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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Dec 17. 2021

책임과 희생

 사회는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전제로 움직인다. 그러나 무임승차자(Free-Rider)가 많아지기 시작하면, 사회 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규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기 시작한다. 조롱을 받는다. 결국 편법이 기준이 되고, 불법이 난무하게 된다.

 사회는 의무와 책임을 준수하고, 때로는 주어진 의무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내는 이른바 ‘희생’을 통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봉사활동은 ‘희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책임과 희생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표현해 준 칼럼이 있어 적어본다.


책임과 희생 [임용한의 전쟁사]<191>

 한 병사가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 어떤 시민이 그의 식사비를 대신 내고 나갔다. 귀향하는 병사가 비행기에 탔다. 비즈니스석에 있던 사업가가 자기 자리를 양보했다. 이런 이야기가 잊어버릴 만하면 보도된다. 미군은 모병제를 시행한다. 병사는 모두 직업군인이다. 자신이 자원해서 직업으로 택한 병사인데 그렇게까지 감사를 표시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이는 이렇게 해석한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고 군대 덕에 얻는 게 많으니 당연히 감사해야지.


 백번 양보해서 그런 시각과 해석이 맞다고 치자. 그렇다면 기업 직원, 변호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파이프 수리공은 제국주의에 기여하지 않고 있나? 그들에겐 시민들이 감사를 표시하지 않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군인들이 특별한 직업인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생명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다시 반론을 하자면 생명의 위험에 노출된 직업은 상당히 많다. 아니 그렇지 않은 직업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인, 소방수, 구조대, 경찰 같은 직업이 특별한 이유는 직업적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생명의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페르시아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멸한 스파르타의 300 전사를 기리는 테르모필레의 비명은 불굴의 용기로 용감하게 싸웠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나라)의 명령을 이행하고 여기에 누워 있다”라고 쓰여 있다. 그렇기에 지금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요즘 우리 사회는 병에 걸렸다. 타인에게는 책임을 강요하면서 자신은 수고하고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 타인의 고통과 수고에는 냉담하고, 자신의 고통에는 분노한다. 결과적으로 억울한 사람들만 넘쳐난다. 이것을 설득하고 조정하고 진실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은 분노만 부채질하고, 분노만이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가르친다. 그런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목숨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터럭만큼 남아 있는 양심의 명령에라도 순종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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