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책인사의 책추천’이라는 매거진을 시작하며,
처음 접한 책은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저)’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지은 강원국 작가님은
‘강원국의 글쓰기’를 출간했다.
강원국 작가님은
대통령의 시선이 아닌,
강원국의 시선에서 어떤 글을 썼을까?
라는 반가운 마음에 읽어본 책.
강원국의 글쓰기의 소중한 표현들을 적어본다.
- 투명인간으로 살지 않으려면 내 글을 써야 한다
지금도 책에 서명을 할 때에는 ‘김대중처럼 노무현같이’를 즐겨 쓴다. 누구처럼 누구같이 살고 싶었으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고, 지금은 그냥 글 쓰는 사람 강원국으로 살고 있다.
이 책은 그 궁리의 상처들이자 축적물이다. 결론은 ‘투명인간으로 살지 않으려면 내 글을 써야 한다’는 거다.
- 글쓰기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글쓰기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하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한 줄을 찾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찾은 한 줄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글에서 말하고 싶은 한 줄을 잡아내는 과정을 착안, 착상, 구상, 발상이라 하고, 그 결과물을 아이디어, 생각이라고 한다. 대개는 핵심 메시지나 주제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그러고 나서 이 한 줄을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줄이 왜 맞는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거나 근거를 가지고 증명하는 단계다.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이다.
- 조하리의 창
1955년 심리학자 조셉 러프트(Joseph Luft)와 하리 잉햄(Harry Ingham)은 사람의 마음에는 네 가지 창이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의 이름을 딴 ‘조하리의 창’이다.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아는 ‘열린 창’, 나는 알지만 상대방이 모르는 ‘미지의 창’, 나는 모르는데 상대방은 아는 ‘장님의 창’, 나도 상대방도 모두 모르는 ‘암흑의 창’이 그것이다. ‘열린 창’과 ‘암흑의 창’은 글쓰기에서 관심 밖이다. 나도 알고 독자도 아는 내용은 흥미로운 얘기일 수 없다. 나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는 내용은 모르기 때문에 쓸 수 없다. 글쓰기에서 주목해야 할 영역은 ‘미지의 창’이다. 나는 알고 있지만 독자가 모르는 부분이다. 내가 알고 있으니 쓸 수 있고 독자는 모르니 흥미로울 수 있다. 그것은 이야기일 수도, 사실이나 해석 이론일 수도 있다.
- 책을 쓴다는 것
책을 쓴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나를, 혹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책을 쓴다. 책 쓰는 고통을 온전히 올로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의 결과로 책이라는 자식을 낳게 된다. 자식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걱정해서 자식을 안 낳진 않는다. 모든 자식이 유명인이 되고 효자효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그 자체로 기쁨이고 축복이다.
- 글을 독자가 읽어야 완성된다
독자가 없는 글은 무의미하다. 글은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과 같다. 바람이 불어야 소리가 난다. 바람은 독자다. 바람 없는 풍경은 고철덩이에 불과하다. 독자는 내 글을 읽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내 글의 주인이 된다. 독자가 이해하고, 동의하고, 공감하고, 설득당하고 , 감동하는 글이 좋은 글이다. 이것이 글쓰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다.
- 직관
직관은 생각해보지 않고 즉각적이고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직관에는 이성이 개입하지 않는다.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않는다. 그냥 번쩍 하고 떠오른다. 튀어나온다. 사유하지 않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 대신 설명하기 어렵다. 근거가 없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직관은 학습이 필요하지 않다. 독서와 경험이 많지 않아도 상관없다. 경험이 중요하다.
- 평소에 글을 쓴다는 것
평소에 쓴다는 것은 단지 글을 조금씩 쓴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생성, 채집, 축적해두어야 한다. 써놓은 글을 평소에 조금씩 고치는 것도 포함한다. 나아가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의 흐름 안에서 살라는 뜻이다. 어차피 써야 할 글이라면 미리 써두는 게 여러모로 좋다. 써둔 글에는 이자도 붙는다. 써둔 글이 늘어나면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이 부딪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 독서
독서하는 이유는 자기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다. 책을 읽다 보면 내 생각이 정리된다. 남의 생각을 빌려 자기 생각을 만드는 게 독서다.
뭐니 뭐니 해도 생각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내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독서한다. 그래야 책 읽는 의미가 있다. 책을 읽었다는 것은 남의 생각을 읽은 것이다. 책 읽기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남의 생각을 바탕으로 내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 호기심
인간은 태어나면서 궁금증을 타고난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만 세 살까지 무슨 단어를 가장 많이 쓰는지 조사해봤더니, 첫째가 ‘엄마’이고 두 번째가 ‘왜’였다. 우리 모두 어릴 적에는 질문이 많았다. 모든 게 궁금했다. 크면서 질문이 사라졌다. 이와 함께 호기심도 사라졌다. 글쓰기도 힘들어졌다.
- 탈중심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가까이 보면 아름답다. 사랑하게 된다. 들여다보면 그곳에 어마어마한 우주가 있다. 이를 위해 나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보지 않아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말한 ‘탈중심화(decentering)’가 필요하다. 나만 보지 않고, 중심만 좇지 말고, 주변과 타인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글의 두 가지 재료 (상기와 상상)
글의 재료는 두 군데서 나온다. 상기와 상상이다. 과거 경험, 어디선가 보고 듣고 읽은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이른바 상기다. 상기는 과거의 것이다. 반면 경험하지 않은 것, 바라는 미래,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추측하거나 계획하거나 예상하는 것은 상상이다. 상상은 미래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글은 기억과 상상으로 쓰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일은 기억하고, 미래의 일은 상상하면서 말이다.
- 글은 전문점이 돼야 한다.
글은 한정식이 아니라 일품요리로 써야 한다. 백화점이 아니라 전문점이 돼야 한다. 주제 혹은 논지와 관련 없는 내용은 가차 없이 버린다. 그러면 단순해진다.
- 잘 쓰고 싶으면 잘 쓰는 사람이 되면 된다.
잘 쓰고 싶으면 ‘잘 쓰는 사람’이 되면 된다. 글솜씨와 관계없이 “저 친구는 글 좀 써”라는 입소문이 나면 시비 걸지 않는다. 그 사람이 쓴 글에 대한 지적이 줄어들고 반응이 좋으면 자신도 그런 평판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과적으로 글을 잘 쓰게 된다.
- 칭찬은 지적보다 어렵다
칭찬은 지적보다 어렵다. 뇌의 속성 탓이다. 칭찬은 뇌의 논리적 영역이 담당하고, 지적은 감정적 영역에서 처리한다. 논리적 근거를 대는 일은 귀찮고 복잡하다. 감정적 반응은 즉흥적이고 수월하다. 또한 뇌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신속히 반응한다. 그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잘 쓴 글보다는 못 쓴 글, 칭찬할 거리보다는 지적할 게 먼저 눈에 띈다. 논술이나 자기소개서는 잘 쓴 글을 뽑는 시험이 아니다. 지적할 거리가 마땅히 없어 살아남는 글이 뽑힌다. 지적할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 이연 현상(융합)
서로 관련 없는 두 가지 사실이나 아이디어를 하나의 아이디어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창의적 생각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헝가리 철학자 아서 콰슬러(Arthur Koestler)가 주창했다. 이연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답을 찾고자 하는 분명한 주제가 있어야 한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
들인 시간이 있어야 한다.
- 내려놓는다는 것
참여정부 3년 차 때 한계점에 봉착했다. 내가 아는 내 수준은 70점도 안 됐다. 대통령 연설비서관으로서 90점 이상의 실력이 필요했다. 나는 그렇게 보여야 했다. 언제 들킬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밤샘하며 몸으로 때웠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들었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대통령께 사의를 표했다. 끝내 그만두진 못했지만, 그 이전과 이후는 달랐다. 청와대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때가 바닥이었다.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오를 일밖에 없었다. 내 글에 관한 평이 좋지 않아도 괴롭지 않았다. 잘 보이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다. 잘 써서 칭찬받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썼다.
- 목차
요즘도 책의 목차를 보기 위해 서점에 자주 간다. 목차를 보면 얻는 게 많다. 목차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책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목차 안에는 배경지식도 있다. 목차 줄줄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한 줄이 내가 써야 할 글의 주제가 된다.
무엇보다 목차는 책 전체를 한눈에 보게 한다. 내용 구성이 어떻게 돼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독자를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구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목차야말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책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붙들어두는, 치밀하게 짜인 각본 같은 것이다.
- 들여다본 지점까지만 내 세상이다
들여다본 지점까지만 내 세상이다. 그 밖은 없는 세상이다. 없는 세상에 관한 내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것만 실재하는 세계이고, 글쓰기 대상이 된다. 관찰한 만큼 보이고, 보인만큼 쓸 수 있다. 관찰은 고유한 느낌과 독창적인 생각을 만드는 출발점이다.
- 보여주지 않는 글을 의미가 없다
스스로를 믿는 사람은 자기 글을 남에게 자신 있게 보여준다. 호평이나 혹평에 흔들리지 않는다. 칭찬받았다고 우쭐하지도, 혹평에 의기소침하지도 않는다. 타당한 건 흔쾌하게 받아들이고 무시할 것은 묵살한다. 나아가 마음속 다툼도 없다. 당신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고 생각한다. 청탁병탄한다. 맑은 것과 탁한 것을 함께 삼킨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결과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람은 더 잘 쓰고, 안 보여주는 사람은 갈수록 못 쓴다. 보여주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다.
- 공감능력
우리 사회에서는 공감 능력이 약할수록 유리하다. 공감력이 부족하면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타인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자기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시간을 쓴다.
또한 공감력이 없는 사람은 조직의 정당하지 않은 요구로 피해받는 사람의 처지를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않는다. 어떡하든 지시를 이행하고 주어진 목표를 달성한다. 물불 가리지 않고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승승장구한다. 그럴수록 공감 능력이 풍부한 사람을 보면 “저 친구는 사람만 좋아서 걱정이야.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친구가 오지랖만 넓어”라고 비아냥댄다. 타인의 애환에 무뎌지는 것이 곧 자신을 죽이는 것임은 알지 못한다.
- 쿠에이즘 (쿠에법)
프랑스 약사 에밀 쿠에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약을 달라고 했다. 그 약은 나온 지 오래되어 약효가 없을 것이라고 했으나 손님은 막무가내로 그 약이면 틀림없이 나을 거라며 약을 사 갔다. 며칠 뒤 손님이 다시 찾아와 병이 나았다며 인사했다. 쿠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하며 ‘자기 암시법’의 창시자가 됐다.
자기 암시법은 자신이 주는 자극에 반응하여 이성이 아닌 무의식이 작동한다는 이론이다. 한마디로 자기가 생각한 것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암시법의 핵심 키워드는 믿음, 집중, 반복이다. 믿고 집중해서 반복하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런 언어 암시를 ‘쿠에이즘’ 또는 ‘쿠에법’이라고 한다.
- 마시멜로 챌린지
미국의 톰 우젝(Tom Wujec)이란 학자가 고안한 ‘마시멜로 챌린지’라는 게임이 있다.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스파게티 면과 실, 테이프를 사용해 18분 안에 탑을 쌓는 게임이다. 서로 다른 6개 팀이 구성돼 게임을 벌인 결과, 유치원생이 <포춘> 50대 기업 최고경영자나 변호사, MBA 학생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왜 그랬을까?
대부분의 팀이 리더를 정하고, 탑의 구조와 계획을 짜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특히 꼴찌를 한 MBA 학생들은 완벽한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이에 반해 유치원생들은 호기심을 갖고 일단 쌓기 시작했다.
- 보험회사 영업왕
듣기 역시 말하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쓰기의 토대다. 잘 듣는 사람이 말을 잘하고, 잘 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말을 심하게 더듬는 분이 있다. 병원에 가서 교정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 그런 그가 20년 넘게 보험회사의 영업왕을 놓치지 않았다. 비결은 단 하나, 잘 듣는 것이다. 말을 유려하게 못 하기 때문에 열심히 듣는다. 잘 들어줌으로써 고객을 주인으로 만들어준 결과다.
- 나는 언제 죽어라고 일했나
나를 믿어주는 상사를 만났을 때 나는 죽어라고 일했다. 그는 내가 올리는 보고서를 검토하지 않았다. 내가 보고하면 ‘수고했다’며 곧장 상사에게 보고하러 갔다. 내가 마지막 보루다. 내가 무너지면 그분이 혼난다. 상사가 혼나면 내가 혼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한 일이 없으니까. 그가 혼나지 않도록 한 번 볼 것을 두 번 세 번 봤다. 그런 상사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한다. 부하의 말을 경청한다. 지시하고 꾸짖기보다는 질문하고 칭찬한다. 피드백을 잘한다. 한마디로 위임을 잘하는 상사다.
1가지 글을 쓰기 위해서는
10가지 생각을 해야 한다.
10가지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100가지를 알아야 한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기교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켜 주는 마중물과 같은 책이었다.
1년 전, 나만의 글을 써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접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작가님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뛰어넘어, 강원국 본인만의 글을 쓰고 있다.
가장 진실된 것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준 소중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