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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Dec 05. 2020

내 안의 깊은 사람들

#잃지않는것 #타인의죽음

 그런 감각 있지 않은가. 이 전화가 왠지 좋은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지 않은 나쁜 예감. 날씨도 좋고 그 전까지도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왠지 이 전화를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 말이다.     


 “누나,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어.”     


 큰일이 나지 않으면 전화 한 통 없던 고향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난인 줄 알았다. 설을 얼마 앞두지 않은 날이었다. 일단 울산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어머니랑 아버지는 먼저 가 계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 겪는 가까운 이의 죽음이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작별인사 한마디 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다음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서 든 생각이 있다. 내게도 이제 그 일이 가까워 온다는 것이었다. 세 살 남짓 차이가 나는 큰집의 막내언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이었다. 결혼한 큰오빠 내외와 큰언니 내외도 도착해 있었다. 큰언니는 이미 울다 지쳐 한번 쓰러졌다고 한다. 큰오빠도 정신없이 조문객을 맞이하고는 있었지만 큰아버지의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는 했다. 나는,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떡하지. 첫날의 울음은 오로지 큰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면 둘째 날부터는 내 머릿속을 온통 그런 생각들이 지배해버렸다.      


 외할아버지는 이미 팔순을 넘기셨고, 이제 나를 조금씩 잊어 가신다. 외할머니도 이곳저곳이 아프셔서 병원을 자주 찾으신다. 아버지도 큰아버지의 형제답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늘 그것을 걱정스러워 했다. 어머니는 건강을 챙기시는 편이지만 요즘 부쩍 여기저기 고장 나는 일이 잦았다. 내가 성장한 만큼 그들은 늙어간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겪는 것과는 달랐다. 누군가의 부친상이나 모친상이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늘 주변인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내 곁을 떠나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전화가 두려워졌다. 나는 평소와 다른 시간에 오는 주변 지인들의 연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받고는 한다. 혹시 그 전화가 누군가가 아프다는 전화 일까봐. 누군가가 먼 길을 떠났다는 소식 일까봐.      


 내 곁의 사람들이 더 소중해졌다. 나의 청춘은 그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누군가의 떠남 앞에서 한없이 약자가 되어서 결국 ‘있을 때 잘해’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얇고 넓은 내 인생에 깊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내 곁의 사람으로 하자고. 그런 마음으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늘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올랐을 즈음 만났던 심리상담사 선생님은 내게 이야기했다. 내게는 꽤 단호했던 판정이었다. 당신의 스트레스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무리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그들이 소중하고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무리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마음속에는 늘 이기심이 있어서 내 욕심을 다른 사람에게 밀어붙이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도 안다. 그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할 것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끝까지 잡는 것은 좋지만 누군가 놓은 끈을 미련으로 잡고 있다 보면 다른 끈들도 놓치게 될 거라는 의미였다.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 하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실천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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