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광기를 품고 살아간다
타자의 응시나 응답이 없다면,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정신적 붕괴로 인한 자살은 죽음을 향한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갈 이유의 부재로 인하여,침묵 속에서 일어나는 붕괴일 수도 있다.
이해받을 수 없는 주체는 점차 자기 존재를 의심하고,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내면에서부터 부식되는 것이다. 나는 이처럼, 주체가 자신의 존재를 외부 세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타자의 응시 또는 상징질서 내 위치를 상실할 때 경험하는 상태를 존재론적 붕괴라고 부른다.
프리드리히 니체. 19세기 독일 철학의 거장이자, 가장 외로운 사유자. 그의 삶은 구원을 허락받지 못한 고독의 여정이었다. “신은죽었다”는 말은 단지 선언이 아니었다. 신 없는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절망을 직시한 외침이었고, 그 말은 곧 우리 안의 의미 중심이 무너졌다는 고백이었다.
그 공허 속에서 대부분은 도피하거나, 새로운 숭배 대상을 찾아 방황한다. 그러나 니체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려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예언자이자 파괴자로 등장하며, 무너진 신의 자리를 대신할 존재—초인을 외친다.
초인은 신이 사라진 자리를 허무와 붕괴를 통과한 끝에 스스로를 창조하는 인간의 또 다른 형상이었다. 그러나 초인을 기다리던 그는 점차 무너졌고, 1889년 토리노의 거리에서 채찍질당하는 말을 끌어안고 울부짖은 뒤, 이성의 끈을 놓았다. 이후 정신병원에 갇혀 남은 11년간 침묵했다.
니체는 정말로 정신병 앞에서 무너진 자였을까. 아니면, 세상이 끝내 감당하지 못한 가장 온전한 제정신이었을까. 그 질문은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니체가 무너진 이유는 정신병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정신이었던 그를, 진실을 말했을 때의 불편함을, 이해하려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개인의 병이 아니라, 다수의 편견과 외면으로 이루어진 가장 무서운 구조였다. 그 속에서 니체는 누구보다 언어를 믿었고, 존재를 갈망했으며, 진실을 추구했다. 그럼에도 그는 말의 끝에서, 말이 부서지는 순간을 홀로 견뎌야 했다. 그 절망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유에는 눈물이 깃들고, 깨달음에는 울음이 동반된다. 진실은 잔혹하고, 비참하고, 불편하며, 기준을 무너뜨리고 인간을 무너뜨린다. 니체가 말을 끌어안고 울었던 이유는, 살아갈 이유를 누구보다 간절히 찾고자 했던 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앞에서 드러난 인간의 본성은 고귀함도 이성도 아니라, 가축에게서도 느껴지는 동정이었다. 그 동정 앞에서 그는 무너졌다. 시대를 앞지르는 말들과 통찰은 축복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이해받지못하는 진실은 견디는 자에게만 짐이다.
누군가는 세상에 너무 과분하게 태어난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지만, 그들을 받아들일 세상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가장 먼저 무너진다. 그럼에도, 그 절망 속에서 끝내 숨을 불어넣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갈 이유를 제시한 이들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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