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령
‘아.. 또 시작이다.’
한 동안 조용하시더니, 또다시 시작되었다.
“제가 이거 중요하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왜 아직도 안 되고 있는 겁니까?”
말하는 윗분도 답답하겠지만,
대답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당사자와,
지켜보는 주변 동료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굳이 차이점을 찾아보자면, 화내는 가장 윗사람은 본인 할 말을 할 수 있다는 점, 나머지 사람들은 할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차이랄까?
대답을 하자니, 핑계를 대지 말라고 하고, 조용히 듣고만 있자니, 왜 대답을 안 하냐고 뭐라고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임금님의 명령을 어명이라고 한다.
사극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어명이요~!”라는 소리에,
신하들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며 반대의견을 낸다.
그런 면에서는 조선시대가 나았다.
회사에서는 어명보다 더 무서운 ‘상사명’이 있다.
리더는 일의 우선순위를 조율해 주는 사람이다.
최선안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반대로 일의 결론을 정해놓고, 강요만 하는 경우도 있다. 책임지는 상황을 피하려는 경우도 있고, 실무자의 의견이 지시자의 생각과 다른 결과인 경우도 있다.
그럴수록 리더는 반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은 고집을 넘어 아집은 아닌 것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감정은 걷어내고, 팩트로만 이야기해야 한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리더가 아닌, 위정자가 될 것이다.
명분보다 실제, 독선보다는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칼럼이 있어, 내용을 적어본다.
금주령 _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칼럼 (2021.12.22)
KBS 사극 ‘꽃 피면 달 생각하고’는 조선 영조시대 밀주꾼을 단속하는 감찰과 밀주를 만드는 여인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다. 조선시대에는 수차례 걸쳐 금주령이 내려졌는데, 이때가 가장 강력했다. “술은 빚은 자는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술을 사서 마신 자는 영원히 노비로 소속시킬 것이며, 선비 중 이름을 알린 자는 멀리 귀양 보내라” (영조실록)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금주령이 잦았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게 되면 곡물을 보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조 32년에 내려진 금주령은 10년간 이어졌다. 이전의 금주령은 1~2년에 불과했다. 10년은 흉년 같은 이유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간이다. 영조 개인의 도덕관이 개입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조선에서 술을 근절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조는 근검절약에 솔선수범한 왕이다. 83세에 사망한 그는 장수 비결을 ‘채식과 소식’이라고 꼽기도 했다. 이처럼 모범을 보이고 도덕을 앞세운 것은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의 모친은 신분이 낮은 궁녀였다.
그러나 영조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음주는 근절되지 않았다. 한양에서 밀주를 파는 공간이 곳곳에 나타났다. 관리들은 돈을 받고 뒤를 봐주거나 심지어 이들과 결탁해 뒷돈을 챙겼다. 결국 영조는 10년 뒤에 슬그머니 규제를 풀었다. 인간의 욕구나 시장을 법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정자들이 흔히 범하는 착각이다. 명분만 믿고 밀어붙였다가 이전보다 악화한 결과로 되돌아오기 일쑤다. 그래도 늘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