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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Dec 19. 2021

사과는 미래를 바꾸는 것

주변을 둘러보면 억울하다는 사람만 있고,

사과를 하는 사람은 없다.

유감은 있어도 사과는 없다.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과는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알려준 칼럼이 있어서 필사해 본다.



사과는 미래를 바꾸는 것

(중앙일보. 임재준의 의학노트. 2021.07.29)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아무리 주의해도 실수하는 일이 생긴다. 당연히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평생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의사들의 업보다.


 1991년 미국 하버드 의대 트로븐 브레넌 교수팀은 병원에서 일어나는 실수에 대한 기념비적인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1984년에 뉴욕주의 51개 병원에서 작성된 진료 기록 중 3만 121건을 무작위로 골라 면밀히 검토했다.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환자들의 4%가 입원 중 뭔가 잘못된 일을 겪었는데, 그 사건 중 4분의 1정도는 의료진의 부주의로 발생했다.불행이도 이 실수 중 14%는 결국 환자의 사망으로 연결되었다. 드물긴 해도 의료진의 실수는 분명히 발생하고, 그것 때문에 환자가 큰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었다.


 경험은 물론 수면까지 부족한 전공의들은 특히 실수에 취약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프란시스코 대학병원 앨버트 우 교수팀이 같은 해 발표한 연구가 있다. 우 교수팀은 500병상 이상의 큰 대학병원에 세 곳에서 일하는 내과 전공의 254명에게 설문지를 보내 지난 1년간 저지른 실수가 있었는지 묻고, 혹시 그랬다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알려달라고 했다.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114명의 전공의가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기록한 후 설문지를 돌려보냈다. 물론 회신은 익명으로 작성되었다.


 전공의들의 실수는 잘못된 진단(33%), 부적절한 평가와 치료(21%), 약물 과량 투여(29%), 시술 합병증(11%), 부정확한 의사소통(5%) 등 모든 상황에서 발생했다. 대개 큰 문제가 없는 경미한 것들이었지만, 실수로 갑상선호르몬을 적절한 용량의 50배로 투여했다든지, 원래 사용 중이던 천식치료제 처방을 빼먹어 환자가 호흡부전에 빠졌다든지, 네 살짜리 꼬마에게 투여하면 안 되는 항생제를 처방했다든지 등의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고백한 전공의들도 있었다.


 전공의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담당 교수와 환자에게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알리고 진심으로 사과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절반 정도의 전공의만 교수에게 알렸고, 환자나 가족에게 알린 경우는 반의반에 불과했다. 실수를 인정할 경우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게 될 염려와 맞닥뜨리게 될 법적 책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실수에 대한 자각은 의외로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실수를 인정한 전공의의 82%가 실수를 저지른 후부터 환자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게 되었고, 72%는 환자에 대한 정보를 이전보다 더 꼼꼼히 파악하게 되었고, 62%는 판단이 어려운 경우 적극적으로 주위의 조언을 구하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특히 저지른 실수가 자신의 책임이었다고 인정한 전공의들이 업무량이 과다했던 것이 실수의 원인이라고 응답했던 전공의들보다 더 긍정적으로  변했다. 또한 자신의 실수에 대해 교수와 상의하거나 환자의 가족에게 솔직히 알린 전공의들에게 실수는 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흥미롭게도 여자 전공의들이 남자들보다 실수를 통해 더 많이 배웠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의 효과는 더 있다. 미국 매사추세스 의과대학의 캐슬린 마졸 교수팀의 연구를 보자. 그들은 의사가 자신의 실수로 합병증을 겪은 환자에게 정확히 알리고 사과하는 경우와, 알리긴 하되 사과 대신 병원비 감면을 제안하는 가상 상황을 설정하여 효과를 비교했다.


 과민성 쇼크처럼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라면 참여자들의 46%가 다른 의사에게 가겠다고 응답했고, 16%가 의사를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만약 의사가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반응은 많이 달라졌다. 의사를 바꾸겠다는 응답은 19%로, 고소하겠다는 응답은 4%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병원비를 깎아 주겠다고 제안하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즉,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의사에게도 이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과에 아주 인색하다. 의사가 사과하는 경우도 드물겠지만, 가벼운 접촉사고에도 옥신각신하고 아이들의 다툼이 부모의 분쟁으로 번지기 일쑤다. 사과하면 손해를 본다는 믿음 때문일 테다. 그렇지만 사과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사과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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