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배우자로 산다는 것
비교적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자란 나와는 다르게, 배우자의 부모님은 일명 '헬리콥터 부모' (였)다- 물론 지금도. 성인이 되서 독립한 지금도 매주 찾아오기를 원하시고, 나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제쳐두고 시댁을 방문하는 배우자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소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차남만 찾는 시댁, 그리고 그걸 거절하지 못하는 배우자가 미웠고, 그럴 때마다 나만 미국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볼 때마다 'if you want'라고 하는 배우자는, 내가 뭘 하든 자신의 주관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심리 상담 후 깨달았다. 그와의 대화를 회피했던 것은 내 자신임을.
놀랍게도, 나의 시부모님도 나와 같은 국제커플이다. 시아버지는 시리아-터키 혼혈이고, 선박 무역을 위해 미국에 와서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시어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인터넷이 없을 시기, 두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면 접수로 대사관과 이민국을 직접 찾아가 결혼 비자를 접수했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ESL을 다니며 피자집에서 도우를 돌렸고, 시어머니는 클리닝 레이디로 이웃집 청소를 도맡아 하며 생계를 꾸리셨다고 했다. 그 위험하다는 볼티모어에서 상점을 운영하며 세 아들을 낳아 길렀고, 그때 열심히 불린 자산으로 지금 나름 유복하게 생활하시는 중이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했다. 시아버지의 경우 본인이 이민 1세대니까, 언어 장벽을 느꼈을 테니까, 문화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미국에서 중상류층의 삶을 일구었으니 자식에게 기대하는 것도 나름 있으실 것이라고 그가 느꼈을 과거의 힘듬을 공감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그릇이 작은 탓인지, 시댁의 모든 관심이 간섭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감정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님을 머지 않아 깨달았다.아이를 낳아라, 우리 집안 성으로 이름을 바꿔라, 너는 이제 미국인이니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다) 한국의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라. 끝도 없는 간섭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실망한 것은 시부모님이 아닌 배우자였다.
자신의 부모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정규직과 아르바이트, 외주에 지친 나를 계속 시댁에 데려가려고 했고, 자신의 친척이 나를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유 없이 공격하는 행위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딩크를 결심하고 결혼하였지만 자신의 부모에게 밝히지 못했으며 이에 대한 비난은 내가 온전히 받아 내야만 했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첫 상담, 스크린에 비춘 선생님을 보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지금에야 약 2년에 걸친 상담 덕에 배우자의 성장 과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막막했다.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왔는데,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회사에서도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고, 출퇴근 왕복 4시간은 나를 점점 나를 좀먹었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역술가에게 사주를 보며 이혼수가 있는지 물어보고, 심리상담을 지속하며 이혼 변호사를 계속 찾아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배우자와 대화를 하지 않은 것. 내 모든 불안이 배우자의 행동에 기반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말해봤자 이 사람은 바뀌지 않을 거야'라며 전혀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 깨달음은 'Azuree님이 자신의 부모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것을 본인도 알아요?' 라는 심리상담 선생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이야기 해도 안 바뀔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저 혼자 묵히고 있었어요.'
선생님은, 이혼을 알아보는 것도 좋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억울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래서 선생님과 대본을 같이 짜고 수 차례 연습한 뒤 배우자와 대화를 시도했다. 생각보다 대화가 잘 풀렸고, 배우자의 중재 기술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제안에 대해 너가 if you want라고 할 때 마다, 너는 하기 싫은데 나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 '나는 너의 부모님이 불편해. 우리 부모님과 너의 사이에서 내가 중재하는 것처럼 너도 나와 너의 부모님 사이를 중재해 주었으면 좋겠어'. 이러한 대화가 우리 사이의 얼음을 허물기 시작했다. 배우자는 말했다. 강압적인 부모님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이 그들의 니즈에 부합하지 않으면 혼났다고.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없다고.
심리 상담 덕에 시댁에서 얻은 번아웃이 조금이나마 풀렸으며, 배우자와의 관계도 개선 중이다. 아직도 티격태격 다투지만 나 혼자 끌어안고 있을 때보다는 짐을 나누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고, 혼자만의 동굴에 들어가지 않도록 나 또한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