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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한국사람으로서 독일에서 살아가는 방법

재미없는 나라에서 죽을때 까지 재미있게 살기

by 란트쥐



나는 코로나가 절정에 다 달았을 때 정말 스트레스가 심해서, 한국으로 이직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저녁 통행금지가 스트레스도 아니었고, 이동금지나 5인 이상 모임금지 같은 규정이 문제였던 것 도 아니고 단 하나, 독일 사람들의 위생관념이 아주 약간 깔끔쟁이 인 나에게 너무나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전에는 흐린 눈을 하고 보았거나, 그러려니 했던 것 이 코로나 때 아주 많이 거슬려서 조금 진지하게 생각을 했었다. 독일사람들이 좀 더러워서 한국으로 이직하고 싶어요라고 했던 내가 이직을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휴가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연차가 다 차서 기본 휴가일수가 우리 회사 최대일수만큼 차서 일 년에 30일이 나온다. 이 일수에서 더 휴가가 늘어나려면 근속연수가 더 채워지면 된다는데 그 근속연수가 10년인지 15년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기본 30일에 크리스마스이브와 12월 31일 반차씩 하루가 회사에서 기본으로 주는 휴가 일수이고 초과근무 8시간을 휴가로 대체할 수 있다. 보통 일 년에 휴가를 35 - 40일 정도 쓰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느곳이든 도시나 마을의 중심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운다




독일은 12월 25일과 26일이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 휴일이고, 24일은 휴일이 아니다. 슈퍼도 대부분 오전 혹은 점심까지는 영업을 한다 -슈퍼마다 차이가 있으니 미리 확인하고 장 보러 갈 수 있다-

우리 회사는 12월 24일과 12월 31일에 회사에서 반차가 나오고 직원들은 의무적으로 자기들 반차를 써서 두 날 모두 쉬어야 한다. 그날 일을 한다고 해도 아마 다들 휴가를 낼 것 같기도 한데, 12월 24일부터 1월 1일까진 대부분 휴가를 낸다. 고객센터와 IT 팀의 몇몇 직원들만 돌아가면서 27,28,29,30일 사이에 한다고 들었다.




가을부터 봄이올때까진 흐리고 비오는날이(눈포함) 많다 물론 해가 떠있는 시간도 짧다



독일은 주마다 휴일이 조금씩 다른데, 크게는 가톨릭주와 개신교주 간의 휴일 차이가 있다. 1월 6일 동방박사의 날 (Heilige Drei Könige 하일리게 드라이 쾨니게)은 가톨릭주 휴일이기 때문에 보통 크리스마스 휴가를 6일까지 보내고 7일부터 출근을 하는 편이다. 이 주의 학생들 방학이 그때까지 이기도 해서 학부모인 동료들은 7일이 되어야 출근을 할 수 있기도 해서 그날이 되어야 업무들이 모두 다 돌아가게 된다.



1월에 다시 업무로 돌아오고 나면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그 해의 휴일을 체크하고 목요일이나 화요일에 휴일이 오면 금요일이나 월요일에 표시한 다음 휴가를 낸다. 우리 팀은 징검다리휴일 (Brükentag 브뤼켄탁) 에 모든 팀원들이 휴가를 내고 자리를 비우는데 우리 팀 업무가 모든 날 자리를 꼭 채우고 있어야 하는 업무가 아니라 가능한 일이다.

나는 보통 샌드위치데이 휴가와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사이의 휴가를 싹 내놓고 남은 일수로 그 해 휴가 일정을 정하는 편이다.

일 때문에 독일의 공휴일은 대부분 다 알고 있는데, 독일 통일의 날이 10월 3일이라 독일 공휴일 중에 제일 빨리 외우게 된 날이다. 8월 15일은 성모승천일 (Mariä Himmelfahrt 마리에 힘멜파트) 인데 쉬는 도시가 많지 않기 때문에 휴일로 쉬어본 적은 없다.



나는 여름에 한국을 가지 않기 때문에 동료들이 여름휴가를 갈 때 휴가 낼 일이 없는데,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해도 보통 금요일과 월요일휴가를 내서 긴 주말을 보내는 정도로 한다. 당장 그날 중요한 미팅이나 프로젝트 마감이 있지 않다면 휴가 결재를 올리고 난 뒤에 동료들에게 나 그날 휴가 간다 하고 알린다.


일주일 휴가를 가게 될 땐 팀원들과 이야기를 미리 하는 편이긴 한데 보통은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큰 걱정 없이 휴가 신청을 한다.


이주 휴가를 가게 되면 팀원들과 일정을 맞추는 편이고 -동시에 여럿 팀에서 빠지지 않게- 삼주휴가를 갈 때는 대부분 미리 티저를 하는 편이다. 그렇게 길게 휴가를 가는 건 6개월에서 10개월 전쯤 여행일정이나 큰 일정이 나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예약을 할 때 미리 나 어느 달에 삼 주간 휴가를 간다 하고 세부일정을 조율하기도 하고 그에 따른 미팅일정을 조정하기도 한다.




십년이 넘는시간동안 내 여행메이트로 활동중인 끼끼. 손에 자석을 넣는 수술을 했다-직접집도-




나는 휴일을 끼고 삼 주 반 정도 휴가를 내고 한국을 가는 편인데, 처음 삼주 휴가를 낼 때 부장에게 -그때 팀장이 부재중이었다- 나 혹시 삼 주간 휴가를 다녀와도 될까 했을 때 부장이 물음표를 백개쯤 단 표정으로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고 했다. 팀원들끼리 동시에 휴가를 가는지 확인해 보고 신청을 하면 된다고 휴가는 너의 권리이니 우리가 바쁜 시즌이거나 급한 업무를 넘겨받아줄 팀원들도 같이 휴가를 간다면 조율을 해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관이 없으니 자기에겐 사주이상의 휴가를 내게 될 때만 오라고 했다.


우리 팀장은 휴가를 삼주씩 쓰라고 부추기는 편인데, 일주일 휴가는 짧은 휴가이고 이주는 일을 잊고 푹 쉬기엔 조금 짧고 삼주를 쉬어야 일을 잊고 휴가를 즐기고 올 수 있다는 생각이라 그렇다고 했다.

팀원들 모두 공감하는 편이라 이제는 시기만 약간 다르게 이 주 반에서 삼 주 반 정도 휴가를 가는 편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한국에서 동종업계에 일하는 사람들과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삼주 휴가를 내고 싶으면 사직서와 함께 내는 게 제일 빠른 방법이라고 했다. 물론 모든 회사가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있는 업계의 한국시장은 분위기가 그러하다 하는 게 다수의 의견이었고, 더러움과 휴가 사이에서 휴가가 이겨서 나는 아직도 독일에서 외노자 시골쥐로 살고 있다.


내가 독일에서 대학을 다닐땐 남한보단 북한이 더 유명했고, 케이팝은 음지문화였으며 한류는 독일에 도달하지 못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이냐 남한이냐 하는 질문이 꼭 따라 붙었는데, 이들의 사고중심에서 변방의 아시아의 나라는 중요치 않았고 북한이 뉴스에 좀 더 자주 나왔었다.

대학원을 갔을땐 한식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좀 있어서 종종 음식을 해주거나 같이 해먹으며 한국을 알렸고, 태국으로 휴가를 다녀온 친구가 BTS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어봤었다.

그때는 내가 방탄소년단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친구가 나에게 소개를 해줬는데, 이제는 독일 라디오에 나오는 방탄소년단 노래를 듣고 동료들이 먼저 어 BTS 노래야! 하고 알려준다.

내가 아직 입덕하기전 2018년 초에 동료가 박람회에서 받은 잡지에 BTS 기사가 있다고 한국사람이니 니가 가져야 한다고 줬던 기억이 있다.




내가 면허따던날 아침 동료들에게서 받았던 사진.





이제는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한국 아이돌가수 이름이 나오거나 화장품 혹은 음식이름이 먼저 나온다. 아직까지 일본에 환상이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아 보이지만 컨텐츠 문화는 한국이 조금 더 흥하고 있는것같다. 스시가 아니라 김밥, 라이스케이크가 아니라 떡이라고 발음하는 독일인들을 보면 한글자라도 더 알려주고싶고 정보를 주고 싶은 한국인이 되어가고있다. 대학원을 다닐때 박사논문을 쓰던 일본인을 도운적 있는데, 그때 한글 문법을 독일어 + 일본어를 섞어서 알려주었다. 지금도 한자어와 독일어를 적절히 섞으면 한국어 문법을 알려주기 매우 적절해 지는데, 그때 나도 한국어 공부를 좀 많이 했었다.

그뒤로 기회가 닿으면 한국어 수업을 해 주고 있는데, 아이돌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친구들은 덕심과 방대한 컨텐츠로 인하여 한국어 실력이 매우 빨리 는다. 내가 학교 다닐때 한국이 지금만큼 유명했다면 조금은 생활이 편했을것 같아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이게 어딘가 싶을만큼 한국이 문화강국이 되어가고 있는것 같아서 너무 기쁘다.


이 느린나라에서 한국국적을 유지하며 장기거주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어떻게 사는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국적유지하는 보람을 느끼려고 영사관을 찾아가서 투표도 하고, 주위에 한국에대한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다시 알려주고 있다. 나는 한국의 기준에서 보면 진작부터 매우 궤도에서 벗어나 여러수치가 미달일지 모르나, 내 나름 재미있게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독일시골의 아시아 여자로 사는게 늘 행복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 인생 실패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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