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온뒤 Mar 14. 2021

비 예찬

It's raining!

 아주 오래간만에 비가 오는 날이다. 비 오는 날이 좋다. 신발이 더러워지고 바지가 온통 젖어도, 사실 가방 안의 물건들이 젖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나는 늘 비 오는 날이 좋다. 왜 가방 안의 물건들이냐고? 아주 높은 확률로 그 안에 책과 다이어리가 들어있어서 젖고 나면 복구가 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여름을 유독 싫어했던 나는 장마가 끝나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장마가 끝난다는 것은 곧 다가올 폭염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워진 여름 땅과 숲을 식혀주는 비가 좋았고, 맞아도 감기에 걸릴 걱정은 크게 없는 여름 비도 좋았다. 물론 그렇게 맞으면서 놀다가 감기에 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겨울 어느 날 따스하게 내리는 비는 봄이 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어쩐지 염세적인 감정을 만든다. 약간의 우울감과 차분해지는 내 마음을 느끼면서 바깥을 바라보거나 우산 속에서 산책도 한다. 밤에 이렇게 비가 내리면 가로등 아래에서 희뿌옇게 빛을 반사하는 빗방울을 하염없이 볼 수 있다. 


 억세게 내리는 소낙비는 늘 시원하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듯 강수량계의 숫자가 한정 없이 올라가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망치로 못을 두들기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그 비를 맞으면 목욕탕에서 낙수를 맞는 것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높은 확률로 그런 비는 바람과 천둥번개가 함께한다. 나가서 서 있는 것 자체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손을 내밀어서 아플 정도로 굵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본다. 하늘에서 움직이는 구름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때로는 내리는 듯 마는 듯하는 이슬비도 있다. 안개가 낀 것 같은데 이게 비인지 아닌지 조금 애매할 때가 많다. 바닥은 분명히 촉촉이 젖어 있는데 물이 고여있지는 않고 온 세상이 물방울에 뒤덮인 모양새다. 빗방울이 허공에서 춤추는 것 같기도 하다. 


 비 오는 날이 좋은 사람은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라는데 그렇게 치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상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일 년 내내 비가 계속된다면 몰라도 '종종' 정도로 내리는 비는 우울한 기분까지 씻어주니까. 모든 사람이 비 오는 날을 싫어하면 그것도 이상한 일 아닐까?



사진: pixabay @sasint

매거진의 이전글 돈 안 받고 야근하라는 그대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