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인정만이 중요했다.
이전 글에 이어..
퇴직하고 몇 년이 지난 뒤, 동기 H가 말했다.
"인사. 너 옛날에 너무 재수 없었어. 완전 아부쟁이였어."
반박할 수 없었다. 정말 그랬으니깐.
나는 왜 아부를 했을까?
왜 동기들보다 선임들을 우선시했을까?
직장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이 필요하다.
성실함, 책임감, 철저한 준비성, 좋은 동료 등,
당시 나는, ‘상사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사평가는 상사가 한다.
동료의 인정은 소속감을 주지만,
상사의 인정은 더 많은 급여와 승진으로 돌아온다.
월급은 회사가 주는 것이지만, 결정은 상사가 한다.
나는 라인이 되길 원했다.
직장에서 잘 나가고 싶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상사에게 인정받는 것이,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젊은 꼰대 시절의 나는 분명 상사에게는 인정받았다.
이른바, 라인이었다.
그런데 상사 외의 다른 사람.
예를 들면 동기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동기들에게는 '아부쟁이'였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인정받는 것을 추구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인정을 받는 모범학생이었고,
군대에서는 지휘관의 인정을 받는 군인이었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상사의 인정을 받는 후배였다.
업무의 중심에는 일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윗사람의 마음에 드는지가 최우선이었다.
문제는 상사가 꼰대였다는 것이었다.
사실 상사는 꼰대일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상사는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여 지금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경쟁에서 승리한 경험은 본인의 생각에 대한 확신으로 나타난다.
조직의 특성상 상사에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적어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상사는 꼰대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꼰대는 꼰대를 낳는다.
꼰대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도 꼰대의 기질이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상사의 인정을 추구했기 때문에,
나도 또 하나의 꼰대가 되어갔다.
후배들을 윽박지르며 나의 자리를 공고히 한,
전형적인 젊은 꼰대가 된 것이다.
꼰대의 반대말은 '꼰대였던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어떻게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