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해명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는데?’
‘당신은 그럼 아무런 잘 못 없어?’
보통 이런 말을 듣는 상황이라면, 사과에 대한 기대는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사과하는 것을 어려워할까? 또 반대로 왜 사람들은 사과를 강요하고 있을까?
마지못해 하는 사과도 있어 보인다.
‘법적 처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나는 사과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가 아닌 자기변명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되는데,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해 준 칼럼이 있어 옮겨 적어본다.
(중앙일보 _ 김현예 기자 _ 2021.12.17)
“미국 국민은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해, 여러 해에 걸쳐 여러분들이 받은 고통에 대해 사죄합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지만 통탄할 정도로 부당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 공식 사과가 나오기 가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1997년 5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사과문을 읽었다. 1932년부터 흑인 남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매독 연구 때문이었다. 매독 감염을 알리지 않은 채 정부 연구는 40년간 지속됐다. 내부 고발자의 폭로로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미국 정부는 사과하지 않았는데, 클린턴 대에 이르러 생존자와 유족에 대한 공식 사과가 이뤄졌다.
대선을 앞두고 사과가 쏟아지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는 말을 한 뒤, 인터넷에 올라온 사과와 반려견 사진은 그저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바통을 넘겨받은 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였다. 지난달 22일 “우리 국민의 아픈 마음을 또 그 어려움을 더 예민하게,, 더 신속하게 책임지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리도록 하겠다”며 큰절까지 했다. 이틀 뒤, 조카의 살인사건 변론에 대해 “일가 중 1인이 데이트 폭력 중범죄를 저질렀는데 가족들이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됐다”면서 또 사과했다. 그는 지난 2일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우리 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비판받는 문제의 근원 중 하나”라며 사과를 내놨다.
잠잠해지나 싶었더니 또다시 윤 후보 측이 사과했다. 아내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김씨는 지난 15일 “사실관계 여부르르 떠나 국민께서 불편함과 피로감을 느낄 수 있어 사과드린다”고 했다. 곧이어 윤 후보가 “과거에 미흡하게 처신한 게 있다면 국민께 송구한 마음을 갖는 게 맞다”라고 했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사과인데 사과 같지 않다. 진정성 때문이다. 클린턴이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밖에 없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머리를 숙인 것과는 결이 다르다. 미국 언어학자 에드윈 L 바티스텔라는 ‘공개 사과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명과 사과는 언어로 잘못의 의미를 바꾼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과는 과거의 자신을 비난하고 부정하는 데 비해, 해명은 잘못에 대한 행위자의 죄를 부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