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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번외 - 네가 사는 그 집

#누구세요..?

by Azuree

이 사건은 내가 미국에 살며 가장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던 경험 중 하나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면전에서 내 집의 현관문을 잠그려 끙끙대고 '자기가 이 집 주인'이라며 오히려 나에게 누구냐고 윽박질렀던 경험. 내가 사는 주에서는 - 당연하게도 - 타인의 소유지에 무단으로 침입하면, 민법상 불법행위이다. 만약 우리 집을 사겠다고 약속하고 계약금도 지불한 사람이 정식 매도 계약 전 허가 없이 우리 집에 들어와있다면, 이것을 불법 행위로 봐야 할까?


미국에서 집을 사고 팔았다는 정보성 글은 꽤나 많다. 특히 요즘에는 한인 중개인도 많이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에, 굳이 내가 첨언하지 않아도 미국 내 집 매매와 같은 도움글은 인터넷에 넘쳐난다. 그래서 집을 사고 파는 원론 지식 그 자체를 다루기 보다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황당한, 혹은 당황스러웠던 에피소드를 나누고자 한다.


집을 팔기 직전, 그러니까 매매 서류에 사인하기 전날이었다. 우리는 이미 이사를 한 상태였고, 집을 매도하기 위한 클로징을 기다리며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와중, 우리 측 중개인으로부터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 한통에 우리는 당장 옛날 집으로 향해야 했다. 중개인은 '상대측 중개인이 집 상태에 대해 미친 듯이 불평하고 있다'며 '가능하시면 지금 가서 타임스탬프 어플로 사진을 찍어 집 상태를 자신에게 전송해 줄 수 있냐' 고 요청했다.


사실을 파악하고 보니, 매수인 측이 Final Walk-through의 결과 '처음 집을 봤을 때보다 집이 많이 망가져 있다'며 '집을 사지 않겠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어떤 것이 작동이 되지 않고, 다른 건 녹이 슬었고... 다른 건 몰라도 가스 스토브와 HVAC이 아예 작동이 안된다는 끝없는 불평에 - 전날에도 내가 직접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왔다, 그리고 사비를 들여 대청소 서비스에 스팀 소독까지 하고 나온 상태였다 - 온전히 그들의 증언만을 믿을 수는 없었기에, 당장 옛날 집으로 향했다.


옛날 우리 집에 도착하고 열쇠로 문을 열었다 - 다시 강조하자면, 아직 매도 계약에 정식으로 사인하기 전이기 때문에 해당 집은 법적으로 우리 집이었고, 열쇠를 가질 권리도 있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빠르게 계단을 내려와서는, '당신들은 누군데 내 집에 들어오냐'라고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뇌정지가 온 기분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었다. '누구세요...?' 그러자 그는 내가 이 집의 주인이라며, 남편과 나의 면전에서 문을 닫고 잠그려 했다.


급한 대로 우리 측 중개인에게 문자를 넣었다.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에 있다'고 문자를 넣으니, 아무래도 매수인같다고 한다. 매수인 측도 그쪽 중개인의 연락을 받았는지 갑자기 현관 문을 활짝 열고는 'Hi Friend!' 하며 환영해주었다. 갑자기 달라진 그의 태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고민했어야만 했다. 짧은 어색함이 끝나고- 그는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중개인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 너도 이 집 빨리 팔고 싶잖아. 그냥 너네가 Seller's Credit 5천불만 주면, 우리가 깔끔하게 집 살게'. 그래, 그들의 목적은 결국 돈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중개인에게 '매수인이 중개인 없이 구두로 딜을 치려한다'고 빠른 문자를 넣었고, 중개인은 '지금 본인이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한 것도 모르고 본인을 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며 '클로징 때 그 쪽 중개인에게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 며, 집 상태 증거만 사진으로 남기고 빨리 그 곳을 벗어나라고 했다. 자초지종을 살펴보니, Final Walk-through가 길어지자 매수인 측 중개인이 귀찮은 마음에 (우리가 올 줄 생각도 못하고) 매수인에게 '알아서 매물을 살펴보라' 며 집 열쇠를 넘겨버린 것이었다. 이는 불법이다. 약속된 시간 내 중개인과 함께 매물을 보는 것은 합법이지만, 주어진 시간 외 중개인도 없이 매물을 점거하고 있는 행위는 무단침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일을 법정으로 가져가서 문제삼진 않았지만, 우리 중개인은 이 사실을 훌륭한 무기로 활용해 주셨다. 매수인 측이 과도한 요구를 할 때마다 '상기 사건을 부동산 중개인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겠다' 며 '너네가 계약을 파기해도 나는 이 매물 3일만에 팔 수 있다'며 그들을 압박했다. 그 결과 그들이 요구했던, 터무니없는 Seller's Credit 5천불 요구를 별도의 싸움 없이 자연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집을 사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중개인의 말은 '하다하다 이런 경우는 처음 봐요!' 땅덩어리도 거대하고 사람들의 성향도 엄청나게 다양한 미국에서 이민 1년차, 황당함과 당황스러움에 대비하는 강력한 백신을 처절하게 접종받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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