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인사 Oct 02. 2019

대통령의 글쓰기

마음을 사로잡는 글쓰기

사회 초년생 시절.

대표이사님의 연설문은 항상 내 차지였다.


놀라웠다.

대표이사님의 연설문을 대표이사님께서 직접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동안 작성된 대표이사님의 연설문을 살펴보니, 매년 표현만 살짝 바꿔서 재탕에 삼탕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대표이사님의 연설문 작성이라는 중책(나는 당시 스스로에게 이 일은 대단히 중요한 임무라고 자기 암시를 했다)을 맡은 나는 몇 날 며칠에 걸쳐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대표이사님의 연설문을 만들어 나갔다.

그 시간은 무려 7년간 이어졌다.


신기했다.

내가 작성한 연설문은 아무런 수정도 거치지 않은 체 비서실까지 접수되었다. 그 연설문은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대표이사님을 통해 신년사에서, 분기조회에서, 종무식을 통해 직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마치 내가 회사를 경영하는 듯한 착각의 시기를 겪으며, 그렇게 나는 회사와 하나가 되어 갔다.


회사를 옮긴 지금은 연설문을 작성하지 않는다. 대필이라는 것은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본인의 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 넘기는 일이라는 옹졸한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_ 강원국, 출판사 _ 메디치미디어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연설비서관 직을 역임한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읽으며, 대필에 대한 나의 인식은 바뀌게 되었다. 대통령의 글쓰기가 대필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다. 어찌 되었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것이야 말로, 전체의 효율성 증진과 공감의 소통을 높여주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추려본다.


1)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대통령은 깐깐한 선생님처럼 임기 5년 동안 연설비서관실에서 쓴 초안에 단번에 ‘오케이’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2) 두 대통령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늘 생각, 생각, 생각을 했다. 멀리 보고 깊이 생각했다. 그게 맞는지, 맞는다면 왜 그런지 따져보고, 통념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쪽만이 아니라 다른 관점, 여러 입장을 함께 보고자 했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컸다. 그런 결과일까. 어느 주제, 어느 대상에 대해서도 늘 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와 주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3)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다.” 미디어 전문가인 마샬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의 유명한 말이다. 글은 독자와의 대화다. 청중은 내 말을 듣는 참여자다. 말을 하고 글을 쓸 때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내용과 상대가 듣고 싶은 내용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내용만 얘기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렇다고 듣고 싶은 얘기만 하는 것 역시  실속이 없다 자칫하면 아부나 영합이 될 수도 있다. 교감이 필요한 것이다.


4) “나는 미쳐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글이 좋았어.” (중략) 청와대를 나가겠다는 생각은 이 연설문으로 접게 되었다.


5) 언젠가 김 대통령은 대화가 틀어지는 세 가지 경우를  얘기했다. 첫째는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혼자 결론을 다 내버리는 것이며, 셋째는 자기 자랑만 늘어놓은 것이다.


6) 어찌 보면 대통령이란 자리는 칭찬하는 자리다.  노고를 치하하고, 어려운 사람을 격려하고, 선행에 감사하는 일. 이 모든 게 칭찬이다.


7) 김 대통령은 꾸중을 하는 데도 원칙이 있었다. 그 원칙을 자신의 자서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서 밝힌 바 있다.

“나는 비판을 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하나는 먼저 상대방의 입장이나 장점을 인정해 주는 비판, 그리고 두 번째는 상대방의 인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하는 비판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이나 장점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상대방은 비판을 자기에 대한 비난으로 생각하고 수용해주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누군가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