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마주한 동해는 여전했다. 재작년, 업무차 강릉에서 한 달가량 지냈었다. 여름의 청량감을 온몸에 끼얹으며 오고 가는 사람들 속 생기들을 내 양분 삼아 그렇게 시간을 보냈었다. 시간은 흐르고, 그때의 애인은 아내가 되었고, 이동 수단이었던 자전거는 자동차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에 맞춰 걸으며 하루하루 바뀐 내가 있었다.
재작년, 자전거로 강릉을 다니며, 경포해변은 끊임없던 코스 중 하나였다. 홍제동에 숙소가 있던 터라 경포해변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좀 더 부담 없이 매일 바다를 보기 위해 안목해변을 찾았다. 이제는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가 생겼으니, 기동력이 한참 좋아졌다. 오죽헌의 기억이 좋아서 허균.허난설헌기념관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강릉선교장에도 가본 터라, 아내와 나의 선택지는 초당동에 위치한 그곳이었다.
홍제동에 들러 한 달 동안 묵었던 숙소를 보았다. "그때의 나는 정말 행복했어. 낯설어 외로웠지만, 그 외로움이 좋았어. 서울에 가면 당신이 있으니까. 버틸 만했어." 기억과 추억의 경계를 잠시 오가고, 우리는 빗길 가운데 속초로 향했다.
보통 이동을 할 때에는 서로 항상 묻는다. 거의 그러지 않을까. "화장실 안 가도 되겠어?", "응, 괜찮아." 출발할 때 괜찮던 화장실은 어느 시점이 되면 안 괜찮아진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경유지를 찾았다. 처음 가 본 하조대해수욕장과 중광정해수욕장은 신선했다. 차가 없이는 쉽게 오갈 수 없던 곳이 양양이었던 것 같다. 올해 5월, 캠핑을 위해 찾은 송전해수욕장 부근을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사람들 참 젊다.", "여보, 우리도 젊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젊음을 드러내고 느끼며, 양양은 경유되었다.
메나리한옥마을에서 설악산을 바라보았다. 운무는 뒷산을 가렸지만, 우리에게 더 많은 상상을 선물했다. 고즈넉한 한옥 위의 기와들이 특이해, 카페 사장님께 여쭤보았다. "이곳의 지붕은 통일되어 있네요?" 이곳이 한옥 마을이라 그런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메나리농요라는 전통 노동요가 마을 주민에 의해 전수되고, 농가 대부분이 개량식 전통 한옥과 돌담길로 이루어진 농촌 마을이라고 한다. 이상과 현실은 분명 다를 테지만, 이러한 한옥에서 살고 싶은 나의 이상은 여전하다.
거듭 느끼지만, 기억에 남는 장소에는 줄곧 기억에 남는 음식이 함께했던 것 같다. 2박 3일 일정에서의 첫 음식은 역시 면이었다. 올해 6월, 춘천에서 처음 접했던 명태식해의 기억이 참 좋아서 이번 역시 명태식해가 들어 있는 막국수를 택했다. 연곡면에 위치한 그곳에서 우리는 물과 비빔을 하나씩 시켜 나눠 먹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을 쓰고 싶지는 않은데, 이 말을 대체할 문장이 아직 마땅치 않다. 양양한 강릉과 속초. "그래, 강릉과 속소는 양양하다." 그곳의 바다는 한없이 넓다. 그리고 앞날이 한없이 넓고 발전의 여지가 많은 아내와 나는 추억을 양분 삼아 충실히 하루를 살아간다. 이렇게 형용사 '양양하다'는 우리의 삶에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