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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자아자 Aug 17. 2019

나의 좌절과 노력의 시간

뛰어난 인재들 사이에서 생기는 초보 데이터분석 컨설턴트의 고민

나는 가끔 쓰잘데없는 고민을 해본다. 통계학에는 Pareto라는 학자가 있는데, 그가 바로 그 유명한 8:2의 법칙을 주창한 사람이다. 20%의 사람들이 80%의 부를 소유하고, 20%의 축구선수들이 80%의 골을 넣고.. 그 20%로만 모은 집단에서도 여전히 8:2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이 때 나는 20%에 속할까? 80%에 속할까 라는 고민. 80%에 속한다면 이 길을 그대로 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바꿔야 할까? 라는 고민들이 그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많은 도전을 했다. 대학교 초반에는 두번의 아프리카행(총 4개월정도 머물렀다.)을 포함해 국내외 약 1,300여시간의 봉사활동이 곧 내 아이덴티티였던 때가 있었고, 금융을 사랑하며 IB를 꿈꾸다가 어느날 돌연 선배와의 상담 끝에 여자는 안된다는 말을 듣고 금융리스크쪽으로 전향하기 위해 문과출신에서 수학과로 복수전공을 택했다. 미국계리사를 시험을 여러번 합격했고 (cf. 미국계리사 준회원 자격은 너무 많은 시험을 쳐야한다 ㅠㅠ 한두번의 합격으로 되지 않는다.)  코딩을 배워 데이터분석대회 우승을 하기도 했고 싱가폴의 블록체인업계에서 잠시나마 근무해보기도 했다. 지금은 컨설턴트로서 재직중인데 여전히 나의 도전과 좌절, 고민은 끝이 나지 않았다.  



요즘은 한창 SQL과 파이썬, 그리고 머신러닝 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실 그리고 너무 힘들다.

그래도 꽤 R은 잘 한다고 생각해왔었지만 (이래뵈도 통계학 석사+LSE 통계학과 데이터분석대회 우승자다), 뭔가 프로페셔널한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스스로가 자신감이 조금 부족했다. 


나는 통계를 좋아하고, 비즈니스를 좋아하고, 문제해결을 좋아하지만 data scientist 혹은 quant가 되지 않은데에는 위에서 언급한 데이터분석대회의 경험이 컸다. 그때 같이 대회에 참여했던 폴란드인 크리스와 이탈리아인 살로몬은 각각 현재 맥킨지의 데이터사이언티스트, 크레디아그리꼴의 퀀트이다. 나는 대회에 참여하는 기간동안 사실 이 친구들에게 많은 자극과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벽을 느꼈었다. 


살로몬은 비록 끈기가 없어 핵심알고리즘 개발에는 나와 크리스가 각각 하나씩 만들어내는 동안 살로몬은 그다지 기여한게 없긴 하지만, 살로몬은 분명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대학원 시절 한창 cryptocurrency, 즉 암호화폐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전세계적 이슈가 되었을 당시 살로몬은 통계학과 친구들을 모아 crypto trading club을 만든 1인이기도 했다. 당시 그의 고질적 문제인 끈기없음으로 이 역시 흐지부지 되기는 했으나 암호화폐와 스포츠베팅 그리고 영국 및 미국 주식시장을 대상으로 arbitrage 수익을 챙기자며 진행한 그에게는 분명 이것들을 구현할 수 있는 코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완전 고급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어느정도 구현이라도 나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 이후에도 일반인들에게 과거 경제기사 학습을 통해 주식시장의 향방을 예측하는 앱을 개발하고자 노력했었고 (이 아이디어의 경우 꽤 오랫동안 매진했었다. 몇가지 기술적 문제와 혼자하기에는 벅차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부분 등 때문에 취직해 일한 후 나중에 다시 하자는 쪽으로 흐른 것 같다. 현재 핀테크들 중 콰라의 KOSHO가 이와 꽤 비슷한 것 같다.) 구직하는 동안 이탈리아에서 빈둥대는 줄 알았더니 아버지의 레스토랑 사업에 영감을 받았는지 메뉴판을 QR코드로 찍으면 음식을 3D로 볼 수 있게 하는 앱을 개발하기도 했었다. (이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혼자 하다보니 약간 흐지부지 되었던듯..) 어쨌든 그는 구미가 당기는 일에는 꽤 열심히 하는, 그리고 실력도 꽤 있는 똑똑한 mathematician이었다.


아마 대회 참여를 위해 남아서 회의를 하다가 끝나고 한잔하던 날이었던 것 같다

크리스의 경우 살로몬보다 더 똑똑했다. 학업적인 면이나 커리어적인 면 모두에서 말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는 성실했다. 크리스는 전형적인 nerd지만 사회성이 좀 더 좋고 좀더 야망있는 nerd랄까. 하여튼 나는 이 친구의 이런 성격들이 좋아 학과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내 커리어에 크리스가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크리스는 1달이라는 짧은 대회기간동안 나에게 정말 많은 바를 시사했던 친구다. 우선, 분석 코드를 짤 때 주어진 test데이터에 대해서만 결과를 제시할 수 있는 코드를 짜는 것이 아니라 함수로 만들어서 나중에 사용자가 사용하기 편해야한다는 user-friendly해야 한다는 자세를 가르쳐주었다. (이부분은 현재 데이터분석 프로젝트를 하면서 최근 다시한번 그의 위대함을 느끼기도 했다. 데이터분석을 하다보면 투입된 내 노력이 너무 크다보니.. 요리를 다 차렸는데 그럼 알아서 먹어야지 마지막 한숟가락까지 입에 떠먹여줘야 하나 그런 짜증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 

아마 대회 참여를 위해 남아서 회의를 하다가 끝나고 한잔하던 날이었던 것 같다

또한, 막연히 주어진 토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제를 던진 클라이언트의 진정 원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역시 크리스가 우리팀의 방향을 잘 잡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방향성이 잘 잡혔기 때문에 우리 팀이 우승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컨설팅을 준비하면서 '크리스는 당시 이미 MBB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client-oriented mindset을 가지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고민이었는데, 퀀트던지 data scientist 모두 모든 아이디어가 original하게 생각해낼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데 그는 정말 이러한 가치관을 잘 구현해내는 사람이었다. 데이터대회가 시작하고 어느날 대회에서 쓰일 만한 아이디어들이 수업 내용으로 포함된 교수님을 찾아가 상담을 하더니 논문을 하나 받아왔다. 그러더니 자신감에 차서 "우리 이거 구현하면 돼! 이거 완전 우리 지금 상황이랑 딱이야. 이거 6페이지밖에 안되고 아이디어도 엄청 간단해. 너도 읽어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논문을 읽어봤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코드로 구현하지 못했다. (몇몇 다른 팀 친구들도 교수님을 똑같이 방문했던것 같긴 한데 비슷하게 구현을 못했던것 같다.)


나의 소중한 대학원 친구들 살로몬과 크리스 -뛰어나지만 정말 인간적이다^_^;-

그런데 크리스는 인터뷰 준비 등으로 바빠서 데이터 전처리 작업이 끝났는데도 마지막 핵심아이디어 구현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살로몬은 이미 자기 앱 개발하느라 마음이 떠있었고. 그래서 나혼자 조마조마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되겠다 싶어 핵심아이디어 부분 개발에 참여하게 됬는데 차마 크리스의 논문을 이해하지는 못해서 내 가능한 수준에서 아둥바둥 하다보니 엄청 기초적인 컨셉에 기반한 아이디어를 구현하게 됬다. 내 아이디어는 '창의성'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기초적이긴 하지만 아무도 이부분을 이렇게 접목시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대회 마감 1주일 전이었나 3일전이었나 어느날 갑자기 크리스는 완성했다며 '뚝딱!'하고 코드를 가져왔다. 그렇게 우리는 핵심아이디어 2개를 바탕으로, 그리고 크리스의 진두지휘하에 structured paper를 제출했고 발표자료는 따로 만들지 않았다. 사실 다른팀이 발표자료를 다 만들어와서 우리 발표는 굉장히 조악하기 그지없었는데도 우승을 한 것은 아이디어나 접근방법 자체가 너무 좋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크리스는 그렇게 나에게 좌절감을 주었다. 그는 당시 퀀트와 data scientist 진로 모두를 고려하고 있었는데, 나 역시 그에게 영향을 받아 비슷한 진로를 고려하던 차 "아 이런애들이 퀀트가 되고 data scientist가 되는거구나. 내가 앞으로 이런 친구들과 논문을 구현해내면서 경쟁할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문답을 했을때 나는 자신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해당 field가 아닌 내가 잘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싱가폴의 블록체인 스타트업과 quantitative한 영역이 아닌 일반 컨설팅쪽으로 왔던 것이다. (컨설팅을 고른데에도 사실 크리스를 비롯한 친한 대학원 친구들이 컨설팅으로 많이 왔다는 것이 정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건 비밀)




그런데 일반컨설팅을 하다보니 나는 여전히 quantitative analysis를 사랑하고 즐기기에 다시 이런 분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약 1년의 고민 끝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찾은 셈이다. 몇가지 길에 대해 1)내가 좋아하고 잘할수 있는 분야 2)해외 진출이 유망한 분야 라는 두가지 기준으로 고려를 하고 있는데, 분명 데이터분석쪽은 (2)번 기준에 맞다. 그런데 크리스도 그렇고, 현재 같이하고 있는 선배 역시 나와 같이 문과+finance background를 가졌음에도 분석팀의 에이스다. 이런 특출나게 탁월한 사람들을 보다보니 (1)의 기준에 대해 스스로가 자꾸 작아진다. 시간이 지나다보면 어느정도 잘하게 된다는 것이 나를 위로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특출난 사람들이 모이는 field에서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눈에 띄고 나대기를 좋아하는 내가 언제쯤 나댈 수 있을까라는 고민. (^^;)



그렇게 고민의 시간과 함께, 매 주말을 관련된 공부를 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인생에서 굉장히 많은 도전을 했고 많은 길을 탐색해 여러가지 잔재주가 많은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느 하나에는 특출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욕심쟁이이다. 회사에서 나대지 못하고 눈앞에서 기회를 봐도 놓치는 내 자신에 대해 자꾸만 요즘은 속이 상한다. 열심히 하자, 열매를 맺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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