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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감정을 조작하는 광고

진심을 담은 광고가 많아진 이유

by 하진
ⓒ Pixabay

트렌드를 분석하던 나는 요즘 들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많아졌다는 사실과, 그 배경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이제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사랑을 구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 말 없이 곁을 내어주는 존재에게 마음을 기댄다. 예측 가능하고, 상처 주지 않는 관계. 그 안에서는 안심하고 감정을 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의 마케팅 트렌드는 ‘설명’에서 ‘설득’으로, 상품이 아닌 감정을 파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브랜드는 마음을 움직이는 서사를 구축하고, 가상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타겟의 욕망을 투영한다. 체험 공간이 생기고, 짧은 순간 강렬한 감정을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쏟아진다.


어느 순간부터, 광고는 상품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설득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당신 이웃이 겪는 일” 같은 문구를 통해, 타겟이 믿고 싶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가 광고를 보는 그 순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포장된 감정은 상품보다도 먼저 도착한다.


형식 속에 배치된 감정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감동받아야 할 장면에서 울컥하고, 슬퍼야 할 순간에는 예정된 슬픔을 느낀다. 감정은 하나의 정답처럼 주어지고, 우리는 그 정답을 암기하듯 반응하면 된다. 광고는 정확히 이 메커니즘을 노린다.


진심이란 말은 넘쳐나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애초에 감정의 ‘정답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이래야 한다고, 희망은 반드시 이렇게 끝나야 한다고 배운다. 그렇게 감정은 정형화되고, 우리는 그것을 ‘진심’이라 부르게 된다. 형식 속에서 감정은 더욱 무뎌지고, 감정 없는 연기만이 되풀이된다.


우리는 진심을 말하라고 요구받지만, 늘 길들이기를 요구받는다. 상처는 설명되어야 하고, 눈물은 타이밍을 지켜야 한다. 감정은 구조를 가져야 하고, 서사는 반박을 예견해야 한다. 결국 살아남는 것은, 반론의 여지를 줄인 감정뿐이다. 진심은 검열을 통과한 연기처럼 조율된다.


누군가 진심을 꺼내놓을 때, 그 불편함을 끝까지 함께 들여다볼 용기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은 너무 빨리 ‘위로’라는 틀에 담기며, ‘힘들겠구나’라는 형식적인 말로 정당화 되고, ‘병원 가’라는 말로 결론나기 쉽다. 그리하여 진심은 가장 마지막에, 가장 억제된 형태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자주 ‘진심’을 말하는건, 오히려 진짜 감정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진실은 그 안에 있었지만, 끝내 그 물속으로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다. 대부분은 그곳에 들어가는 대신, 규범과 체계에 기대며 나를 연기하는 법을 배우다가 무너진다.


진심을 담은 광고가 너무 많아진 이유,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진짜 감정 앞에 머무는 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 진심이라는 단어는 가장 쉽게 연기되고, 가장 빨리 소비되며, 가장 흔하게 남용되는 감정의 포장지가 되었다. 진심이 진심을 막는 시대, 그 안에서 우리는 무감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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