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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Jan 23. 2021

태백산맥

2년 전.

조정래 작가님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완독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대 흐름 순서에 따라 읽기 위해,

가장 먼저 아리랑을 읽었다.

https://brunch.co.kr/@azafa/12


그리고 2020년 10월부터 약 3개월에 걸쳐 읽은 ‘태백산맥’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를 그려낸,

태백산맥의 기억에 남기고 싶은 표현들을 적어본다.

[태백산맥 _ 조장래 지음 _ 해냄출판사]


[삶과 사람]

1) 조직 형성에 있어서 제일 긴요한 것이 사람이었고, 제일 두려운 것도 사람이었다. 사람처럼 확실한 것이 없었고, 사람처럼 불확실한 것도 없었다.

(제1권)


2) 양반이란 것들은 그 많은 백성들의 피를 빨며 배를 불리다가 나라를 빼앗겼고, 다시 일본 놈들과 작당해서 일본 놈들의 보호를 받으며 같은 민족을 짐승 취급하고 있다. 일본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 그 놈들인지 모른다.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지주 놈들을 없애는 것은 한 몫에 해야 될 일이다.

(제1권)


3) 기대하지 않은 자에게 받는 핍박보다 기대했던 자에게 당하는 배신이 열 배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은 계기였다.

(제1권)


4) 땅, 땅, 그것은 무엇인가. 그건 먹고사는 근본이었다. 농사꾼에게 그것은 분명 명줄이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농토라는 농토는 모두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임자가 결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소작인이 될 수밖에 없었고 소작인으로 제아무리 피땀을 흘려도 평생 소작인 신세를 면할 수가 없었다. 지주들이 제멋대로 만들어놓은 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돼먹어 있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실낱같은 것일망정 희망이라는 것이 있어야 고생도 참고 고통도 견디는 것이다. 그런데 소작인으로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캄캄절벽이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아버지의 신세가 바로 자신의 신세였던 것이다. 그렇게는 살고 싶지가 않았다. 도저히 그렇게는 살 수가 없었다. 짐승이 아니고 사람인 바에야 그렇게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그렇게는 살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말리라는 결심으로 염상진을 따라 소작쟁의에 가담했던 것이다.

(제2권)


5) 인간이란 무엇인가. 동물이란 무엇인가. 굶주림 앞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 동물과 다름은 무엇인가. 시한부적 배고픔도 이리 견디기 어려운데 영속적인 굶주림은 얼마나 큰 형벌인가. 가난한 사람들, 아무리 몸부림쳐도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짜여진 사회구조에 얽매여 있는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인내심이 강한 것이 아니다. 사회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소수 부류들이 그만큼 철두철미하게 잔인한 것이다. 그런 사회구조는 기필코 바뀌어야 한다.

(제2권)


6) 남자라는 것은 권력이 약해지거나, 없어지면 순식간에 허수아비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염상구는 다시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제3권)


7) 서민영은 고흥 사람이었다. 그의 집안은 고흥에서 첫손가락 꼽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농토가 많은 양반지주여서도 아니었고, 높은 권력의 자리를 누리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물론 그의 집안은 지난 왕조에 걸쳐 벼슬자리깨나 누린 거창한 족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의 집안을 첫손가락에 꼬는 것은 그 족보를 자랑삼지 않은 데서 연유하는 것이었다. 양반이 족보 자랑을 하지 않는 것, 자기 과시욕구를 본능 중의 하나로 가진 인간의 상태로서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러나, 자기 과시욕구 못지않게 상대 비하 욕구 또한 인간 본능 중의 하나이고, 양반에 대해서는 피해의식과 적대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족보 자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주저 없이 첫손가락을 꼽는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납득의 이유로 부족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몰락한 것이 아니라 100여 마지기의 논을 가지고 소작을 내놓는 입장이면서도 가장이 손수 농사를 지었다. 양반이라는 신분으로 농사를 손수 짓는다고 하는 경우 그 정도가 문제이겠는데, 옛날에 임금이 권농책을 내걸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한 효과극으로 어느 하루를 골라 모내기 시늉을 하는 그런 식은 분명 아니었다. 지게로 똥장군을 진다거나, 볏잎에 눈 찔려가며 논매기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모내기 때 무논에 예사로 들어서거나, 소매를  걷어붙이고 물꼬를 막고 트는 모습은 아무나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 직접 노동도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의 집안 어른들은 대를 이어가며 효과적인 영농법을 개발 실천하면서, 그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일깨우고 활용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제3권)


8) 호의를 명령처럼 말하지 마십쇼. 호의는 주는 쪽의 권리가 아니라 받는 쪽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어차피 포로 취급을 받을 바엔 일반 포로들과 똑같이 지내겠소.

(제4권)


9) 하대치는 염상진을 올려다보며 티 없이 웃었다. 아, 저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사람의 하는 양을 바라보며 안창민은 소리 죽인 감탄을 했다. 사람의 관계가, 그것도 남녀가 아닌 남자와 남자와의 관계가 ‘믿음직스러움’을 넘어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입산한 다음부터였다.

(제5권)


10) 남을 위하긴요, 옳은 것은 옳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생각하고, 틀린 것을 바르게 잡으며 사는 것이 사람으로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하는 작은 일일 뿐인걸요.

(제6권)


11) 날이 갈수록 전사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상자 때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중에 3할은 이탈자였다. 투쟁의 악조건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그들은 산을 등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을 사상무장의 빈약이나 투쟁의식의 결여라는 도식적인 말로 비판할 수는 없었다. 그건 당원에게나 해당되는 단죄의 기준이었다. 그들은 당원이 아니라 전사였을 뿐이다. 결과만으로 그들을 배반자 취급하기 전에 그들이 갖는 한계성을 파악하고 최소한의 투쟁 여건을 유지시켜야 하는 것은 당의 책임이었다. 당이 처한 상황이 그것마저 할 수 없을 때 그들을 무작정 적으로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등을 돌린 그들은 이쪽에서 반동으로 낙인찍기 전에 벌써 자신들이 먼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쪽과 적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집을 떠나 혁명의 대열에 섰을 때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 품었을 각오와 용기와 정열과 기대의 순수함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모든 것을 버리고 적진을 향해서 떠나가는 고통과 괴로움도 치지도외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투쟁 여건이 유지되었을 때 그들은 과연 등을 돌렸을 것인가부터 검토, 반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그들을 죄인 만들어 등 돌리게 방치할 것이 아니라 어떤 긴급조치를 취해야만 마땅할 것이 아닌가.

(제6권)


12) 그러나 천점바구는 소대장직을 맡고부터 그 맛있는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다. 아무리 눈을 붙이려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천점바구는 비로소 왜 똑같이 투쟁활동을 하면서도 간부들이 지치지 않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건 책임감이 만들어내는 힘이었다.

(제8권)


13) 그 중인 계급의 생리란 게 아주 묘하고도 고약합니다. 중인 계급은 지배계급과 기본 계급 사이에 끼여 중간착취를 일삼는 게 그 계급적 특성 아닙니까. 그 중간착취 계급의 대표적인 게 관리로서는 아전 부류고, 도시사회에서는 상인이고, 농촌사회에서는 마름인 건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지배계급에게는 열등감과, 기본 계급에게는 우월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 이중성은 위로는 계급 상승 욕구로 나타나고, 아래로는 지배 확대 욕구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들은 위를 향해서는 간사한 아부와 아첨을 일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악랄한 횡포와 억압을 자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직접생산을 위해 땀 흘리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두 계급 사이에서 정치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보수집단인 반면에 정치세력의 변동에 따라 언제나 민감하게 변심하는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중성은 민첩한  현실주의와 교활한 기회주의를 낳게 됩니다.

(제9권)


14) “아하하하하...... 누가 다 따가고 남긴 까치밥을 따왔다 그 말이오? 아 참 애썼소. 어서 먹읍시다.”

 염상진은 고개를 젖히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건 감정의 위장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감나무 높은 가지 끝에 매달린 홍시를 따려고 애쓰는 강대진 소년의 위험스런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제10권)


[민족의 정기]

1) 아부님은 물론 서운해 허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입장이고, 제가 선생이 되어 일본정신을 가르치는 것은 친일이고 매국이 됩니다.

(제1권)


2) 백범, 그분은 마지막 남은 민족의 영도자가 아니었는가. 민족 앞에선 그분의 진실과 양심이 해방 4년 동안에 걸쳐 대쪽 같은 의지로 성취하려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가. 통일 자주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여 첫째 외세배격, 둘째 민족통일, 셋째 민주실천이 아니었던가. 그 실현을 위하여 그분은 미.소가 점령한 현실상황에 정면으로 맞서 제2의 독립투쟁을 결연히 선언하면서, 지금은 권력 쟁취의 시기가 아니라 진정한 독립 쟁취의 시기이므로 모두 사심을  버리고 하나로 뭉쳐야 할 때라고 역설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반탁을 했고, 단정수립을 반대했으며, 좌익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통일을 이룩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남북협상의 험로에 나섰고, 끝끝내 단정선거를 거부하여 권력의 길을 외면함으로써 스스로의 진정성을 증명해 보였다. 그분의 그러한 언행일치는 날이 갈수록 적을 많이 만들게 되었고, 군정의 미움을 샀고, 이승만의 증오를 받았으며, 한민당의 표적이 되었다. 상해 임시정부가 결성될 때 문 파수 노릇을 자청했던 그분이 주석의 자리에 앉아서도, 주국이 독립만 된다면 정부 청사의 수위나 청소부 노릇을 해도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한 일념의 실천 앞에 모략중상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무자비한 테러리스트, 배운 것 없는 무식쟁이, 임정을 등에 업은 권위주의자, 자기의 생각밖에 모르는 고집불통, 그리고 남북협상을 시작하게 되자 급기야 공산주의와 야합하는 민족반역자. 기회주의자라는 모략중상을 한민당 쪽에서는 서슴지 않았다. 이승만처럼 자기네들과 야합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행한 그런 모략중상은 그 얼마나 치졸하고 저열한 것이었는가. 공산주의나 그 추종자들은 민족과 국가를 소련에 팔아넘기려는 집단이라는 황당하고 유치한 주장을 앞세우며 친일반역자들은 스스로를 민족진영이라 자처하는 또 한 번의 반민족 행위를 저지르면서 진정한 민족주의자 백범을 반대쪽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백범을 믿고, 그분의 노선을 지지했던 것은, 그분이 내세운 세 가지 실천목표가 장구한 민족의 삶을 위해 옳고 포괄적이었기 때문이고, 그 실천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편중되지 않고, 민족우선 아래 모든 이데올로기를 포용할 수 있는 폭과 능력을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그분이 정말 임정을 등에 업은 권위주의자였다면 일흔넷의 나이로 서른다섯 살에 불과한 김일성을 만나러 갈 수 있었을 것인가. 그분은 권위주의자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고집불통도 아니었다. 민족을 위한 대의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객관적 지위도 개의하지 않았고, 개인적 기분도 일소한 것이 아닌가.

(제5권)


3) 11월 중순 추위가 이 지경이면 정작 1,2월 추위는 어떨 것인가. 그는 이를 악물고 걸으며, 이런 땅에서 독립을 찾겠다고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했다. 나는 이제 여기를 왜 왔는가. 민족해방을 위해서...? 그래, 역사의 바른편에 서고자 했던 작은 의지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니냐. 역사는 당장 손에 잡히는 실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존재한다. 역사는 지금 당장 한 벌의 솜옷을 당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건 이런 시련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것의 존재를 믿을 때, 그리고 행동할 때 그것의 실체는 드러난다.

(제8권)


[민족의 비극]

1) 일제 치하에서 저지른 죄상으로 마땅히 처단되거나 단죄를 받아야 될 고등계 형사나 순사. 순사보 밀정 노릇을 했던 부류들이 다시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일제 치하에서보다 한두 계급씩이 더 승진된 상태로서였다. 일본인들이 차고앉았던 높은 자리를 채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었다.

(제2권)


2)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아까 젊은이에게도 총이 없었던 것처럼 그 많은 시체 옆에도 총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편에서든 적이든 총만을 회수해 간 모양이었다. 쓸모가 없게 된 시체는 방치되고 쓸모가 있는 총은 챙기고, 싸움터의 비정이 거기 있었다.

(제2권)


3) 지금 우리 사회에선 공산주의가 무서운 게 아니요. 그런 무지막지한 극우세력의 폭력이 무서운 거요.

(제5권)


4) 심재모가 그런 식으로 해서 풀려나는 것에만 정신을 집중한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미 현재와 같은 상황 속에서 군인 생활을 한다는 것에 근본적인 회의를 느꼈던 것이다. 군부 안에서 관동군 출신들이 판을 치고 오히려 광복군 출신들이 수세에 몰리는 것까지는 그나마 수적인 열세로 보아 넘겼던 것인데, 계엄사령관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무엇을 위한 군인이며, 누구를 위한 군인인지 회의가 자꾸 깊어져 갔던 것이다.

(제5권)


5) 미군정 기간은 공산당이 당한 수난에 앞서, 살기 좋은 새 나라가 세워지기를 바라며 행동으로 나섰던 대중들의 수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이 당한 수난에 비하면 공산당이 당한 수난은 별로 대단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군정은 자기네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책임 회피하기 위해서 무고한 대중들을 무조건 좌익이나 그 동조세력으로 몰아붙였고, 또 공산당 쪽에서는 대중들이 그렇게 일어난 것은 자기네들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공적 과시를 하고 있는데, 그건 아전인수의 큰 착각입니다. 그게 정치선전을 위한 의식적인 과장이라면 모르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거기서부터 그들의 감상주의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제5권)


6) 연대장은 날마다 전화통 속에서 열 받친 소리를 질러댔다. 그 ‘무조건 몰아내라’는 우격다짐이 심재모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소개령을 내렸으면 그에 따르는 최소한의 대비책은 마련되어 있어야 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는 것만이 아니라 입을 것이 있어야 하고, 잠잘 곳이 있어야 하는 것은 상식도 못 되는 철칙이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당사자들의 것으로 해결한다 하더라도 잠잘  곳은 마땅히 소개시키는 쪽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더구나 계절은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아무런 대비도 없었고, 상부에서는 무조건 몰아내라고 답치고 있었다.

(제6권)


7) 손승호의 입에서 비명이 터지며 몸이 오그라 들었다. 그리고 책상 위로 피가 뚝 뚝 뚝 떨어져 내렸다. 그 선연하게 새빨간 핏방울들의 떨어져 내림을 손승호는 꼼짝도 하지 않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아, 너 같은 친일파 놈에게 내가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너 같은 민족반역자들이 이 땅에 도대체 몇이냐. 내가 이렇게 견딜 수 없을 때,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네놈들한테 이런 꼴을 당한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아,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이게 무슨 나라냐,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해방이 되자마자 너 같은 놈 하나를 죽이고 나도 죽었더라면 얼마나 의미 있는 죽음이었을 것이냐. 너 같은 종자들이 150만,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150만이라면 이 땅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냐. 네놈을 죽일 무기만 있다면 네놈을 당장 죽이고 나도 죽고 말겠다, 정말이지 죽고 말겠다.

(제6권)


8) 우에서 시키는 일잉께 워쩔 수가 읎다 허겄지요들. 고것이 워디 사람으로 헐 소리요? 웃대가리덜이야 권력 잡겄다고 못된 일 억지로 시킨다 허드락도 현지에서 일허는 사람덜이 정신 채리고 허먼 그리 기가 차게 쌩사람덜 죽이지는 안혔을 것 아니겄소?

(제8권)


[인생의 가르침]

1) 선생도 성불고행을 하시지요. 육신의 아픔 아니 고통은 피하려고 하면 점점 커지는 법이지요. 그것을 다스려야 합니다. 한 고비만 참아 넘기면 그 사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선생도 관세음보살을 계속 염하면서 저처럼 앉아보세요. 순간의 고통은 크겠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평안이 옵니다.

(제2권)


2) 생명 있는 만상은 상처를 입으면, 그것이 치명적이지만 않으면 다 저절로 낫게 되어 있어요. 그런 힘이 생명 속에는 들어 있는 것이고, 그게 자연의 오묘한 섭리요.

(제2권)


3) 내가 선우 선생한테 하고 싶은 말이 한 가지 있다면, 현실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선우 선생이 겪은 경험에 예속되거나 또는 피해를 입은 보복 감정으로 가치를 설정하거나 판단의 기준을 삼거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탈피하지 못하면 생각이 왜소해지고, 사태를 오판하게 되고, 사람을 오해하게 되고, 스스로 외로워지게 됩니다

(제3권)


4) 사람이 사는 경우나 생각하는 이치가 사방, 팔방에 미쳐서도 안 되고 십육방, 더해서 삼십이방까지 미칠 수 있어야 그나마 원의 모양에 가까운 원만함을 득하게 되는 법인데, 이놈에 세상이 어찌해서  사방도 아니고 이방으로 토막이 나고, 그것도 또 반토막을 내서 일방만 보라 하니 이것 참 큰일 날 세상이 되었다. 전원장이 당하는 고초가 무어냐. 세상사 사람 사는 이치를 둥글게 크게 보려 함인데 그걸 죄로 다스리는 것 아니냐. 세상만사가 양이 있어야 음이  있고, 음이 있으니 양이 있고,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순리로 풀리는 법인데, 양은 양만 옳다하고, 음은 음만 옳다 하니 갈수록 꼬이고 얽힐 수밖에. 예로부터 이런 세상을 난세라 했고, 난세에는 깊고 넓은 뜻 가진 사람이 살기가 어려우니라.

(제3권)


5)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늘의 뜻을 거역한 존재가 일찍부터 있었어. 그게 바로 인간이야. 하늘이 내린 지혜를 활용하되 탐욕적 이기를  채우는 무기로 악용하기 시작한 거야. 인간의 역사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지혜를 악용해 가며 인간끼리 살육을 되풀이해 온 기록에 불과해. 뱀이나 개구리가 동면을 위한 영양섭취를 하나 다음 해 봄까지 빈사상태로 견딜 수 있을 정도만 하는 것이고, 개미나 벌이 겨우살이 갈무리를 하지만 마찬가지로 해동이 될 때까지 필요한 최소량의 먹이만을 보관해.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다음 해 봄까지가 아니라 자신의 평생을  위해,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자손 대대로 이어질 갈무리를 하고자 탐욕한 것이야. 그 탐욕의 부가 상대적인 빈을 낳게 되고, 더 큰 탐욕을 채우고 지키기 위해 필연적인 폭력이 조직화되고, 그 폭력에 대항하고자 하는 또 다른 힘이 결속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살육이 자행되는 것 아닌가. 먹이 다툼을 해서 동류끼리 살육을 자행하는 것도 인간뿐이야. 동물끼리 상대방의 생활터전이나 사냥터를 침범하지 않는 것은 모든 동물들의 불문율이네.

(제3권)


6) 어느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이 든 것까지는 주인의 책임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들어온 도둑에게 어떻게 대처하고, 무슨 방법으로 몰아낼 것이냐 하는 것은 주인의 책임입니다. 도둑을 맞아 한 집안이 망하게 되었을 때, 도둑은 그 집안을 망하게 한 원인일 뿐이지, 책임을 물을 대상은 아닙니다. 도둑은 직업상 책임을 지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다만 그 집안사람들이 비겁하고 빙충맞아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을 도둑에게 전가시킬 수는 있겠지요. 아니면, 무식하고 아둔해서 원인과 책임을 구분조차 못하고 있거나 말입니다.

(제3권)


7) 여러분들은 거의가 배가 고파 진달래꽃을 따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가지고 좋은 글을 지은 건 허명길 군 한 사람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첫째, 그 슬픈 일을 하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서입니다. 그리고 둘째, 그 일을 창피스럽거나 부끄럽게 생각해서 감추려고만 했지 글로 써보려고 마음먹지 않아서입니다. 여러분, 좋은 글을 짓는 것은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를 솔직하게 쓰는 것입니다. 자아, 보세요. 만약 허명길 군이 남에게 보이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밤중에 배가 째지게 아프고/옷에다 그만 설사를 했네/주욱주욱 쏟아진 물똥은/진달래꽃 물똥이었네, 이 대목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 글은 잘 지어진 글이 될 수 없어요. 이 대목이 바로 제일 잘된 대목이에요. 그리고 그다음 대목, 엄니가 물똥을 닦아내며/그 꽃 많이 묵으면 뒤져/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네/나는 거짓말로 크게 울었지, 얼마나 눈에 선하게 보이도록 있는 그대로 썼습니까. 이 두 대목이 없었다면 이 글은 칭찬받을 수 없는 보통 글이 되고 말았을 거예요.

(제4권)


8) 그들은 자기네가 잘못을 저질러 당한 일까지 이쪽의 책임으로 떠넘기며 작당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할 것이다. 너희들이 방어를 철저히 했다면 우리가 그런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그렇게 되면 이쪽에서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대꾸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이 통하지를 않는 것이다.

(제5권)


9) “자네들, 앞으로 나허고 일헐려면 나가 허는 말 똑똑허니 들어 두드라고. 우리 경찰이란 것이  머신지 다들 알겄제? 민중의 지팡이 아니드라고. 말만 뻔지르르하게 내걸지 말고 실지 행동도 그렇기를 이 자리서 당부허는 바이여. 나는 일정 때부텀 순사질얼 험스로도 순사가 사람들 윙 올라스는 것이라고 생각혀 본 일이 읎는 사람이여. 인자 일정 때도 아닌디다가, 이름도 ‘순사’가 아니라 ‘경찰’로 달라졌응께 우리 생각도 달라져야 된다 그 말이네. 경찰이 사람들을 올라타고 앉어 욱대기고 잡지고 왈기먼 된다는 생각을 싹 읎애라는 말이시. 긴말 더 헐 것 읎고, 그리 못헐 사람은 나하고 일 못헌다는 것만 알아두더라고.”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감돌고 있었으며, 그 목소리는 느릿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제6권)


10) 그래, 누가 더 옳은지는 세월이 지나가 봐야 알 일이고, 지금은 서로 총을 맞댄 어지러운 세상이다. 사람이 권세를 지녔을 적에 그것을 여러 사람을 위해 쓰면 겸손해지고, 자기를 위해 쓰면 교만해지는 법이니라. 실인심하지 않도록 하거라.

(제7권)


11) 여러분, 학습에 들어가기 전에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이 시간부터 여러분들 자신이 무식하다는 생각을 싹 버리십시오. 여러분들은 절대로 무식하지가 않습니다. 세상사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다 알고,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아는 여러분들이 어찌 무식하단 말입니까! 사람의 유식이나 무식은 학교 공부를 배우고 못 배우고의 차이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 공부를 제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그 배움을 바르게 쓰지 못하고 나쁜 쪽으로 쓰면 그 인간이야말로 상무식 꾼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무식하다고 업신여기고 무시하면서 사람대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그 설배운 인종들이었습니다. 그런 인종들의 잘못된 행투 때문에 여러분들은 배우지 못한 것을 무슨 큰 죄나 진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 학습장에 오시기 전에 벌써 한글 교본을 받으셨고, 매일 학습도 받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입산 전에도 무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렇게 여러 가지 학습도 받고 계시니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나는 무식하다’하는 생각을 깨끗하게 없애버리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드릴 말씀은, 공부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의외로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생각은 바로 ‘나는 무식하다’ 하는 생각과 함께, 공부는 특별난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마음먹은 데서부터 생겨난 잘못된 생각입니다. 여러분, 공부는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공부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자식, 여러분들의 조카가 공부를 해내지 않습니까? 그럼,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인자 머리가 굳어버려서요. 또는, 나는 워낙에 머리가 둔해서요. 이런 말들은 말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나이를 먹었다고 굳어지는 머리는 절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중에서 머리가 둔해 학교 공부를 작파하신 분들이 있으면 어디 손을 들어보십시오. 한 분도 없으시지요? 그렇습니다.

(제8권)


12) 물소리는 물줄기가 장애물과 싸우는 소리였고, 그 소리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장애물이 많다는 증거였다. 물줄기는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부딪치고, 깨지고, 부서지고, 휘돌고, 솟구치고, 나뒹굴고, 처박히고, 맴돌이질 쳤고, 그러면서도 흩어지거나 멈추지 않고 하나로 뭉쳐 끝끝내 목적하는 곳까지 도달하는 것이었다.

(제9권)


13) 우리는 그들의 달라진 겉모습을 문제 삼기 전에 우리가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그들이 우리한테 가질 실망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제10권)


[시대적 상황]

1)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제가 파악하고 있는 대로 대충만 얘기하죠. 그러니까, 2차 대전 종전 무렵의 세계적 정치상황은 윌슨이 위장적이나마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시대는 이미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의 주역이 식민주의의 대표적 국가인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이었다면 2차 대전 종전 무렵에는 그 주역이 미국과 소련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항쟁을 계속해서 벌인데다, 독일의 침략을 받음으로써 식민주의 국가들은 협공을 당하는 이중적 상황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의 한편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소련이 그 세력을 팽창시켜 나가고 있었고, 자본주의 국가 형성을 완성시킨 신생 미국은 그 힘이 갈수록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궁지에 몰리고 지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자연스럽게 연합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소련도 뒤늦게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상반된 이념을 추구하면서도 그들이 동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독일과 일본의 위협으로부터 서로를 방어하고자 하는 공동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실리적인 결합이었고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계를 무대로 삼아 자신들의 이념을 확장시키려는 서로 다른 꿈을 속으로 감추고 있었습니다. 2차 대전 종전 전에 그들은 이미 그 준비를 했던 것이고, 종전과 동시에 그들은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들의 이념 팽창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분할점령입니다. 우리나라의 분할점령은 독일의 분할점령과는 전혀 그 성격이나 의미가 다릅니다. 미국과 소련이 전범국인 독일을 분할 점령한 것은 승전국으로서 전리품을 처리하는 당연한 권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그런 권한은 또 하나의 전범국인 일본에게 행사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들은 우리나라를 분할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팽창주의는 소련의 팽창주의가 일본에까지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연합국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미국은 특히 일본 문제에 있어서는 발언권이 절대적이었지요. 일본을 도맡다시피 해서 싸운 것이 바로 미국이니까요. 그래서 미국은 일본 열도를 독일식으로 나눠먹지 않고 독식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건 태평양으로 뻗치는 소련의 힘을 견제하는 동시에 태평양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의 세력권을 형성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당연히 한반도 분할이 필요했고, 독일에서와는 달리 일본 쪽에 전적이 미미한 소련은 한반도의 반이나마 차지하는 데 동의한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에 ‘일본 지상군의 항복을 받기 위해’ 한반도에 진주하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고, 뒤이어 ‘통치능력이 생길 동안 신탁통치’를 해주겠다는 일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해방을 갈망해 왔고, 독립국가 건설을 열망하는 우리 민족의 뜻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된 것입니다. 두 나라의 점령군을 맞으며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 두 강대국이 내세운 명분을 무산시킬 수 있도록 일사불란한 민족적 단합을 보여야 했습니다. 둘째로, 그들의 정치적 도구가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며 제2의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첫째도 실패, 둘째도 실패함으로써 식민지 상황보다 나을 것 없는 분단국가를 만드는 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은 정치. 사회적 혼란과 자체분열을 일으키는 민족적 희생이 야기되게 되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을 떠나기 전 그의 앞을 가로막는 군중들에게 ‘여러분, 나에게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주시오’ 한 말은 우리 민족의 행동방향을 단적으로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해방은 식민지 시대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식민지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전 시대에는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민족적 명제나 자존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백인들이 만들어낸 이즘이라는 것에 최면이 걸리고 마취되어 우리끼리 적을 삼아 살육을 자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즘을 일단 정치 도구화한 이상 상호 양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 실현을 위한 상호 상승작용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정치 생리이며 힘의 역학입니다. 벌써 서로를 괴뢰라고 공공연하게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유치하고 졸렬하고 파렴치한 짓들입니까. 그러나 그 뻔뻔스러움과 무모함과 이율배반이 곧 우리의 정치현실입니다. 비판이나 선택이 용납되지 않는 획일적 모순의 질서에 줄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의 길입니다. 그 줄에서 이탈하는 자는 적이고, 적은 처단하는 논리만이 절대적일 뿐입니다. 이 현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다만 시작이라는 것뿐입니다. 미.소의 세력에 우리가 아무리 민족적으로 단결해서 대항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부류들이 서로 양쪽의 정치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 편가름은 앞으로도 무수한 인명의 희생을 요구할 것입니다. 100년 후의 역사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비판하고 판정 내리게 될지 모릅니다.

(제2권)


2) 임만수, 똑똑히 들어! 모두 까내놓고 뒤집어놓고 보면 그저  타령이라고? 네놈의   마디로, 네놈이 일정시대에 얼마나 개같이 더럽게 살았는지 환히  수가 있다.  눈엔  밖에  보인다고, 나도 네놈처럼   아느냐. 네놈이 일본 말단 순사질이나 형사질을  먹다가 해방이 되고 나서도 아무런  받지 않고 다시 복직되어 토벌대장 노릇을  먹으니, 나도 네놈 같은 과거를 가진 관동군 출신쯤으로 뵈는가? 정신 똑바로 차려.  독립군 출신은  되지만, 학병 출신이다. 글줄이나 쓴다는 놈들은 ‘영광스런 성전에 기쁨으로 참전하자 선동해 대고,  같은 놈들은 덩달아  명이라도  전쟁터로 내몰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었던 바로  학병 출신이야. 1 남은 공부를  작파하고 내가  군대에 투신한  아는가! 바로 네놈들 같은 썩어빠진 종자들이  나라의 권력조직 속에 득실거리기 때문이었다. 위로는 친일 지주계급들이 뭉쳐지고, 아래로는 네놈 같은 민족반역자들이 모여 권력조직 칠팔 할을 장악했으니  나라 장래를 좌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반란 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임무를  토벌대가 여관 잠을 자고 여관 밥을 먹어? 그러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도 모르고 입을 놀려대?  같은 놈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놈도 남김없이 감옥에 처넣었어야 . 그리고, 엄정한 재판을 거쳐 형량을 정하고,  기간을 강제 노동으로 채우게  했어야 . 그것만이 네놈들의 반역으로 더욱 피폐해진 조국 건설에 다소나마 봉사하게 하고, 민족 앞에 최소한의 사죄를 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네놈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것인지 깨닫지 못했고, 더구나 다시 권력조직에 포함되고 말았으니 모두가 네놈처럼 안하무인의 짓을 하는 것이야. 여관 잠을 자고 여관 밥을 먹다니, 네놈은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영창감이야!

(제3권)


3) 당장 농지개혁을 단행해 논밭을 무상으로 분배해봐. 벌교지역을 예로 들더라도, 이번에 입산한 농민들의 90 퍼센트는 아마 하산하게 될 거야. 자기네들의 절대 목적이 성취됐는데 공산주의를 추종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말야. 현 정보는 그 간단명료한 원인 해결은 하려 하지 않고 공산주의만 척결하려 하고 있어. 말이 해방일 뿐이지 정치하는 방식이나, 지주들이 그대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나, 변하지 않은 소작 조건이나, 그대로 일정시대의 연장인 게야. 그러니 소작쟁의가 계속될 수밖에. 친일파 지주계급들, 참 짐승만도 못한 족속들이야. 일제 때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군정과 야합해서 더 부자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야. 적산을 차지한 게 다 그들 아닌가. 그 부귀영화를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반대세력은 계속 공산주의자들로 몰라 붙이겠지. 이미 정치적으로 국토와 민족이 분단됐는데, 그것도 모자라 반쪽에서지만 민족 분열까지 조장하고 있는 게야.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점점 더 문젯거리가 생길 거야. 이 나라 장래가 큰 걱정이네.

(제3권)


4) “욕이 듣기 거북합니까?”

“아휴, 하고 싶은 말보다도 욕이 더 많으니 저게 어찌 된 일입니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왜 이곳 사람들은 욕을 그렇게 많이 합니까?”

“그게 전라도라는 뎁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욕 많이 하는 걸 탓하면, 욕도 못하면 무슨 수로 사느냐고 맞섭니다.”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글쎄요., 뼈 빠지게 농사지어 지주한테 다 뺏기고, 배곯고 헐벗고 사는 억울함과 분함을 욕으로라도 풀어야 그나마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뜻이겠지요.”

(제3권)


5) 나무 복도에 윤기가 반들거렸다. 어린 조막손들의 정성스런 노동이 거기에 어려 있었다. 깨끗하게 청소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무판자가 유리를 닮도록 반들거리는 데서 김범우는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청소도 교육이라고 강조한 일본 교육의 모습이 변질 없이 그대로 시행되어 어린것들에게 불필요한 노동을 강요한 결과가 바로 그 복도의 반들거림이었다.

(제4권)


6) 환갑 진갑 차려먹고 세상 떠나는 것을 천복 중의 천복을 누리는 것으로 여겨옴은 농사의 중노동과 소작의 가난에 시달리면서는 도저히 그 나이까지 삶을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으면서 손자를 보고, 마흔다섯이 되면 중늙은이로 불리며 손자 오줌으로 옷섶을 적시고, 쉰고개에서 늙은이가 뙤고 마는 궁핍한 인생살이에서 환갑 진갑상을 받아본다는 것은 기름지게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일뿐 소작살이를 면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어둠 속에 멀리 있는 불빛처럼 까마득한 이야기였다.

(제5권)


7) 김범우는 전부터 혐오를 느껴왔던 ‘사바사바’니 ‘빽’이니 하는 말을 이제 실감 있게 뇌며, 그럴 만한 사람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했다. 사바사바는 ‘통역정치’ 또는 ‘요정정치’라고 불리었던 미군정의 음성적 정치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말이었고, 빽은 이승만 정권이 세워지면서 연줄과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풍조 속에서 생겨난 유행어였다.

(제5권)


8) 떠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 그 두 사람뿐일까. 그들은 떠나고자 하지만 정작 갈 곳은 그 어디인가. 그들을 떠나고 싶게 만든 세상, 그 세상이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

(제5권)


9) 반민법은 농지개혁법과 함께 국회에 상정될 때부터 친일파 집단인 한민당을 중심세력으로 하여 각종 친일세력들의 방해와 저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문제는 민족적 삶을 위해 풀지 않으면 안 될 숙제였으므로 결국 반민법이 먼저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그 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친일 집단은 기가 꺾이거나 수그러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법의 시행을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방해 저지하고 나섰다.

(제5권)


10) 그 사람덜이 참말로 공산당이라고 생각허시요? 나넌 그리 생각허덜 않소.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으로 몰아치고 있소. 그 사실을 몰르는 경찰이 워디 있소. 다 암시로도 자기덜이 저지른 죄 눈가림 허니라고 나라허고 항꾼에 그 사람덜 공산당 맹글로 나스는 것이제라.

(제8권)


11) 사실 정부에서는 병력 확보만을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을 뿐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조처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정부에 완전히 환멸하고 있었다. 정부가 그렇게까지 무계획하고 무책임하고 무질서한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정부의 그런 처사는 명백한 살인행위였다. 그로서는 그런 국가, 그런 정부, 그런 정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하등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탈출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 있었다. 인솔 군인들은 탈출하면 무조건 사살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언제 얼어 죽고,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르면서 이 죽음의 행렬을 따라가며 서서히 죽어가느니 차라리 탈출을 하다가 총을 맞아 죽는 것이 낫다 싶었다.

(제8권)


12) 법이라는 강제행위로 저런 참상을 빚어내고 있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군인도 아니면서 군인들의 통제 아래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은 어떻게 보상될 것인가. 보상은 차치하고 그 죽음의 명목은 도대체 무엇인가. 전사인가, 자연사인가. 아직 군인이 아니니 전사로 취급할 리가 없다. 그럼 자연사인가? 그렇지도 않다. 그들이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병들어 죽은 것은 아무런 대책이 없이 행해진 강압행위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여러 종류로 타살당한 것이고, 정부는 공공연한 살인행위를 저지른 것이었다.

(제8권)


13) 경찰들의 경우 토벌대 참가는 의무적 윤번제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토벌대에 나가기를 꺼려 꽁무니를 빼려고 했고, 그 윤번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수를 써서든 뒤 빠져 책상을 붙들고 앉아 있으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지만, 토벌에 나갔다 하면 어느 산골짜기에 처박혀 죽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경찰들은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일수록 어김없이 친일 경력의 소유자들이었고, 세상의 물결을 요령 좋게 타고 넘는 기회주의를 이미 몸에 익힌 그들로서는 목숨을 내거는 일에 서로 몸을 사리고 뒤 꽁무니를 빼려고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남모르게 뒷손을  쓰고, 서로 간에 모함을 해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자기네의 생존보호를 위해 이승만 정권을 떠받치며 반공 세력으로 똘똘 뭉쳤던 그들의 집단 기회주의는 정작 전쟁이 벌어진 다음부터는 개개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각자가 개체 기회주의를 발동시켜 내부 혼란이 야기되고 있었다. 뒷손을 쓰자니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마련하자니 부정을 저질러야 하고, 부정을 저지르다 보니 턱없이 민간인들을 괴롭히고, 그런 것을 노려 옆사람이 밀고하게 되고... 돈 없고 빽 없는 놈만 토벌대에 나가 개죽음한다는 말은 경찰 내부를 벗어나 세상이 다 아는 일이기도 했다. 그것은 경찰의 부패를 조장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제9권)


[책장을 덮으며]

소설 아리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던가.


친일파들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을 팔고 자신의 이익을 취했다.


해방이 되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미군정은 대한민국의 안정을 위해

일제시대의 군경의 경력을 인정해 주었다.

지주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뜻에 맞지 않는 자들을 ‘빨갱이’로 둔갑시켰다.


그렇게 우익은 좌익을 죽였다.

그러자 죄익은 우익에 복수했다.

해방직후 하나로 뭉쳐야 했던 한민족은

어느쪽 편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다.

미.소 냉전시대의 대립은 한반도의 분단을 통해

대리전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사상의 대립속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같은 편이 아니라면 죽음이 있을 뿐이었기에,

그 싸움은 한치의 양보없이 치열했다.


‘태백산맥’을 통해,

우리 민족의 기질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은 애국자가 많다.

정의를 추구한다.

대부분이 그렇다.


역사는 개인적 영달에 관심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진실을 왜곡시키려 할 때,

어떤 문제점을 가져오는지를 일깨워 준다.


나에게는 소설 태백산맥이 그랬다.

해방 후 혼란의 시기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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