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건네는 것이다.
명함.
사회관계에서는 이 작고 네모난 종이를 주고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명함을 주고받은 것은 서로 간의 서열을 정하는 과정이라는 의견도 있다.
문화심리학적으로 보면, 명함을 건네는 행위의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서로의 권력관계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다. 서열이 정해져야 상호작용의 룰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서로의 사회적 지위, 연배의 순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호작용의 룰이 정해지지 않는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김정운 지음. 21세기 북스 출판사 내용 중-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명함을 주고받는 의미는,
‘내 연락처를 드릴 테니, 당신은 나에게 연락을 하셔도 됩니다.’
라는 의미다.
명함을 건네는 것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소통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회사에서 노사담당자로 일한다.
그렇기에 내가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은 회사 직원이다.
조직도를 검색하면 내 연락처를 쉽게 알 수 있기에,
명함을 쓸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명함 2통, 총 400장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명함은 현장 직원들과의 저녁자리에서 사용했다.
현장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이게 나라냐?’를 넘어,
‘이게 회사냐?’라는 생각도 든다.
격하게 상기된 직원들을 만나,
당장 만족할 만한 답변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나는 명함을 건넸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제가 바로 답변을 드리지 못한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혹시 추가적인 의견이나 좋은 해결방안이 떠오르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제가 챙겨보겠습니다.”
라며 명함을 건넸다.
인터넷 기사를 보다 보니,
경기대학교 기숙사를 코로나 19 생활치료센터로 사용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갑자기 기숙사를 비워줘야 하는 학생들이 생겼고, 이재명 지사는 경기대학교 기숙사를 방문해 학생들을 만났다.
이재명 지사는 학생들을 우격다짐으로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명함을 건넸다.
누군가는 결정해야 하고,
결정한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재명 지사는 조직의 뒤편으로 숨지 않았다.
명함을 건네며 연락을 달라고 했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명함을 건네는 이재명 지사의 모습에서,
지난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명함은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보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건네줄 때
그 가치가 빛난다.
(PS. 이재명 지사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