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해 주는 편의점, 누군가를 위로해 주는 편의점.
큰 기대 없이 읽었던 '불편한 편의점'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저의 편견을 없애주고, 편견이 없어진 자리에 따뜻함까지 채워주었던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2'도 있다는 것을 알고, 고민 없이 읽기 시작한 2편의 마음 따뜻한 이야기들을 적어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콧노래가 나왔다. 아들이 좋아하는 비빔밥 삼각김밥을 두 개나 챙겼고 돌아가 예삐와 까미를 산책시킬 시간도 번 것이다. 역시 퇴근이 피로회복제다. 아까의 노곤함은 간데없이 선숙은 종종걸음으로 여름 밤거리를 지나 집에 다다랐다.
"실없이 웃기는. 자넨 왜 그리 태평해? 대책이 있어? 가족이 돈 잘 벌어?"
"가족은 없어요. 대책도 없고요. 그리고 걱정도 없어요. 아, 걱정이 없어서 태평한 거 같네요."
편의점 알바는 아빠 말과 달리 괜찮은 일자리다. 아빠는 공부를 못하면 여름엔 더운 데서 일하고 겨울엔 추운 데서 일한다고 했지만, 편의점은 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에도 따뜻하지 않은가!
아빠는 또 민망해하더니 자신이 대화와 설명에 서투른 걸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간단히 말해서 로켓에게는 때론 궤도 수정이 필요하단다. 동현이도, 우리 집도 지금은 궤도 수정이 필요한 때 같다고 아빠는 생각해."
뒤이어 아빠는 동현에게는 지금이 궤도 수정을 할 마지막 타이밍이라고 했다. 당장 하지 않으면 앞으로 동현이라는 로켓의 진행 궤도는 스쿠터 사고 이상이라고, 그때는 다리가 부러지는 게 아니라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배워야 했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재료는 말이었어. 점장님의 두서없이 늘어놓는 이야기는 잔소리 같지만 사실은 배려라네. 자네의 수다 역시 나쁜 의도가 아니란 걸 알고 있고. 나는 그렇게 할 말재주도 심성도 부족했던 것이고."
잠시 회한에 빠진 듯 곽 선생이 시선을 돌렸다. 근배는 그의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비교 암, 걱정 독.
엄마가 늘 근배에게 하던 말이었다.
"아들.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야.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 지금의 나만 생각하고 살렴." (중략)
살았다. 사랑지더라. 걱정 따위 지우고 비교 따위 버리니, 암 걸릴 일도 독 퍼질 일도 없더라. 물론 근배에게 산다는 건 걱정거리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하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남겨준 말을 꼭꼭 씹었다. 하대는 상대방의 시선에서 나온 비교였고, 비교를 거부하자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담담하게 대응하는 근배를 사람들은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걱정 또한 지금 현재의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자 실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해졌다.
"너 아직도 내가 이 가게 사장 아닌 거 같아? 똑바로 봐. 응! 내가 누구야?"
근배는 이글이글 노려보는 사내를 향해 한마디 한마디 끊어가며 말했다.
"누구긴, 누구예요. 양아치죠. 양아치가, 왜 양아친지, 아세요? 일제강점기 때 거리에서 동냥하던 자들을 동냥아치라고 불렀대요. 동.냥.아.치. 근데 말이 기니까 나중에 양아치라고 줄어든 거죠. 양.아.치. 지금 돈도 안 내고 물건 달라고 동냥질하고 계시니, 양아치, 맞죠. 그쵸?"
사내가 대뜸 후려칠 듯 손을 들었다. 근배는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사장님!"
"응?"
"사장님이니까 사람을 함부로 안 자르시는 거죠."
알바 사내의 말에 민식과 누나가 동시에 그를 돌아봤다.
"사장이 사람 자리는 능력 있어 사장입니까? 사람 고용하고 수익 창출하는 능력이 있어야 사장이죠. 사장님, 그동안 저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점장님 열심히 하시는 것도 다 사장님이 힘 실어준 덕분이고요. 곧 흑자 될 거라고 어제 점장님이 그러셨어요. 사장님이 직원들 잘 챙겨주니 이제 매출 올라오는 겁니다. 저는 그게 진짜 강 사장님 능력이라고 보는데."
"그렇지! 내 말이. 역시 그, 금보 씨가 나랑 합이 잘 맞더라니... 내 이러니 자를 수가 없는 거야. 미안해요. 금보 씨. 내 권고사직, 취소하죠."
"감사합니다."
전원주택에 끊이지 않는 벌레들을 모조리 살충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으로서 살며 얻어가는 불편하고 곤란한 일들을 받아 안고 사는 법을 체득해갔다.
평안. 평안은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 가능했다. 늘 잘해왔다 여기기 위해 덮어준 것을 돌아보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애썼다. 호수에 유유히 떠 있는 오리가 수면 아래서 분주히 발을 놀리는 것처럼, 평안을 위해 부지런히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변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닌 스스로의 변화 말이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는 게 싫은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바뀔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기다려주며 넌지시 도와야 했다.
불편한 편의점 1권에서는 많이 어수룩한 독고 아저씨가 우리의 마음을 천천히 열어주었습니다. 2권에서는 꼰대까지는 아니지만 라떼 기질이 가득한 근배 아저씨가 우리의 마음속에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위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 남들이 원하는 삶의 모습,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모습. 우리는 계속 위를 바라보며 현재의 나와 비교를 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편한 편의점 2권의 근배 아저씨는 1권의 독고 아저씨와는 달리 할 말을 하면서 우리들의 마음을 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취업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도, 코로나로 음식점 장사가 되지 않아 힘든 자영업자도,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집이 편안하지 않은 학생도. 모두 편의점에서 기운과 위로를 보충하고 돌아갑니다.
세상은 점차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누구 하나 먼저 나서려 하지 않지요. 불편한 편의점 1,2권을 읽으며,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나만의 편의점은 어디일까? 나는 누군가의 편의점이 되었던가?'라고 말이지요. 책을 읽으며, 조금 불편할 수 있더라도 마음만은 따뜻해지는 편의점 같은 사람이 되어보기로 다짐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