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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지나온 모든 틈이 나를 만들었다

끊임없는 적응과 10년 주기 리셋: 해외에서 살아간다는 것

by moin

갈림길에서의 결단들

나는 한 가지 역할로 살아가기엔 너무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가능성인지도 몰랐다.

그저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한 선택들, 익숙한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섰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직업이 변하고, 살던 나라가 달라지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바뀌면서 나는 매번 전혀 다른 인생의 조각을 살아냈다.

그때마다 나는 “잠시 이렇게 살아보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 '잠시'는 이전의 나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는 시작이 되었다.

한 사람 안에 이렇게 많은 얼굴과 가능성이 있다는 걸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변하고, 그 변화를 통해 여러 삶을 살아낼 수 있으며,
그 모든 가능성은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순간부터 열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결국 나를 규정하는 건 사회적인 역할도, 외부의 기대도 아니었다.
그 가능성들을 열어두는 나 자신의 감각과 선택이었다.




변화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순간

변화 앞에서 나는 늘 주춤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낯선 도시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익숙한 관계를 끝내야 했던 순간에 나는 늘 무언가를 잃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과 맞서야 했다.

그 두려움은 나에게 자주 묻곤 했다.


“지금 이 선택이 틀리면 어떻게 할래?”
“여기서 멈추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질문들은 내 발목을 붙잡았지만, 결국 나는 한 발짝씩 움직였다.

변화의 첫 순간은 늘 어지럽고 낯설었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지나고 나면, 나는 언제나 전에 없던 나를 발견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유연한 나, 예상보다 더 강인한 나, 때로는 내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나.

그제야 깨달았다.
변화는 나를 흔들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고, 아직 모르는 나를 꺼내기 위한 통로였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변화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변화 속에서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나를 위협하지 않았고, 나는 오히려 이를 지나며

나를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10년 전,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또 10년 후의 나를 모른다.

그 모르는 시간을 살아내며 알게 된 건, 변화는 나를 흔들었지만 결코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더 나다워질 수 있었다는 것.

**‘10년 리셋’**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기록은 결국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고,
당신도 어쩌면, 그 여정을 함께 걸어준 또 다른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고맙습니다.
이 시리즈와 나의 시간에 함께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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