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며 되물어 온 고민이 있다.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일까. 남들의 주목을 받는 삶을 지향하기에는 내게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점이 너무 많다. 몸을 낮춰 살아가기에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일찍 하는 결혼은 아내나 어머니로서의 행복은 주었지만 ‘나 자신’의 온전한 행복은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혼의 30대는 이도 저도 결정하지 못한 채 갈림길 사이에서 방황만 하다가 시간을 버리는 것 같은 때도 있다.
몇 년 전에 미국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오랫동안 내가 하던 업무와 비슷한 업무를 하시던 학계의 선배님이 계셨다. 그 해 하반기에 퇴직을 하신다고 했다. 미국 정부에서 계속 일해 온 백인 남성이었지만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의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얗게 물든 백발을 휘날리며 하루에 1시간은 조깅을 하실 정도로 건강한 신체와 신입 직원들에게 시스템을 알려줄 수 있는 지성이 빛났다. 국적 불문하고 나이가 든 분들이 타자를 독수리 타법으로 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는데 이분의 타자 실력은 내가 한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빨랐다.
다른 분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막내인 나는 영어를 조금 잘한다는 죄로 그분의 대화 상대가 되었다. 왜 그분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대뜸 물었다.
“Mr., How can I live well in a conservative company like here?”
(선생님, 이런 딱딱한 회사에서 제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나요?)
딱히 그런 질문을 준비해 오지도 않았는데. 한국 사람에게는 물어도 한국인으로서 살 수 있는 답변이 나올 테니 어쩌면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질문이 문법적으로 정확한 의미를 전달했는지도 지금은 잘 모르겠다. ‘잘 사는 것’은 내 인생의 질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북미대륙에 살 수도 있었을지도 몰랐던 취직 전의 경험도 있었다.
그 질문을 듣자마자 그분이 씩 웃었다. 백인에 남성, 정부에서 일해 탄탄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결혼을 해서 아이들도 장성했고 손자 손녀와 편히 쉴 날만 남은 이룰 것 다 이룬 노인에게 묻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질문이었을까? 내 입을 탓하는 사이 그분이 말했다.
“깊은 것을 원하면 깊이 빠져들고, 그게 아니라면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살아가세요. 중요한 것은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허, 하고 한숨이 나오는 것 같았다. 아, 하는 깨달음도 함께였다. 그 선배님이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할 때 내게 짓는 표정이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다. 마치 내가 늘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삶을 살아온 것을 꿰뚫어 본 것 같은 의미심장한 웃음이었다. 깊이 빠져들라는 말 보다 많은 것을 보고 살아가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 한국 사회에서는 하나를 진득하게 파기를 원한다. 전공을 정하면 그 전공으로 직업을 구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긴다. 한 직장에서 오래 있거나 한 계열에서 오래 있는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기고,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다. ‘용두사미’라는 말도 자주 쓴다. 공감할 때도 있지만 가끔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힘들어서 그만두면 안 되는 걸까? 무리해서 그것을 계속하면 나중엔 더 하기 싫을 수도 있지 않은가.
얇고 넓은 인생도 행복할 것 같다. 모든 인간의 삶은 다르고 어떤 사람은 굵고 짧은, 어떤 사람은 화려한, 어떤 사람은 잔잔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니 앞으로 내 인생의 방향은 약간의 흔적을 남기는 정도의 ‘얇음’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넓게’ 퍼트리는 삶으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되 무리하지 않는 삶.
그것을 알게 된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거나 인정받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