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우작 Jun 21. 2022

그래서 세 시간을 기다렸나 보다

    나는 내가 태어난 곳이 싫었다. 그 이유야 너무 많은 것 같고, 개중에 굳이 한 가지를 꼽고 싶지도 않다. 조금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싫은 건 아닌 거 같기도 하다. 그냥 '좋아하지 않는다.'가 맞는 것 같다. 여전히 부모님은 거기에 계시고, 당신을 뵙기 위해서는 썩 가고 싶지 않은 고향을 가야만 한다. 가는 길의 기차 안 또는 내 차 안은 좋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약간의 설렘이다.


    내 고향 근처에는 경산역이 있다. 모든 만남을 마치고, 서울을 가기 위해 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을 만났다. 당신들을 만났던 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나뭇잎이 가장 풍성한 시기가 언제지? 그때였다. 한 그루에 붙어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잎이 "바스락스르륵" 소리를 낸다. 그런 나무가 하나, 둘, 셋. 세 그루가 있다. 한 그루와 또 한 그루는 붙어 있고, 나머지 한 그루는 조금 떨어져 있다.




경산역

    

    세 시간 전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언니와 동생이 있었다.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세 시간이 남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나도 모르게 들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세 시간이나 남았다는 것을. 고령의 동생이 고령의 언니에게 말했다. "서울 가면 심심할 텐데, 내라도 같이 있어야지, 여 와가 같이 있자. 사람도 없고 조용하이 괴않네."

    

    작은 언니는 큰 언니와 헤어지는 게 아쉬운 것 같다. 큰 언니는 그런 작은 언니의 마음을 다 아는 것 같다. 침묵의 효과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침묵이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이별의 아쉬움. 몇 분 더 같이 있는 게 소중한 것. 작은 언니는 큰 언니에게 사사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동태탕이 맛있니 맛없니. 날이 덥니 마니. 경치가 좋니 마니. 맞다. 날이 더웠다. 당신들의 대화를 거슬러 가다 보니 그때였다. 여름 비슷했다. "언니, 서울 가가 잘 지내레이, 마스크 잘 쓰고." "잘 있그레이."


    한 그루에 붙어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잎이 "바스락스르륵" 소리를 낸다. 그런 나무가 하나, 둘, 셋. 세 그루가 있다. 한 그루와 또 한 그루는 붙어 있고, 나머지 한 그루는 조금 떨어져 있다.




나무


    "승차 안내 말씀드립니다...... 서울로 가는 KTX...... 열차를 이용할 고객께서는 타는 곳 2번으로 가셔서......." 대합실이 아닌 역 바로 앞에 벤치가 있는데, 거기에 앉으면 역사 내 안내 방송 소리가 잘 들린다. 잘 들렸다. "승차 안내 말씀드립니다...... 서울로 가는 KTX...... 열차를 이용할 고객께서는 타는 곳 2번으로 가셔서......." 한 번 잘 들었는데, 또 방송했다. 배려인 것을 안다. 의무인 것도 안다. 혹시라도 못 들을 수도 있으니까. 들어야지. 탑승을 해야 하니까.


    내가 탈 열차와는 다른 열차를 탑승하는 모양이다. 그렇지, 세 시간 전에 와 계신 거니까. 나는 집에 가려고 일어났다. 한 발, 두 발, 세 발. 열차를 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나무를 보았다. 한 그루에 붙어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잎이 "바스락스르륵" 소리를 냈고, 그런 나무가 하나, 둘, 셋. 세 그루가 있었지만, 한 그루와 또 한 그루와 또 한 그루는 붙어 있었다.




나무와 그믐달

    

    KTX에서 나오는 음악이 좋았다. 가야금 소리인가. 기대감을 선물하는 음악이다. 피아노 소리인가. 적당히 듣다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만의 공간을 가졌다. 그리고 잠깐 생각했다. 언니는 서울을 잘 가셨을 거야. 동생도 집에 잘 가셨을 거야. 계단을 지나서, 대합실을 통과하고, 플랫폼까지 배웅을 하셨을까. 언니가 그냥 돌려보냈을 거 같아. 또 언제 보겠냐고 플랫폼까지 동생은 갔을 거 같아.


    역사 앞 벤치든, 플랫폼에서든, 헤어짐은 헤어짐이네. 몇 분 더 볼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가는 차창으로 고개 돌려 손을 흔들 수 있는 기회를 선물 받을 수 있는 거지. 맞다! 그게 값진 기억이었네. 맞아. 플랫폼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거나 내가 떠날 때, 앉아서든 서 서든 배웅을 할 수 있는 건 축복이야. 그것 때문에 세 시간을 기다렸나 보다. 그런 거다. 그렇네. 소중했네. 소중했어. 귀한 거야, 그건.


    내게는 익숙한 듯 한강이 잘 보였다. 영등포를 지날 때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짐을 조심스럽게 챙기려고 시도한다. 나는 집에 잘 갔다. 그 당시에는 서울에 살 때니까 서울역에서 집까지 빨리 갔던 거 같다. 언니는 동생이 생각났을 거다. 동생도 언니가 생각났을 거다. 그리고 나는 떨어진 부모님과 가족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나는 고향에 계신 당신들을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른 공터에 너 혼자 서 있는 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