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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Dec 12. 2019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무 같은 사람이다" vs "짐승 같은 사람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어떤 표현이 칭찬이고 어떤 표현이 비난 같은가?

당연히 전자가 칭찬일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내 인생에 나무 같은 존재이길 원했고, 누군가에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그늘과도 같은 나무이길 원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 나무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일깨워 준 책.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의 나무 같은 표현들을 소개한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지음. 메이븐 출판사]


1) 오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 소나무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희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한 번쯤 청계산의 소나무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소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았다. 방향을 바꾸어야 하면 미련 없이 바꾸었고, 그 결과 소나무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덕분에 사람들 눈에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지만 그럼 어떤가. 소나무가 왜 ㄷ자 모양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알고 나면 그 지독하고도 무서운 결단력에 혀를 내두르게 될 뿐이다. 내일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오늘 이 순간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 온 소나무.

수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무의 선택은 늘 '오늘'이었다. 


2) 내실을 다지는 뿌리

막 싹을 틔운 어린나무가 생장을 마다하는 이유는 땅속의 뿌리 때문이다. 작은 잎에서 만들어 낸 소량의 영양분을 자라는 데 쓰지 않고 오직 뿌리를 키우는 데 쓴다. 눈에 보이는 생장보다는 자기 안의 힘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시기, 뿌리에 온 힘을 쏟는 어린 시절을 '유형기'라고 한다.

나무는 유형기를 보내는 동안 바깥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따뜻한 햇볕이 아무리 유혹해도, 주변 나무들이 보란 듯이 쑥쑥 자라나도, 결코 하늘을 향해 몸집을 키우지 않는다. 땅속 어딘가에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그렇게 어두운 땅속에서 길을 트고 자리를 잡는 동안 실타래처럼 가는 뿌리는 튼튼하게 골격을 만들고 웬만한 가뭄은 너끈히 이겨 낼 근성을 갖춘다. 나무마다 다르지만 그렇게 보내는 유형기가 평균 잡아 5년. 나무는 유형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 짧지 않은 시간 뿌리에 힘을 쏟은 덕분에 세찬 바람과 폭우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성목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3) 나무의 마지막 순간

안타까운 마음에 이미 갈라진 줄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노스님 한 분이 곁에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우리 젊은 스님이 연락을 드린 모양인데 그냥 두시지요. 살 운명이면 그냥 둬도 살 것이고, 죽을 운명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죽지 않겠소.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려는 나무를 억지로 살려 내는 것도 순리는 아니지요."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다.

그 뒤 나는 모든 나무를 완벽하게 낫게 해 주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대신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 조금 더 편안하게 삶을 누리도록 돕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생명을 다한 나무들을 잘 보내는 일도 포함되었다. 괴롭게 수명을 연장시키느니 아름다운 상태에서 죽음을 맞게 하는 것도 나무 의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4) 생존을 위한 경쟁

헐벗은 산이 다시 푸르러진 것은 다행이지만 하늘을 향해 치솟은 나무들을 볼 때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가지를 마음껏 뻗기는커녕 숨 쉴 여유조차 없는 공간에서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부족한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그저 위로만 치솟듯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만을 위해 경쟁하는 숲은 죽어 간다. 햇볕이 바닥까지 닿지 않으니 온기가 부족해 어린 생명이 싹을 틔울 재간이 없다. 어린 나무와 풀꽃, 그들과 함께하는 작은 곤충들이 살아갈 공간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겉으론 완벽해 보일지 몰라도 그런 숲은 결국 희망이 없는 불임의 땅과 다르지 않다.


5) 포기하지 않는 삶

나무의 삶은 결국 버팀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굴욕적으로 모든 걸 감내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평생 나무를 지켜본 내 생각은 다르다. 나무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고, 어떤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버팀의 시간 끝에 나무는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그러니 가시투성이의 흉한 모습으로 변하면서까지 버틸 필요가 있느냐고 비아냥대는 것은 옳지 않다. 굴욕적인 겉모습까지 감내하며 끝까지 버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오히려 칭찬해 줘야 마땅하다.


6) 아이를 기르는 일. 나무를 키우는 일.

강연에서 젊은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아이 기르는 일이 나무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 당나라 시절 나무를 잘 기르기로 정평이 난 곽탁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곱사병을 앓아 허리가 굽은 모습이 낙타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 나무든 그가 심으면 백발백중 잘 크다 보니 그 비결을 묻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는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를 많이 맺게 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아는 건 나무의 본성이 잘 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는 넓게 펼쳐지길 원하고 흙은 평평하기를 원합니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뒤에는 건드리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며,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 뒤는 버린 듯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적지적수(),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심는다는 뜻이다. 나무를 키울 때 가장 기본으로 알아야 할 원칙이라 할 수 있다.

도심 속에 사는 나무들은 제 성질을 무시당한 채 평생을 살아간다.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하느라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나무들을 볼 때마다 타고난 품성이나 재능과 상관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생각난다. 나무처럼 아이들도 저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다. 그런데 아이 대부분이 자기가 무엇을 갖고 태어났는지 모른 채 국화빵 찍어 내듯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방식대로 자란다. 학교에서의 1등이 인생에서의 1등이 아닐진대 하나같이 성적에만 매달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광보상점 같은 나무의 기질에 대해 설명할 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자세를 비유로 들곤 한다. 기질에 맞게 자리만 잘 잡아 주면 나무는 큰 보살핌 없이도 제가 알아서 잘 자란다. 아이 역시 타고난 적성에 맞춰 방향만 잘 잡아 주면 아기새가 둥지를 떠나 드넓은 하늘로 날아오르듯 자신의 인생을 알아서 잘 펼쳐 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모르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나무에 관심이 많다면서도 나무에 대해 너무 몰랐던 내 친구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알지요"라고 말하기 전에 아이에게 "요즘은 뭐가 제일 재미있어?"라고 묻는 부모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7) 나무의 구심점. 우듬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무는 싹을 틔운 순간부터 위로 자란다. 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은 떨기나무를 제외하고 모든 나무는 죽는 순간까지 해를 바라보며 오직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간다. 이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우듬지다. 우듬지란 나무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줄기를 말하는데, 곧게 자라는 침엽수의 경우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자라면서 아래 가지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것을 통제한다. 우듬지 끝이 한 마디쯤 자라고 나서야 아래 가지도 뒤따라서 한마디 자라는 식이다. 하늘을 향해 곧추선 우듬지를 보면 우듬지의 끝눈이 아래 가지들에게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답답하겠지만 조금만 참아. 내가 위로 좀 더 자라야만 우리 모두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어."

이렇듯 우듬지가 구심점 노릇을 해 주어서 나무는 자라는 동안 일정한 수형을 유지할 수 있다.


8) 세월이 만들어 낸 빈자리의 가르침. 주목나무.

가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그 때문에 사회에서 밀려나 쓸모없는 노인 취급당하는 게 불만이라는 친구들을 만난다.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끔찍한 일인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이 든 자에게 필요한 것은 세월이 만들어 낸 빈 공간에 작은 들짐승과 곤충들을 품어 내는 주목나무의 자세가 아닐까. 주목나무가 비어있지 않았다면 한겨울 매서운 비바람에 작은 들짐승과 곤충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물러나야 할 때 억지를 부리기보다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잘 내려놓고, 그 빈자리를 드러내야 한다.


9) 씨앗의 첫걸음은 용기

씨앗 안에는 오래도록 씨앗으로 존재하려는 현재 지향성과 껍질을 벗고 나무로 자라려는 미래의 용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은 좋은 환경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힘과 언제든지 싹을 틔우려는 상반된 힘이 씨앗 안에서 갈등하고 타협한다는 증거다. 긴 기다림 끝에 싹을 틔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씨앗은 결국 나무가 되지 못하고 그냥 생을 마감한다. 한 예로 자작나무의 경우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도 씨앗에서 싹이 트는 발아율은 고작 10퍼센트 남짓이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 껍질을 뚫고 나오는 씨앗만이 성목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싹을 틔우는 씨앗의 기적은 그저 맹목적인 기다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용기 있게 하늘을 향해 첫발을 내딛지 못하면 기다림은 결국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다.


10) 역지사지

"사람들이 나무 심을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뭔지 아나?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를 눈에 잘 보이는 데 심을 생각만 한다는 거야. 나무가 어딜 좋아할지는 전혀 생각 안 하고 말이지."


11) 초입 산악회

나는 그동안 안 다녀 본 산이 없을 만큼 등산을 즐겼지만 작정하고 정상까지 오른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정상까지 급하게 가야 할 까닭이 없어서다. 내게 있어 산은 기를 쓰고 오르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멈춰 머무르는 곳이었다.


12) 나와 다른 생명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나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유명한 동화 때문인지 나무는 모든 것을 내주기만 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나무가 하는 모든 행위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 미얀마의 사막에서 비구름을 불러 모으는 나무도, 산 중턱에서 비를 내리는 침엽수도 실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수분을 얻기 위해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지만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이 나무 자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을 이롭게 한다. 주어진 자리가 아무리 척박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꿋꿋하게 살아간 결과가 나무 자신을 살리고, 다른 모든 생명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13) 가시나무의 가치

척박한 땅을 개척하고 작은 생명들이 자랄 때까지 수호자 역할을 하는 그들을 가리켜 숲의 옷, 곧 임의(林衣)라고 한다. 누구도 다가설 수 없을 만큼 무성한 가시덤불이 있기에 그 안의 나무들이 보호를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작고 연약한 새들도 천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둥지를 틀 수 있는 것이다.

아무도 뿌리를 내리지 않으려 하는 척박한 땅에 용기 있게 자리를 잡고 다른 생명들이 올 때까지 씩씩하게 숲을 지켜 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자리마저 내주고 조용히 떠나는 가시나무들. 그들은 그 어떤 삶에도 저마다 살아갈 이유와 가치가 깃들어 있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보여 준다. 비록 볼품없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지만 그럼 어떤가. 가시를 단 나무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다.


14)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맞서 싸우지 않고 일단 한 걸음 물러서서 부드럽게 우회할 줄 아는 것. 그것은 결코 지는 것이 아니다. 저 혼자 강하게 곧추선 나무가 한여름 폭풍우에 가장 먼저 쓰러지는 법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노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부드러운 것이 능히 단단한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이긴다"고.


15) 나무가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가만히 보면 나무에게 있어 적응은 가진 것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연의 모습을 철저히 버리고 그곳에 맞게 적응해 가는 것이다. 더욱이 그냥 적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까지 불러 모아 새로운 생명의 땅을 만든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나무가 한번 머물다 간 자리는 생명이 깃드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변화를 올곧이 받아들이며,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완전히 적응하는 것. 그것은 나무가 이 지구 상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생명체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16) 플로우 Flow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 FLOW>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부의 목적은 더 이상 학점을 받거나 졸업장을 타는 것, 그리고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 그리고 자기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질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이다."


산에 다니는 내내 나무를 알아가는 즐거움에 해가 지는 줄도 몰랐고, 집에 돌아와서도 이 책 저 책 뒤지며 날을 새기 일쑤였다.

"플로우라는 것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곧 이때의 경험 자체가 매우 즐겁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어지간한 고생도 감내하면서 그 행위를 하게 되는 상태이다."


17) 나이테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부분의 나무에는 나이테가 있다. 지금은 죽고 없지만 서울 통의동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이 살고 있었다. 높이 16미터에 수령이 약 600년쯤 되는 백송은 어느 날 강풍을 동반한 폭우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죽은 백송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부터 1945년까지의 나이테 간격이 거의 변동이 없을 만큼 좁고 짙었던 것이다. 사람들만큼이나 나무 또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얘기다.


18) 나무와 사람의 차이점

나무와 사람의 차이가 뭘까요?

그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조금 어눌하지만 정확하게 말했다.

"나무는 싸우지 않아요."

놀랍게도 그 친구의 대답은 그날 강의의 핵심이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들 줄 아는 평화의 기술자가 바로 나무이니 말이다.


19) 오래된 나무들의 특징

소나무는 보통 나무들과 자라는 방식이 다르다. 대부분의 나무는 봄에 새싹을 틔우고 나면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계속 가지가 자란다. 반면 소나무는 이른 봄부터 여름이 오기 전까지 딱 한 마디만 자란 뒤 생장을 멈춘다.

편의상 사람들은 전자를 자유생장, 후자를 고정생장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소나무는 왜 고정생장을 택한 걸까? 자유생장을 택한 나무들은 자라는 속도가 빠른 대신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나무나 오동나무처럼 속이 빈다든지, 속이 차 있어도 목질이 물러서 조그만 위협에도 쓰러지기 쉽다. 하지만 1년에 딱 한 마디씩 생장하는 소나무는 천천히 자란 덕에 속을 꽉 채우므로 천 년의 풍상을 견뎌 낸다.

그런데 이렇듯 오래된 나무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속성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느리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면서 경쟁을 하지 않는 나무들이 결국 오래 사는 것이다.


20) 나무에게 흔들림이란?

나무가 하늘을 향해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바람에 수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냉혹한 바람에 꽃과 열매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뿌리의 힘은 강해지고 시련에 대한 내성도 커진다. 바닷가에 자리한 팽나무가 거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꼿꼿했더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가지들을 지닌 거목으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팽나무에게 있어 흔들림은 스스로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드는 기반이었다.

도종환 시인이 말했듯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고, 흔들리지 않고 곧게 서는 줄기도 없다. 나무가 하늘을 향해 높이 자랄 수 있는 것도 바람 앞에 무수히 흔들리며 살기 때문이다. 때론 가지가 꺾이기도 하고 꽃과 열매를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결국 중심을 다잡고 더 센 바람에 맞설 힘을 키운다.

사람도 마차가지다.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으려 너무 애쓰면 오히려 쓰러지게 된다. 그러니 흔들린다고 자책하지 말자. 흔들리되 다시 중심을 잡고 가면 될 일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걷다가 시련 앞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걸아가고.


<책장을 덮으며>

집 바로 뒤에 작은 산이 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담해서, 언덕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아침마다 새들의 아침인사를 들으며 작은 산길을 거니는 것은 나에게 큰 힘을 불어넣어준다.

생각해보니, 아침 산책이 내게 기운을 불어넣어준 가장 큰 이유는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신선한 공기를 내어주며 아침의 시작을 생기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일 아침 산책에서는 새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무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는 저자가 말하는 '완미'의 산책을 해봐야겠다.


변화무쌍한 사회에서, 더욱 나무처럼 살아야 할 이유를 일깨워 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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