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 허지웅은 ‘마냐사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린라이트와 함께 수위를 넘어서는 토크를 하는 사람이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런 그가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 투병생활을 겪고 쓴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었다.
사람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허지웅 작가님은 이와 같은 통찰력이 있는 분이었으나, 19금 토크를 하는 사람으로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해 주었던, ‘살고 싶다는 농담’의 소중한 표현들을 적어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른다. 백 살 넘게 살지도 모르고, 재발한다면 내년에 다시 병동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의욕이 넘친다. 그리고 많은 결심들을 한다. 나는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고 말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여러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년이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바보같이’라는 마음이 앞섰다. 마흔두 살의 나는 점점 ‘그때의 나라면 지금 이렇게 안 할 텐데 바보같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나이 든다는 것은 과거의 나에게 패배하는 일이 잦아지는 것과 같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찾을 수 없는 원인을 찾아가며 무언가를 탓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하자. 그러면 다음에 불행과 마주했을 때 조금은 더 수월하게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냥 좋은 일을 하면 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 Karl Paul Reinhold Nuebuhr -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멋지고 빼어난 것들 덕분이 아니라 언제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된 선행들 때문에 구원받을 것이다.
농부란! 참을성 없고!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하고! 울보, 심술쟁이, 머저리에, 살인자라고! 제기랄, 웃겨서 눈물이 다 나오는군. 하지만 말이야. 도대체 그런 괴물을 만들어낸 게 누구야. 누구냔 말이야? 네놈들이라고, (전쟁일 일삼은) 바롤 사무라이라고! 이 나쁜 자식들아!
- 영화 <7인의 사무라이> 구로사와 아키라 -
순백의 피해자란 실현 불가능한 허구다. 흠결이 없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순백의 피해자라는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걸 측정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 또한 언젠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순백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제받지 못할 것이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불행을 다스린다면, 그리고 그걸 가능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얼마든지 불행을 동기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보다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생각한다. 희망이 없다. 운이 없다, 는 식의 말로 희망과 운을 하루하루 점치지 말라. 희망은 불행에 대한 반사작용과 같은 것이다. 불행이 있다면, 거기 반드시 희망도 함께 있다. 부디 나보다 훨씬 따뜻하고 성숙한 방식으로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며 함께 내일을 모색해나갈 수 있는 어른이 되길. 그리고 행복하길.
평가와 스스로를 분리시키라는 말은 곧 채권자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피해의식과 결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결심하라는 것.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 오직 그것만이 우리 삶에 균형과 평온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가정법과 비교 때문에 불행해진다.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남들은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뭘 한 거지…?’
외부와의 비교는 내면을 불행하게 만든다.
현재를 가장 안 좋은 시기로 기준을 잡고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삶에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너무 계산적으로만 살 필요도 없다.
선행을 베풀 때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즐기는 것.
이 책을 통해, 그것이 행복한 삶.
그리고 진실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