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인사 Jul 18. 2023

불편한 편의점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따뜻한 편의점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와 '메리골드 마음세탁소'와 같은 마음 편안해지는 소설을 일고 나니, 조금 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책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불편하지만, 읽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지게 해 준 책, '불편한 편의점'의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 봅니다.


[불편한 편의점 _ 김호연 지음 _ 나무옆의자 출판사]


1) 직원을 귀하게 여기는 사장

 1년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면 알바생에게 가장 중요한 사장이 괜찮은 분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정년 퇴임했다는 사장님은 시현에게 어른이란 바로 이런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분이다. 요즘 편의점은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주 5일 근무하는 알바를 두지 않는다. 이틀씩 사흘씩 끊어 고용하기에 한 곳에서 진득하게 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곳은 알바 모두가 주 5일 근무다. 또한 사장님은 시현과 같은 알바생에게 시켜야 할 일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구분했고, 솔선수범했으며, 무엇보다 직원들을 귀하게 대했다.


 '사장이 직원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직원도 손님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요식업으로 일가를 이룬 부모님 아래서 자란 시현이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이다. 가게도 결국 사람 장사다. 손님을 귀하게 대하지 않는 가게와 직원을 귀하게 대하지 않는 사장은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망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파동 이 편의점은 적어도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돈을 벌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 느려서 좋은 영상

 시현의 영상은 미니멀리즘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단순하고 심심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사용법을 실용적으로 익히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먹힌 듯했다. 무엇보다 시현은 편의점 초보 알바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글을 달아주었다.


 사람들은 시현의 포스기 배우기 영상이 느려서 좋다고 했다. 사용법을 천천히 짚어주는 게 마치 초등학생에게 가르쳐주는 듯해 쉽다고 했다. 저음에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가 설명을 강요하지 않고 편안함을 주어 좋다는 댓글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시현은 자기도 모르게 홀로 목소리를 내보곤 했다. 아무리 들어도 졸리기만 한 자신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준다니 신기했다.


3) 들어주면 풀려요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

 선숙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기 앞에 선 사내의 말을 경청했다.

 "아들 말도 들어줘요. 그러면... 풀릴 거예요. 조금이라도."

 그제야 선숙은 자신이 한 번도 아들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나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만 바랐지, 모범생으로 잘 지내던 아들이 어떤 고민과 곤란함으로 어머니가 깔아놓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는 듣지 않았다. 언제나 아들의 탈선에 대해 따지기 바빴고, 그 이유 따위는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4) 쉬는 것도 집필이다

 "쉬어요. 생전에 박경리 선생님이 그랬대요. 여기 작가들 글 안 쓰고 어슬렁대는 것 같아도 그게 다 집필 행위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정 작가도 비울 건 비우고 작품 생각하며 시간 보내요. 생각 없이 쓰면 타이핑이지 집필이 아니잖아요."


5) 성공이 좋은 이유

 "잘 들어. 이놈아, 우리같이 돈도 힘도 없는 노인들은 발언권이 없는 거야. 성공이 왜 좋은 줄 아나? 발언권을 가지는 거라고. 성공한 노인들 봐. 일흔이 넘어도 정치하고, 경영하고, 응! 떠들어도 밑에 젊은 놈들이 경청한다고. 걔들 자식들도 충성하고."


6) 고립은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억울할 건 없다. 당시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지난 2년간 가족과 분리되어 혼자 살게 되자 스스로의 뒷모습을 거울 없이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혼자 살아보니 곽은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돈만 벌어다 줄 줄 알았지 요리라곤 라면 밖에 못 끓였고 세탁기도 돌릴 줄 몰랐다. 자식들과 대화하는 것도 너무나 어색하고 힘이 들었다. 아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손찌검만 안 했지 수시로 고함을 치고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아이들 역시 그것을 보고 자라지 않았겠는가? 결국 고립은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대화를 나눌 가족이 사라졌고 그것이 스스로의 탓임을 깨닫게 된 곽은, 그제야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가 편하게 느껴졌다. 진즉에 봉했어야 했다. 가족들에게 무심코 던졌던 폭력적인 말들이 고스란히 자신의 뒤통수에서 울릴 때마다 자업자득이란 말을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었다.


7) 편의점은 인간들의 주유소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8) 손님이 편하려면

 "여러분 이 채널 이름이 편편채널이지만 사실 편의점 일은 힘듭니다. 일이니까요. 무엇보다 손님이 편하려면 직원은 불편해야 하고요. 불편하고 힘들어야 서비스 받는 사람은 편하지요. 저는 이걸 깨닫는 데에만 1년이 걸렸어요. 여러분들도 짧은 알바 기간일지라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세요. 저는 그런 불편한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상 오늘의 편편채널이었어요."


9) 마스크를 쓰니까 조용해졌어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니까 조용해졌어."

 "그러네요."

 "다들 너무 자기 말만 하잖아. 세상이 중학교 교실도 아니고 모두 잘난 척 아는 척 떠들며 살아. 그래서 지구가 인간들 함구하게 하려고 이 역병을 뿌린 거 같아."

 "마스크 안 쓰고... 떠드는 놈도 있어요."

 "그런 놈들이야말로 혼쭐이 나야 해."

 "아... 하하."

 나도 모르게 광대가 실룩거렸다.


10) 강과 다리

 노숙자로 자리 잡은 뒤론 서울역과 그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딱 한 번 한강에 간 적이 있었다. 다리에 올라 몸을 던지려 했다. 실패했다. 사실 올겨울을 편의점에서 보내고 나면 마포대교 혹은 원효대교에서 뛰어내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 했다. 도울 것을 돕고 나눌 것을 나누고 내 몫의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 나만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사죄하기 위해 가족을 찾을 것이다.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면 사죄의 마음을 다지며 돌아설 것이다.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기차가 강을 건넜다. 눈물이 멈췄다.


[책장을 덮으며]

 서울역에는 많은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노숙자들은 어떻게 노숙자가 되었을까요? 이 책의 주인공인 '독고'씨는 과거의 기억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중년 여성의 지갑을 찾아주게 되면서, 그 중년 여성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얻어먹게 되고, 항상 시간을 잘 지키는 그 모습 덕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우선 말이 느렸고, 행동은 굼떴습니다. 하지만 독고씨만의 들어주기로 사람들은 점차 편의점을 통해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며, 허기진 마음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똑똑하고 잘난 것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나의 말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고씨는 달랐습니다. 그는 항상 들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마음을 열었고, 사람들은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편의점 독고씨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서울역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즐겁게 여행을 즐기러 가는 사람, 바쁘게 회사일을 하러 기차를 타는 사람, 그리고 무기력하게 노숙을 하고 있는 사람까지. 누가 더 행복하고, 중요한 사람일까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아무리 현재의 모습이 보잘것없어도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소중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되물어 보게 됩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포근하게 기다려주고, 들어주는 사람이었는지?' 말입니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믿고 기다려주는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은 불편했지만, 그 무엇보다 편안하고 따뜻했던 글이었습니다.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식시세의 비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