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자아자 Sep 25. 2021

모두가 열심히 산다

정말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남들만 잘나가는 것 같을 때

이상하게도 내가 한 요리는 맛있다. 아무리 요리 초보자라도 이상하게 내가 한 요리는 A to Z의 모든 노력을 알고 있어서인지 그 노력이 주는 맛으로 요리가 더 달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나는, 종종 남이 해준 요리의 A to Z는 잊곤 한다. 남이 해주는 요리 안에 더운 여름 불 앞에서 얼마나 땀을 흘려야 했는지, 다 먹고 난 그릇을 씻는 귀찮음은 얼마나 컸는지, 내 입맛에는 맛있었는데 혹시라도 남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지 어떨지 덧붙이는 고민의 무게까지. 나는 그 모든 것을 종종 잊곤 한다. 그렇게 나는 내가 들인 노력만을 기억한다. 그러다 어느날 알던 누군가가 TV에 나오고 인스타그램 스타가 되었을 때, 적잖이 놀라곤 했다. "에, 쟤가?"라며 다소 거드름을 피웠다. 그러나 몰래 검색어에 이름을 쳐보고 인스타그램도 보니 알게되었다. 그들이 들인 노력을 그냥 내가 지나쳐왔음을. 내가 들인 노력만큼 무게를 달아보려 하지 않았을 뿐, 그들의 노력은 충분히 쌓이고 쌓여 거대한 것이 되어 있었다.



브렉시트로 고생중인 런던 뿐 아니라 전세계 어디도 취업난이 심각하다. 영국 내 최고의 대학원이라고 하는데도 막상 친구들 중 졸업한지 1년이 다되가도록 취업을 하지 못한 친구들이 조금 있었다. 같은 세부전공은 아니었지만 같은 통계학과 소속이었고 겹치는 수업도 꽤 많았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V도 그랬다. 나는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없어서 오픈된 계정의 친구들 중 그나마도 아이디를 외우는 친구들 몇몇만 한정적으로 보게 되는데 V도 내가 볼 수 있는 친구중 하나였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굉장히 잘 산다는 V는 인스타그램에서도 두세달에 한번씩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인 듯한데 서유럽 비싼 호텔과 골프장, 해변가에서 사진을 찍어올리곤 했다. 나는 그친구와 그렇게 친하진 않아도 적지않게 말을 하긴 했었음에도, 부끄럽지만 그 사진들로, 그저 한낱 개발도상국의 부잣집 딸으로 그 친구의 이미지를 새겼다.


그녀가 취업을 위해 열심히 지원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비유로존의 친구들이 그러하듯이 영국에서의 취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7월에 졸업을 하고 다음해 4월이 되어서 골드만삭스에서 Off-cycle 인턴을 한번 했으나 off-cycle이었기 때문에 전환은 되지 않은듯했다. 그러다가 인턴이 끝난지 몇달이 된 오늘 LinkedIn에 그녀가 결국 골드만삭스의 퀀트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포스트를 보게되었다. 이 포스트를 보면서 문득 내가 알고 있던 V에 대해 되새겨보니, 부끄럽기 그지없게도 나는 그녀의 노력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업에 대한 열정도 있었고, 일부러 어려운 수업을 듣는 용기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이지만 언어가 꽤 비슷한 이웃국가인 폴란드로 가 그곳의 최고의 대학중 한곳을 나와 영국계 은행에서 약2년간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바쁜 시간을 쪼개 데이터분석대회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재학중에는 진행된 이 대회에서는 사실 그다지 인상적인 분석은 하지 못했었기에 V에게 나는 뭔가 대단한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가치는 남이 아닌 내가 정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그녀는 꾸준히 나아가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정의했다. 최근 영국에 남아 크레디아그리꼴의 퀀트로 근무하는 이탈리아인 친구와 모건스탠리 테크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는(퀀트로 전향을 희망하는) 중국인 친구와 함께 최근 퀀트 대회에 참가해 셋이 3등을 수상하였던 것이다. 취준으로 바쁜 와중에 대회까지 참가해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녀는 쉴 줄도, 달릴줄도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저 나는 부끄럽게도 편견을 가지고 V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20대를 되돌아보면, 이런 실수 투성이였다. 나의 노력이 더 크고 무겁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즐기고 힐링을 찾는 다른 친구들의 시간을 가볍게 봤고, 목적을 향해 투자되지 않는 시간들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다. 


하지만 V와 같은 사례들을 무수히 많이 보고, 내 인생의 선택들을 후회하면서 그나마 20대보다는 조금 더 어른이 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 모두가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 선택의 가치가 내눈엔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눈에 보이는게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IB의 워라밸과 alpha-male문화를 그렇게 힘들어 하고 투덜대면서도 퇴사 혹은 이직하지 못하는 친구를 바라보며 이해가 되지 않곤 했다. 왜 용기내서 좀 더 좋은 하우스를 찾지 않는지 기회는 많이 있을텐데 너무 겁을 먹은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고 나니 그 친구는 인내심과 끈기라는 글자를 이력서에 새겼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친구들의 그런 인내와 끈기는 시장에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더 큰 존중을 받고 있다.


취업 스트레스를 이야기하면서도 쇼핑이나 여행얘기로 곧잘 주제를 돌리던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좀 더 집중해야하지 않을까라고 속으로 생각하곤 했었다. 나 역시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보니 그 친구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은 것이었다. 취업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서도 그 스트레스를 오롯이 나에게 풀지 않기 위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벼운 주제들로 이야기를 전환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것이었고,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정직원 전환의 기회가 왔을 때 1:100이라는 공개채용 지원자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여기서 수많은 경력직, 전문직들과 경쟁해야 했는데, 그녀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원만한 사회생활 능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호감을 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괜찮아서 사람들 때문에 퇴사하지 못한다는 부러운(?)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런 깨우침의 경험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모두가 노력하고 있음을, 내눈에 보이는 그게 전부가 아니기에 감히 내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려고 한다. 노력에도 보상을 받지 못해 억울한 때에는, 승리를 거머쥔 그들 역시 노력했기에 그들이 이번엔 보상을 받았던 것임을 이해하려 한다. 그들 뒤에도 수많은 눈물로 지샌 시간이 있었을 것임을 감히 짐작해보고 나면 어딘가 숙연해지면서 나는 나대로의 노력을 계속 이어 나가야겠노라 다시 한 번 맘을 다잡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주식] 곡물관련 주식 탐색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