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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Aug 26. 2020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누구에게도 타인의 마음을 짓밟을 권리는 없다

회사 콜센터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오전에 교육을 받고,

오후에 10 통화의 고객 문의에 응대했다.


어떤 고객님은

“어? 처음 듣는 목소리네? 신입이야?”

라고 묻기도 했다.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상대방이 반말을 한 것은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알았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통해 느꼈던,

우리 모두가 소중한 이유를 적어본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박주운 저. 애플북스 출판사]

1)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이라고 인사하며 전화를 받는 순간에도 혹시 상대방이 어마어마한 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일부 진상 고객의 폭언과 신경질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은 상담원이 참으로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입사 1~2년 차에는 진상 고객을 만나면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털어냈지만 그마저도 열정이 남아 있을 때 이야기다. 마음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거워지면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온갖 사람을 상대하며 멘탈이 강해진 게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을 스스로 마주하기 힘들어 회피하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주문을 외워보지만 다친 마음을 추스르는 일은 매번 고달프다.


2) 진상

 콜센터 일을 경험한 이들에게 ‘콜센터’ 하면 연상되는 단어를 물으면 ‘진상’이라는 답이 가장 많을 것이다.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불만을 제기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고객은 현명한 소비지다. 하지만 ‘진상’은 상식의 범위를 넘어 상담원을 괴롭히는 일부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상담원으로 일하며 아무리 고객을 이해하려 해도 한계를 넘어선 진상을 며칠에 한 번씩은 만난다. 상담원이 눈물을 쏟는 대부분의 원인도 진상 고객들이다. 안타깝게도 현 시스템은 상담원이라는 이유로 폭언과 무례함을 견딜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진상 고객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상담원으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봤지만, 역시 아니다. 콜센터에서 일하면 어쩔 수 없이 진상을 만난다고 들었지만, 그들의 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는 일이 상담원의 책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담원은 죄인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타인의 마음을 짓밟을 권리는 없다.


3) 마지막 자존심

 한동안 이어진 고객의 막말을 숨죽인 채 들었고, 마침내 고객의 말이 끊겼을 때 사과를 했다. 고객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는 마음에 없는 사과를 하다가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터져 나오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막상 험한 소리를 듣고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정신없이 일하며 잠시 잊었는데 퇴근길에 하나둘 내가 한 행동이 떠올랐다.


  ‘마지막 자존심이 꺾였구나.’


 고객이 진상을 부린다고 머리 숙이고 사과하는 짓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사실 부팀장에게 했던 날카로운 말은 내 자존심을 꺾을 때 새어 나온 비명 같은 것이었다. 내키지 않는 사과를 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던 건 자존심을 꺾으며 얻은 비겁한 대가였을까.


4) 자신을 망가트리면서까지 악착같을 필요는 없다

 예전에는 상담을 야무지게 잘하는 어린 직원을 보면 빨리 그만두고 더 좋은 일을 하라고 부추겼다. 가장 빛나야 할 시기에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갈수록 쪼그라들고 구겨지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곳에 간절히 원해서 들어온 건 아닐 거다. 분명 각자 나름의 사연이 있을 텐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농담이라도 관두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들에게 상담원으로 지낸 시간이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고 장담은 못하겠다. 욕을 먹으며 했던 나의 스무 살 아르바이트도 내 삶에 대단한 영향을 주지 못한 것처럼. 마음속으로나마 그들에게 전해 본다. 자신을 망가트리면서까지 악착같을 필요는 없다고. 서른넷의 내가 다른 삶을 꿈꾸는 것처럼 언젠가 꼭 들어맞는 일이 있을 테니 괜찮다고.


5) 마지막 인사

 [선배님 어려운 순간들에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퇴사하는 3개월 차 신입사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사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하 직원의 뺨을 때려 가르친 일을 무용담처럼 말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일이 어려운 건 몇 번이고 감당할 수 있었지만, 사수에게 듣는 꾸지람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토록 바라던 서울에서 다닐 수 있는 회사라 무조건 버티려고 했다. 열심히 하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지만 점점 월요일이 두려워졌다. 어느 날은 출근길에 교통사고라도 나서 회사를 안 가면 좋겠다는 나쁜 마음마저 들었다. 몇 번을 고민해도 이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수와 부장은 추천해서  뽑아줬더니 이렇게 금방 그만두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당연히 내가 감수해야 하는 말이었다.


 퇴사하는 날 사수에게 마지막 인사는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뒤따라가 말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너 블랙리스트야. 앞으로 우리 회사 비행기 타면 죽는다.”


 퇴근하는 사람들로 꽉 찬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그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서러운 마음이 복받쳐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 왜 그리 상처 주는 말을 한 걸까. 아직도 그 말은 ‘끈기 없는 놈’, ‘나약하고 무능력한 놈’이라는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나를 찌른다.


 일하던 곳을 떠날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내게 상처를 준 사수처럼 나도 그녀에게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마지막 쪽지가 생각나 부끄럽다. 그녀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6)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휴식은 말 그래도 고객 응대에 지친 상담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하지만, 콜센터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관리자에게 휴식시간을 사용하고 싶다고 요청하고, 승인을 받아야 쉴 수 있다. 승인을 받아도 바로 쉴 수 없고, 관리자가 정해준 휴식 순번에 따라 쉴 수 있다.


 비흡연자인 나는 대부분의 휴식을 화장실 갈 때 쓰는데, 다 큰 성인이 자신의 방광 사정, 대장 사정을 남에게 알리는 건 치욕스러운 일이다. 겨우 얻어낸 휴식도 화장실이 꽉 차 있거나 속사정이 안 좋아서 10분이 넘어가면 어김없이 팀장의 호출이 기다리고 있다. 부끄러운 자초지종을 낱낱이 설명하는 나를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같은 처지인 동료들에게도 미안해서 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올 때도 많다. 회사의 생산성, 효율성을 위한 일이겠거니 이해해보려 했지만, 생리 현상마저 통제받는 상황에서는 모멸감이 느껴진다. 퇴사를 결심한 주된 이유였다.


7) 총알받이

 대부분 기획사에서 고객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합리적인 결정을 하지만, 비상식적인 결정을 하는 곳도 있다. 천재지변이면 연기를 하고 차후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해 주거나, 관람을 원하지 않는 고객에게 전액 환불을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기획사는 일자 변경은 해줄 수 있지만, 환불은 불가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상담원도 이해할 수 없는 응대 방안이었다.


 기획사와 예매처의 관계를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콜센터 5년의 연륜으로 아는 바가 있다. 기획사가 갑이라는 것(특히 대형 기획사는 더더욱). 기획사가 확고한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는 예매처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쯤 되면 고객과 상담원의 동어반복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고객은 감정만 상한 채로 전화를 끊는다. 고객에게 욕을 먹으며 통화를 오래 이어갈 때는 상담원도 사람인지라 고객이 밉기도 하지만, 막상 전화를 끊고 나서는 기획사와 본사에 분노가 치민다.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한 기획사는 도대체 무엇이며, 아무런 힘도, 책임감도 없는 본사의 무능력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담원은 고객들의 불만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총알받이다.


8) 경위서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2,500원, 2,800원, 3,000원 때문에 경위서를 쓴 동료들도 있다. 상담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실수를 줄이게 하려고 형식상 쓰게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기가 직원들 사이에 돈다. 근태가 좋지 않고 상담 태도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던 직원에게 회사가 아무리 퇴사를 권유해도 끝까지 버텨 해고하기까지 굉장히 애먹은 일이 있었다. 그 후로 회사에서는 상담원을 쉽게 해고하려고 작은 실수에도 경위서를 받아 놓았다가 해고가 필요할 때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2,500원짜리 경위서는 너무하다.


 10년간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선배는 이놈의 회사가 하다 하다 별짓 다 한다며 경위서를 써냈다. 어이없다는 듯 웃고 넘긴 선배였지만, 언뜻 웃음 뒤로 스치는 모멸감을 본 것 같았다. 고작 2,500원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은 선배의 마음은 어땠을까.


 콜센터에서  상담원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이곳에 다니며 얻은 것 중 하나는 물정 모르고 현실을 낭만적으로 바라본 나의 천진함을 깨트린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의 현실과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2,500원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곳, 직원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회사에 5년 동안 다니고 있는 게 내 현실이다.


9) 글쓰기

 콜센터 업무에 익숙지 않거나 상담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써놓고 보니 참 별것 아니다. 앞에서는 대단한 비법인 양 잘난 척을 했는데 뻔하디 뻔한 글이라 부끄럽다. 어디까지나 이 글은 고객이나 회사를 위한 게 아니라 상담원인 나를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숭례문 학당을 다니며 필사 수업을 듣고, 100일 글쓰기 수업을 끝마쳤다. 글을 쓰는 동안 내 마음을 차근히 바라보고, 막연하게 느낀 불안과 결핍, 아픔을 대면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불안은 나를 삼킬 듯이 크지만, 직접 보려고 노력하면 불안의 크기는 작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짧지 않은 100일간 나를 위해 시간을 들이고 성실히 글쓰기를 마치며 자부심이 한 뼘 자라난 기분이었다. 이때 시작한 글쓰기가 원동력이 되어 지금의 콜센터 이야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10) 퇴직하는 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박주운이었습니다.”


아마 수만 번쯤 했던 인사. 다시는 없을 마지막 인사.


 18시가 되고 PC에 남아 있는 자료를 모두 삭제했다. 내 자리는 치울 물건이 별로 없었고, 이날만을 기다려 온 것처럼 깨끗했다. 텀블러만 챙기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 회사의 안 좋은 기억과 기운이 들러붙을 것 같아 그랬다. 오래 함께한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가 왠지 쑥스러웠다.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게 아닌데 다들 축하와 부러움을 담고 있었다. 동료 때문에 힘든 적도 있었지만, 5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역시 함께한 동료들 덕분이다. 지긋지긋한 일이었지만 사람은 얻었다는 감사한 마음이 든다.


 친한 동료들이 밥을 사주겠다고 해서 도란도란 닭 한 마리에 소주를 마셨다. 조용한 마무리였다. 이제 정말 마지막 퇴근길이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회사가 있는 구로디지털 단지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내가 콜센터를 다니긴 했었나 싶었다.

 

 조금 전까지 전화를 받으며 일하던 저곳이 어느새 나와는 전혀 관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바라면서도 결심하지 못한 퇴사였는데, 참 별것 아닌 듯해 허무했다. 자구 포장하려는 마음에서 지난 5년을 ‘버텼다, 견뎠다’라고 쓰게 되는 데 사실 그 무엇도 아니다. 그냥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의욕 없이 먹고살아야 해서 다닌 거다.


 죽어지낸 시간도 내게 준 게 있다.


그저 숨만 쉬며 산 시간이라도

결국은 내가, 나 스스로 살아냈다는 것.

나를 포기하거나 놓아버리지 않았다는 것.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 인생 망했구나’, ‘이룬 건 아무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구나’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매사에 조급해지고 욕심만큼 이루지 못하는 나를 비난만 했었는데 이제는 미움을 덜어보려 한다.


 오늘만큼은 지난 5년을 살아낸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곳을 그만둔다고 하루아침에 내 삶이 달라지지 않을 걸 안다. 항상 기대가 커서 속상한 일이 많았지만,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책장을 덮으며>

회사에는 배송 직무의 직원도 있고,

고객센터 상담 직무의 직원도 있다.


 나는 조직의 특성상 배송직원 분들과 주로 이야기를 나눈다.

누구나 그렇듯이 배송직원 분들도 회사에 대한 불만이 있다. 그리고 고객센터에 대한 불만도 종종 토로한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씩,

배송직원 대표분들과 함께 고객센터를 체험한다.

 

 하루 종일 고객센터에서 상담사 분들의 업무를 체험한 직원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체험하기 전에는 상담사 분들에게 불만이 많았는데, 오늘 직접 경험해 보니 상담사 분들은 우리들을 위한 방파제 같은 분들이었네요. 방파제를 간혹 넘어온 파도가 전부 인양 불평, 불만을 제기했던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안 힘든 일이 있을까 만은,

상담센터의 일은 더욱 힘든 것 같다.

상담센터의 특성상, 연락을 한 고객님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박주운 님은

어렵고 힘든 환경을 탓하거나,

회피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고객센터 상담원에 대한 책을 만들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통의 시기도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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