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붕괴 사이에서
문명의 언어를 충실히 받아 적은 사람들과 금이 간 설계도 위에서도 올곧게 서려 했던 사람들의 앞에서 그것이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꺼내는 일은, 어둠 속에서도 자라는 뿌리를 손으로 끊는 일과 같았다. 어느 날, 서늘함이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생명의 탄생은 더 이상 교과서에 담긴 공식이 아니라, 낯선 기류 속으로 던져지는 일이라고. 정제된 문장은 더 이상 방어가 되지 못했고, 선의는 어떤 도구보다도 쉽게 부서졌으며, 의미는 맥락 없이 탈색되었다고. 어떤 책도, 교과서도 그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진짜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균열이다. 무늬 속에서 머물며 안온함을 누렸던 시간은 거울 속 빛처럼 현실과 어긋난다. 진리는 늘 시야 가장자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붙잡으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감촉을 붙들고자 했던 마음 한 켠에는 끝내 말 없는 무게가 가라앉고, 고요함만이 남는다.
끝내 돌아서지 못하는 기울어진 내면이 있었다. 언어보다 먼저 피어나고 논리 아래로 가라앉는 감각. 그 무형의 움직임이 결국 다시 걷게 만든 힘이었다. 그것은 의지도, 믿음도 아니다. 가장 먼저 생겨났지만, 오래 남는 파동. 말로는 설명되지 않아도 느릿한 흐름은 여전히, 기류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어떤 것들은 바람과 반대로 흐른다. 그 낯섦은 처음엔 불쾌한 마찰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어긋남이 하나의 미세한 반향, 아주 오래 남는 잔향임을. 처음엔 불협처럼 들리던 것이 전체 리듬의 기점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바람이 멎은 하늘에는 연이 뜨지 않고, 무게를 잃은 중심에 흐름조차 머물지 못한다. 시장은 반응의 물결을 주시하고,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의지는 조용히 침전된다. 이상은 계산의 언어로는 헤아릴 수 없는 단위로만 존재하며, 신념은 어느 기준의 눈금에도 닿지 못한다.
그럼에도 신의 형상은 형체를 넘어 은은히 번지고, 방향은 말없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묘하게 뒤틀린다. 생명은 또 다시 미지의 빛 속에서 조용히 깨어나고, 모든 기억은 과거의 흔적만을 간직한 채 천천히, 되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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