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리의 문장 에세이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라는 책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서예리 작가님의 ‘오늘을 버텨내는 데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를 읽었다.
서메리 작가님의 책은 항상 제목부터 공감이 간다.
물론 내용에도 공감된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나도 책에서 읽은 문장들이 큰 힘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예리 작가님에게 힘이 되어준 문장들 중,
나에게도 힘이 되어준 표현들을 적어본다.
어른들은 유난히 책을 사랑하고 엉뚱한 상상을 즐겨하던 나를 기특해하면서도, 좋아하는 일과 직업 사이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사’면 좋고, ‘원’도 나쁘지 않지만, ‘가’는 결코 직업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가’들이 하는 일은 취미의 영역에 남아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고, 정말 그래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글을 쓰는 변호사나 그림을 그리는 회사원이 되는 건 괜찮지만, 글이나 그림을 순수한 직업으로 삼는 건 정신 나간 짓이라고 귀에 목이 박히도록 들었다. 한때 내 세상의 전부였던 그 좁은 울타리 안에서, ‘가’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굶어 죽을 길로 뛰어드는 행위를 뜻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특히 뭔가를 창작하는 콘텐츠 프리랜서의 영역에 진입하면서. 내 수면 패턴은 뜻하지 않게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일단 증상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다. 불면증, 수면장애, 입면 장애를 비롯해 언제나 특정한 병이나 질환을 연상시키는 용어로 불리던 그 증상이 어느 순간부터 ‘야행성’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기분 나쁘지 말라”는 명령 자체가 타인에 대한 무례요, 침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비판을 빙자한 악플을 읽으며 침울해 있는데, 문득 이 상황 자체가 우습게 느껴졌다. 아니, 내 기분을 왜 당신이 결정하는 건데? 기분이 나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시답잖은 변명을 할 게 아니라 아예 말을 말아야지!
나는 큰맘 먹고 그동안 내내 눈에 밟혔던 외모 지적 댓글을 지워버렸다. 오래도록 방치해서 더러워진. 방을 마음먹고 청소한 듯한 개운함을 느끼면서, 내게 유감스러운 일을 결정할 권리, 그것은 분명 내게 있었다.
어떤 사람들의 어떤 말은 내 소중한 집을 한순간에 초라한 월세방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소소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내 노력은 집주인 좋은 일만 시켜주는 바보짓이다. 경제적으로 옳은 조언이 꼭 사회적으로도 옳은 조언은 아님을, 그들은 모른다. 내 행복을 깎아먹는 것이 매달 나가는 월세가 아니라 자신의 무신경이라는 사실 또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미안한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길고 구차하게 상황을 에두르기보다 간결하고 솔직하게 핵심을 고백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애초에 미안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 바닥에서 배운 최고의 노하우는 역시 ‘질문해도 된다’이다. 모르면 물어봐도 된다. 직접 겪어보니,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던 프리랜서의 세상에도 자신이 아는 것을 전해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마도 과거의 나처럼 똑같은 과정을 통해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세계는 아직도 비밀에 싸여 있지만, 그 비밀은 더 이상 깰 수 없는 철옹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묻고, 나누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그곳은 언젠가부터 ‘그들만의 세상’이 아니라 ‘우리들의 세상’이 되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맛있지? 들어간 것도 진짜 없는데. 단무지랑 채소에 햄 쥐꼬리만큼. 그게 전부잖아.” 어느 점심시간 누군가 제기한 본질적 의문에,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김밥과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을 내놓았다. “김이랑 밥으로 만든 거잖아. 사실 김밥이 맛있는 건 대단한 토핑이 아니라 그 두 가지 기본재료 덕분이라고.”
지금도 김밥을 먹을 때면 가끔씩 그 말이 생각난다. 내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본 재료가 있다면,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 먹으며 친구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바로 그런 순간들일 것이다.
싱싱한 상추에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과 감칠맛 나는 쌈장을 듬뿍 올려 든든하게 먹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면서, 내 몸 또한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런 식단으로는 군살 없이 미끈한 모델 체형을 꿈꿀 수 없겠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시간에 재밌는 책이나 한 권 더 읽자는 것이 지금의 내 결론이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삼겹살 자체보다도 오히려 그 기름으로 튀긴 마늘과 버섯의 칼로리가 더 높다고 한다. 역시 뭐든지 자연스러운 게 제일인 모양이다.
내용 전개에 꼭 필요한 문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힘을 빡 준 주제문도 아닌데,
책을 읽다 보면 희한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때로 그 말이 일상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기도 하고요.
그게 뭐든 든든한 한 마디쯤 가슴속에 품고 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언제고 나다울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좋아 보이는 일을 하며 산다.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게 좋은 일을 한다.
안정적인 돈벌이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애당초 안정적인 돈벌이는 없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듯이,
영원하고 안정적인 돈벌이는 존재하기 어렵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우리는 조금 더 자기 자신을 위해 살 필요가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궁금한 것은 편하게 물어보고,
먹고 싶은 것은 맛있게 먹는 것.
나를 위하여 사는 삶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