 이해하는 독서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이며,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결국 독서란 ‘나를 발견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행위’인 셈입니다.
호기심과 학습은 정반대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습니다. 호기심은 누군가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식 전집을 읽어주며 “지구가 둥글다니 참 신기하지 않니?”라고 물어본다고 해서 아이의 호기심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거죠. 호기심은 아이가 발견하는 것입니다. 비 오는 날 지렁이를 발견했을 때 ‘지렁이들이 어디서 나온 거지?’하고 호기심이 떠오르는 식입니다. 호기심은 아이가 세상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학습은 정반대입니다. 호기심은 아이에게서 나오지만, 학습은 외부에서 들어옵니다. 호기심은 능동적이고, 학습은 수용적입니다.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은 저마다 다르게 타고납니다. 침팬지는 숲에 있을 때 빛나고, 사자는 사냥을 할 때 가장 힘이 넘칩니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아이는 사업가로, 어떤 아이는 선생님으로, 또 어떤 아이는 학자로 태어납니다. 침팬지에게 사냥을 하라거나 사자에게 풀을 뜯어먹으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꿈을 아이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어떤 재능을 타고났는지가 중요합니다. 보통은 쉬 알아채기 힘듭니다. 하지만 독서 편식을 하는 아이들은 쉽께 알 수 있습니다. 지질학을 좋아한다면 지질학에 심취하게 두시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공부는 잘할 겁니다. 그다음은 그다음에 가서 두고 볼 일입니다.
독서광이었던 세종대왕을 탈 인간급 인재로 만든 것은 100번 읽고 100번 베껴 쓴다는 백독백습이었습니다. 반복 독서와 필사를 함께했던 거죠. 옛 위인 중에는 반복 독서로 시작해 필사로 넘어간 사람이 많은데, 그 이유는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완전하게 집어넣는 데 필사가 그만큼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천재적인 정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 철학자 니체 등 필사로 뛰어난 인물이 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필사는 슬로리딩과 반복 독서의 장점을 모두 가진 궁극의 독서법입니다.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에 고도의 성장을 이루어 냈다.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는 것보다는,
당장의 양적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고, 이는 한강의 기적으로 나타났다.
즉, 지금까지는 비용을 투입하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공부도 그런 사회적 영향을 받았다.
독서를 통해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나가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그렇다 보니, 학창 시절에는 ‘족집게 과외’가 효율적인 공부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배움을 위한 공부가 아닌,
성적을 위한 공부.
저자는 독서를 통해
학업의 기초 체력을 키울 것을 당부한다.
지금 내 눈 앞의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인생을 살면서 문제인식능력,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독서가 중요하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꾸준한 노력이 오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