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들판 속의 한 줄기 꽃이 되기를
내가 다니는 회사는 장점이 참 많다.
빠른 의사결정,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문화, 그리고 다양한 기회.
하지만 그중에서도 지금의 회사가 가장 좋은 나만의 이유는 바로 다정한 동료들이다. 뜻이 맞고 다정한 동료들과 함께라면 아무리 힘든 일도 두렵지 않다.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한 편 회사가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바로 권위주의 또는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일부의 조직문화이다. 조직문화는 조직장(Leader)의 문화다. 실력에서 우러나오는 권위가 아닌, 직위의 높고 낮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권위주의, 위계상 낮은 직원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 모습.
회사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강조하지만, 본인들의 안위를 위해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회사의 개선점이다. 다행인 것은 조금씩 조직문화에 해가 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간의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지시와 강요가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해 줄 수 있는 능력. 즉, 다정함이다. 인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다정함에 대해 알려주는 칼럼이 있어서 내용을 옮겨본다.
다정해야 살아남는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 칼럼 (2021.12.23)
동아일보가 각계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 '올해의 책'은 브라이언 헤어의 공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입니다. 진화 인류학자가 쓴 이 책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Survival of the friendliest)고 주장합니다. 경쟁과 이기심이 아닌 협력과 연대의 관점에서 진화론을 재해석한 메시지는 어느 한 사람이 위험해지면 모두가 무사할 수 없는 감염병 시대여서 울림이 큽니다.
진화론은 오랫동안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이론으로 오독됐지만 찰스 다윈도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많은 후손을 남겼다"라고 썼습니다('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인간은 내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만 관심 있는 이기적인 동물이어서가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감성지수(EQ) 높은 존재여서 번성했다는 것이죠.
다른 동식물 사례는 생략하고 인류만 비교해 보겠습니다. 개인의 역량으로 치면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힘도 세고 뇌도 15%나 더 큽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이 10~15명의 무리만 짓는 동안 호모사피엔스는 그 이상의 규모로 연대할 줄 알았습니다. 네덜란드 사상가 륏허르 브레흐만의 표현을 빌리면 네안데르탈인은 초고속 컴퓨터이고 인간은 구식 PC지만 와이파이를 이용할 줄 아는 종입니다. 인간이 협력적 의사소통으로 살아남은 진화의 흔적인 신체에 남아 있습니다. 인간은 얼굴을 붉힐 줄 아는 유일종입니다. 타인의 생각에 반응한다는 뜻이죠. 흰 눈자위를 지닌 유일한 영장류이기도 합니다. 눈빛만 보고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다정한 만큼 우리를 위협하는 '그들'에겐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다정한...'은 엄마 곰이 아기 곰과 함께 있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예로 설명합니다. 누구라도 아기 곰을 해치려 들면 엄마 곰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자행된 대량 학살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는 종교적 유혈 분쟁이, 증오의 언어를 주고받는 사생결단식 정치 문화가 다정함의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사람은 잔인한 표변을 비인간화로 정당화합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털북숭이 짐승이거나 뿔 달린 악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에겐 잔혹해지는 다정함의 한계도 '인간화'로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이 진행되는 동안 유럽인 수천 명이 목숨 걸고 유대인을 구해주었습니다. 대단한 영웅심도, 종교적 신념 때문도 아닙니다. 전쟁 전 유대인 이웃이나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낸 경험이 있었을 뿐입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조지 오웰은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잡고 도망치는 적을 보고 이렇게 썼습니다.
'파시스트가 아니라 분명 나와 같이 생긴 인간... 그에게 총 쏘고 싶지 않았다.'
새해에도 코로나 사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단체 줄넘기를 해야 합니다. 누구 하나라도 넘어지거나 뛰지 않으면 모두가 넘어지는 게임입니다. 다행히 우리에겐 지구 상에 존재했던 99.9%의 종이 멸종하는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다정합입니다. 참호전이 한창이던 1차 대전 때도 영국군과 독일군은 참호 밖을 나와 함께 캐럴을 부르고 담뱃불을 교환하는 성탄절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참호에서 빠져나와 서로 눈 맞춤하며 고통을 나누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다정한 새해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