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적응과 10년 주기 리셋: 해외에서 살아간다는 것
'나는 저런 인간이랑 일 하려고 독일까지 온 것일까?'
이 질문이 또다시 머릿속을 무겁게 짓눌렀다. 미팅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디자이너의 궤변을 듣는 순간, 깊은 허탈감이 밀려왔다. 도대체 몇 개월째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지,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라도 알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독일까지 왔던 걸까?' 이 생각은 점점 더 자주 찾아왔다.
독일에 오기 전, 나는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주를 결정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협업을 경험하고 싶었고, 디자이너로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그 기대를 안고 도착한 독일에서, 처음에는 원하던 모든 것을 찾은 듯 했다.
커리어의 한창 시기였다. 맡은 프로젝트마다 진심을 다했고, 동료들과의 협업에서도 큰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디자인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웠고,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였다. 좋은 디자인을 만들고, 함께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가는 그 여정 자체가 보람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사 내부의 분위기가 서서히 변해갔다. 처음엔 동료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는 일이 단순한 이직처럼 보였지만, 빈자리를 채우지 않는 조직의 반응에서 불안감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불안은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고, 회사의 방향성도 점점 모호해졌다.
상황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것은 팀에 새로 합류한 한 디자이너였다. 특수한 이유로 합류한건 알고 있었지만, 그 디자이너라는 사람의 실력은 발바닥에 붙어 있는데 말만 많았고, 책임 회피와 설득력 없는 주장만을 늘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말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스스로 무슨말을 하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것 같았고, 그로 인해 나 역시 집중력과 동기를 점점 잃어갔다.
그 시기는 말 그대로 ‘버티기’였다. 매일을 감정적으로 소모하며 보내는 동안, 몸과 마음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걸 명확히 느꼈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졌고, 밤마다 불면증이 찾아왔으며, 심장은 이유 없이 쿵쾅거렸다. 아침과 밤마다 어지럼증이 몰려왔고, 어느 날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 자율신경 실조"라는 말을 들었다. 일이라는 이름 아래, 내 몸이 서서히 경고음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앞으로는 더 이상 ‘참아내는 삶’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내가 디자인을 시작했던 이유, 그 설렘과 에너지를 다시 되찾기 위해서라도, 나를 갉아먹는 환경과는 단호히 선을 그어야 했다.
이러한 전환은 나 다움을 지키기 위한 리셋이었다. 타인의 기대와 조직의 흐름에 맞추기보다, 내가 나로 살 수있는 방식, 그리고 그것이 나를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그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은 디자인의 정의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예전에는 디자이너의 능력이 포트폴리오에 담긴 결과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AI 기반의 디자인 툴, 자동화된 템플릿, 텍스트 입력만으로 디자인 결과물을 뽑아내는 생성형 AI까지 등장하면서, 단순 작업은 점점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과거라면 수일이 걸렸던 작업이 몇 분 만에 처리되는 시대. 이런 기술이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웠다. '내가 해오던 일이 앞으로도 필요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디자인은 여전히 창의적인 작업이라고 믿었지만, 그 '창의성'조차 시스템 안에서 재현되는 모습을 보며, 인간 디자이너로서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AI의 발달과 디자인의 시스템화로 인해 디자이너의 많은 업무가 상향평준화되었다. 예전엔 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해야 했던 일들도 AI를 이용해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AI 기술은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몇 년 후엔 저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에 회의감을 느꼈으며,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툴을 사용해서 이런 디자인 결과물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현재는 어떤 프롬프트를 사용하면 이런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한 정보가 더 많아졌다. 포토샵의 브러시 활용법이나 일러스트레이터의 펜툴 사용법을 익히는 대신, 이제는 AI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리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 된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잘 그리는 사람', '예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정의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문제 해결자, 전략가, 사용자 경험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디자인의 범위는 넓어졌고, 단순한 시각 표현이 아닌 사용자 중심 사고, 기술 이해, 협업 능력까지 포괄하는 능력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나에게도 방향 전환의 힌트를 주었다. 이전의 역량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했다. 디자인의 본질을 잃지 않되, 시대에 맞는 도구를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필요했다. 결국 경쟁력은 '기술과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에게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 모든 고민 끝에, 나는 조용히 내 작업실로 돌아가 손으로 그린 스케치들을 바라보았다. 규칙과 제약,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표현된 선과 색채들. 어쩌면 디자인이 아닌, 예술의 언어가 내게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디자인을 완전히 놓진 않되, 내 영혼이 더 깊이 공명하는 창작의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 그것이 AI가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의 선택은 이제 삶의 전반을 재설계하는 일이다.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 우리는 단순히 ‘무슨 일을 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일만으로 정체성을 정의할 수 없는 시대다. 성과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관계, 감정, 내면의 안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워라밸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설계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과거의 성공 공식이나 외부 기준에 끌려가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기준을 새롭게 세우는 것.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리셋이다. 멈춤이 아닌 재정비, 회피가 아닌 재설계. 삶과 일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길을 다시 그리는 것.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