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3

소설 연재

by 바달



피타고라스는 두 소리가 단순한 정수비를 이룰 때 가장 조화롭게 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수비로 처음과 끝이 일치하는 순환 음계를 만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올 때 괜히 위험하게 지하철이나 버스 타지 말고 택시 타. 알았지?”

엄마는 차에서 설이를 내려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 알았어요.”

음대 건물 앞에 섰다. 매일같이 그곳에 서서 자신을 기다려주던 남자 친구를 떠올렸다. 함께 걸었던 언덕, 함께 보았던 연못. 다시 그를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변해버린 모습을 그가 보게 되진 않을까.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뒤, 그를 만나 이별을 고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눈물 한 방울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병이든 진단을 받기 전에 그렇게 해야 했다. 환자로서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와 헤어지고 싶었다.

견딜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서부터는 함께일 때에 더 외로웠기 때문이었다. 그 외로움을 꺼내어 말한 적은 없었다. 자신의 고독을 그의 어깨에 짐으로 얹고 싶지 않았다.

그와 이별하고 돌아온 날 엄마는 피아노 학원을 쉬고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와 마주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잡곡밥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한 숟가락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더니, 며칠간 먹은 음식을 다 게워 낼 것 같은 구토감이 몰려왔다. 위장에 가득 찬 슬픔이 목구멍 밖으로 넘쳐 오를 듯이 출렁댔다. 뱃속의 쌀알 한 톨까지 다 토해내고, 노란 위액까지 뱉어내고 나면 그다음엔 벌게진 얼굴로 슬픔을 게워 낼 것 같았다.

설이는 입안에 물고 있던 밥알을 필사적으로 삼키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별의 아픔 따위의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강의실 의자에 앉았다. 이제는 완전히 굽어지지도 펴지지도 않는 열 손가락은 강의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다. 얼마 전부터 노트 필기는 그만두었다. 날이 갈수록 학생들의 타자 소리와 볼펜 소리가 더 크게 귓속에 울리는 듯했다.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던 때가 불과 1년 남짓 지났을 뿐인데, 마치 머나먼 옛날 같았다.

강의실에 넋을 놓고 앉아 있다 보면 잊고 있던 사소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치곤 했다.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지내온 날들이었다. 그런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초라한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이는 학업을 포기하지 못했다. 나아갈 곳 없이 멈춘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대학교 졸업이 허상에 불과한 목표일지언정 그것마저 놓칠 수는 없었다.

설이를 이 강의실에 앉혀 놓은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잠이 부족한 몸을 일으키고, 실기고사가 끝난 뒤에도 연습실로 향했던 날들. 이토록 아무것도 없을 줄 몰랐던 미래를 향해 달려온 날들. 꿈꾸던 미래는 없었지만, 스스로에게 대학교 졸업장 하나는 쥐여 주고 싶다는 책임감이었다.

아니다, 실은 그저 그 아이가 그리울 뿐이었다. 흐릿한 시간 속을 숨차도록 달리던 그 아이, 쇠약해지는 몸에 갇혀 서서히 사라질 그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렇게 설이는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강의실에 앉아 과거의 자신을 추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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