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익숙한 사람이 있다. 나에게는 너, 너에게도 나, 그녀에게는 그, 그에게는 그녀, 그녀에게는 그녀, 그에게는 그...... 기숙사의 룸메이트와 회사 동료는 지금 나에게 익숙한 사람이고, 한집에 살고 있는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익숙한 사람이다. 더 풍부한 예는 또 뭘까. 당연하게 곁에 있는 사람들, 의심 없이 옆에 있을 사람들. 근접한 거리로 서로를 보다가도 앞을 보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지금 나에게는 아내이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관통한 사이. 남은 년도 수는 알 바 없으나, 어찌저찌 살아 내기 위해 없는 힘 쥐어짜며 살아가는 사이. 부족한 것 너무 많지만, 풍족하지 않아도 가진 것이 있어 감사한 사이. 지금은 부부인 사이.
각자의 여행을 가기 위해 나는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경비실을 지나 몇 계단 하나둘 내리면 지상 주차장이 위치한다. 거기서도 몇 걸음 하나둘. 작은 나무가 있다. 그 아래에 아내가 서 있다. 내 아내가 서 있다. 낯설었다. 익숙하게 당연하듯 매일을 한집에서 함께 사는 당신이 '너른 공터에 너 혼자 서 있는 건' 나에게 생소한 경험인가 보다. 도합 몇 년을 함께한 사이지만, 저기 멀리서 멀뚱히 혼자 서 있는 모습은 연민 한 덩이가 있는 것과 같았다. 익숙했던 누군가의 낯선 모습을 본 적 있었나.
'나'와 '네'가 함께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서로는 혼자다. 나, 나의 아내, 너, 그녀, 그, 길에서 마주할 사람, 지금도 혼자 있을 누구, 여럿이서 있지만 혼자인 누구, 혼자를 자처한 혼자, 혼자일 수밖에 없는 누구, 저마다의 사연으로 연민 한 덩이는 지금도 홀로 서 있다. 이 시간, 연민 한 덩이를 자기 자리에 놓아두고 세상에 서 있을 사람들이 어디에 있을까. 내 연민 들키지 않으려고 꽁꽁 싸매 뒀는데, 빈틈 너머 그걸 들여다봐줄 사람 있을까. "괜찮아." 한마디 선물해 줄 사람 어디 있을까. 훌륭한 그녀와 그. 그들과 그녀들. 연민 나누며 오늘을 함께 보내고 있을 모든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