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발령이 났다.
회사가 가장 바쁜 시기였다. 선택지도 없고, 통보는 발령이 나기 사흘 전에 받았다. 허탈했다. 존경하던 과장님이었는데 그날만큼은 냉정하고 매서운 정치인으로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통보를 받았다고 하면 안타까워만 했을 텐데. 마음속이 텅 비어서 회사가 싫어지는 와중에도 차곡차곡 이사와 컴퓨터 파일 정리 일거리가 쌓이기 시작했다. 월세 방도 마침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부동산과 통화했다. 내 방은 이틀 만에 새로운 계약자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내 서울 생활이 끝났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예상하던 인사도 아니었고, 부서에 적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누구나 ‘저 여기서 일해요’라고 이야기하면 ‘힘들겠네, 하지만 제일 좋은 부서네.’라는 답변을 주는 부서여서 자부심도 강했다. 올해는 이런 성과를 챙기고, 다른 동료 분들께는 업무를 배우기로 했었다. 그런 것들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 아무도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는 섭섭함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는 송별회가 열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꾸역꾸역 참석했다. 바짝 익어가는 돼지고기를 앞에 두고 다른 직원으로부터 내가 자원해서 가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애매하게 말을 덮었다. 긍정하면 도망치는 것으로 보이고, 부정하면 패배자로 보이니까. 차라리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나왔다면 그 사람들은 나를 동정하기라도 했을까?
과장님과 둘만 남은 자리에서 차라리 지방이나 제주로 보내달라고 했다. 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부서를 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술에 얼큰히 취한 얼굴로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서도 분명히 배울게 많을 거라고 했다. 그곳에 있으면 본청으로 올 기회도 훨씬 빨리 생길 거라고. 부서의 과장님이 나를 굉장히 잘 봐주었다고. 와닿지 않는 위로의 말은 정해진 자리를 틀고 싶지 않아 하는 인사권자의 귀찮음도 느껴졌다.
왜 그렇게 성가시게 하니, 그냥 하라는 대로 해.
딱 그 정도의 어투와 눈빛이었다.
‘회사 휴직하고, 오로라나 보러 갈까.’
한 번도 휴직이나 퇴직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 순간에는 내게 멈춤이 절실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어 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는 채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반강제적인 여유와 함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