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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Oct 19. 2020

10년 전 나에게

29살의 나는 젊은 꼰대였다.

곧 마흔이다.

아직은 30대다.


39살이 된 지금,

지난 나의 30대,

지난 10년을 되돌아본다.


10년 전 29살의 나는 ‘젊은 꼰대’였다.


대학시절, 학군단(ROTC) 생활을 했다.

학군단(ROTC)을 대표하는 대대장 후보생이었다.


군대에서는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후방에 있는 교육부대에서 나름 편하게 근무했다.


26살.

회사에 취직했다.

유통과 건설.

2가지 직종의 대기업에서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고,

나는 건설사를 택했다.

건설회사에서는 인사팀에서 근무했다.


당시 남성 대졸 신입 입사 나이는 평균 28세였다.

후배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건설 회사답게, 조직문화는 매우 수직적이었다.

군대보다 더 수직적이었다.


선배들은 나에게 나이 많은 후배들에게 기죽으면 안 된다고 정신교육을 했다.

난 그런 선배들의 가르침을 매우 충실하게 따랐다.

한두 살씩 나이가 많은 신입직원들도 가차 없이 밀어붙였다.

사무실 안에서도 폭언이 난무하는 회사였기에,

나도 소리를 지르며 신입들의 군기를 잡곤 했다.

선배들은 그런 나의 모습에 흡족해했고,

역시 장교 출신을 뽑길 잘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1살이 많았던 후배 직원이 있었다.

후배 집은 부유했다.

후배의 부모님은 분당에 큰 학원을 하셨고,

상가건물도 가지고 있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후배였다.

공유를 닮았던 그 후배는

학벌이면 학벌, 재력이면 재력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오직 내 밑에서 일한다는 것 빼고는.


29살의 봄이었다.

그 후배가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서 후배가 부모님께 나를 이렇게 소개해 주었다.

“엄마, 아빠. 제가 말했던 그 선배예요.”

부모님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네가 내 아들에게 함부로 한다는 그 녀석이구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후배의 결혼식은 내 삶을 변화시켰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내 자리는

나와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어야 하는 자리일 뿐,

그 어떤 이유로도 나보다 약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힐 수 있는 권한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4년  전.

군생활과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던 시절의 내 명함의 타이틀은 ‘청년장교’였다.

[25살의 내 명함 _ 내용은 일부 삭제했다]

나는 몇 년간의 회사생활을 통해,

진취적인 청년장교에서

젊은 꼰대로 퇴보하고 있었다.


내가 변했다는 것은 나만 몰랐다.

그렇게 나는 나의 30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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