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nummer

EP01. 이건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 배우자로 산다는 것

by Azuree

이민을 오고난 후 약 2년 째, 계속 시댁과 배우자 관련 심리상담을 받고있다. 나는 야망이 없고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에 답답했다. 다른 배우자와 비교하며 '왜 나는 저런 사람을 찾지 못했을까'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건 'Azuree님이 열심히사는거에요. 배우자 본인은 본인 속도에 맞춰 살다가, 지금 Azuree님을 만나 본인의 세계가 흔들릴거에요'. 맞다. 결혼은 나의 세계가 흔들리는 일이다.


만으로 30살에 결혼으로 미국에 이민을 왔다. ‘미국 이민이 그렇게 힘들다던데, 남자 잘 만났네’ 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가며 결정한 이민이었다. 그랬던 만큼 미국에서의 삶이 너무 불안했다. 미국 학위도, 경력도 없는 내가 잘 살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고, 그 만큼 배우자에 대한 기대감도 깊어졌다. ‘이 사람은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모든 삶의 기반이 여기에 있으니까 나의 부족한 점을 잘 보태 줄거야.’ 라는 막연한 생각.


실제로 미국에 이민을 오니, 현실은 이상과 많이 달랐다. 내 배우자는 매우 느긋하고, 현재에 만족하고, 자기 발전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부재와 가정 경제 악화로 악착같이 살아왔던 나와는 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여유롭게 자란 그는 아직도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어린 아이였다. 소위 ‘헬리콥터 부모’ 에게서 자란 이 사람은 나와 시댁 사이를 전혀 중재하지 못했다.


한국어를 제발 배워달라는 내 부탁에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내 부모님과의 소통도 0에 달했다. 이때부터 나는 내 배우자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내 한국인 지인의 남편은 얼마를 번다던데, 어떤 사람은 한국어를 잘 한다던데, 라고 하는 내 자신을 갉아먹는 시간이 계속됐다. 이러한 생각들은 내가 미국에서 친정을 돕기 위해 주말 알바를 시작하면서 더 악화되었다.


내가 왜, 이민까지 와서 이런 손님들에게 저열한 욕설을 들으며 주말에도 쉬지 못하지? 평일에는 긴 긴 통근 시간을 참아가며 회사 매니저의 눈치를 보고 주말에는 카지노 도박꾼들에게 삿대질을 당하며 저녁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아무리 일하고 돈을 벌어도 결국 나를 위해 사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배우자와 나, 그리고 친정을 물심양면 돕기 위해 쉬지 않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 선생님께 마음을 여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상담 첫 날, 나는 처음 보는 스크린의 상담 선생님을 보며 눈물을 터뜨렸다. ‘제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죠, 저는 좀 쉬고 싶어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선생님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셨다. 그리고 얼마 전 들은 선생님의 의견은 이것이었다. ‘Azuree님은 너무 열심히 살아요. 속도가 너무 빨라요. 그런데 남편분도 자신 나름의 삶의 속도가 있었을 거에요. 그 속도를 맞춰가는 과정이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견디지 못하면 Azuree님이 그 끈을 놓아도 괜찮아요.’


선생님은 나에게 이 말을 건네기 위해 2년을 기다리셨다고 했다. 내가 기분 나빠할까봐, 선생님이 나의 인생에 대해 무엇을 아냐고 항변할까봐 긴 시간을 기다린 후. 조심스레 의견을 주셨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내 안에 무엇인가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배우자도 노력하고 있구나, 근데 단지 30년이라는 시간동안 살아온 속도가 다르기에 우리가 힘든 것이구나. 언어 장벽보다는 서로의 속도가 중요한 것이구나. 내가 그의 느림에 대해 불평할 동안, 그도 나의 빠름에 대해 불편해하고 있었겠구나.


상담을 통해 국제결혼의 장벽이 단순히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긴 시간 살아온 두 사람은 각자의 문화와 개인의 속도에 맞춰 2인 3각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배웠다. 문화가 다르니 서로를 나의 잣대로 평가하고, 속도가 다르니 중간중간 넘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결혼은 나의 속도가, 나의 세상이 흔들리다 못해 와장창 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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