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온뒤 Mar 18. 2021

회사의 도서관

 내가 다니는 회사는 지방 발령이 잦은 회사.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기에 본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본부에서 열심히 회사를 다녔을 때, 내가 가장 사랑하던 곳은 매점도 사무실도 휴게실도 아닌 회사의 도서관이었다. 다른 도서관처럼 책의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다. 하지만 전공에 관련된 책을 아주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교양도서도 제법 있기에 늘 지루하지 않다. 판매하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발간한 도서들도 구비되어 있어서, 전자문서 형태로 발간된 것들이 아닌 오래된(보통 2000년 이전의 문서들) 문서를 찾아보기 좋다.


 어쩐지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걸어서 갈만한 도서관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도서관도 버스로 4~5 정거장이었는데 한번 갔을 때 무인대출기의 대기열에 일곱 명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허, 허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많았고 인기 있는 책들은 손상되어 오거나 몇 주씩 예약이 꽉 차 있는 경우도 있어서 내게는 썩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사의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우선 가입비가 없고, 이틀이나 삼일쯤은 연체해도 눈치만 보일 뿐 별다른 페널티가 없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회사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도 종종 알게 되고 내가 원하는 책을 신청할 수도 있다. 전자책을 위한 예산도 편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용객이 많지 않지 않다 보니 책들이 다 깨끗했다. 어떤 책들은 내가 첫 대출자인 책도 있었다. 특히 날씨와 기상, 기후에 관한 책이라면 예산이 내려올 때마다 자주 구매 신청을 받았다. 다른 도서관이라면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자연과학도서들이 우선순위 가장 앞쪽으로 당겨져 왔을 때 느끼는 희열도 느낄 수 있다.


 앉아서 읽을만한 공간도 없고 근무자는 한 사람이라 그분이 계시지 않으면 책을 빌릴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다. 하지만 하루쯤 늦게 반납한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니 담당 직원분이 계셨는지 아닌지의 여부만 알면 되었다. 정확하게는 구석에 위치해 있는 그 도서관을 찾아가 문을 살짝 당겨보면 되었다. 문이 열려있다면 반납이 가능한 상태이겠고 문이 잠겨있다면 산책 나온 셈 치고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니까.


 유독 그곳을 방앗간 드나드는 참새처럼 드나들었다. 그런 날 희한한 사람 쳐다보듯 하는 직원들도 꽤 많았다. 당시만 해도 외부 업체 사무실과 흡연실이 함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한대 피러 온 것 아니냐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곳에 도서관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아직 많을 것이다.


 지금은 그곳까지 가지는 않는다. 일하는 곳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본부 건물에 갈 일이 생기면 익숙한 직원분과 인사도 하고 어떤 책이 들어왔는지 한 번씩 둘러보기도 한다. 외로웠던 회사 생활, 출퇴근길에 활력소가 되어준 회사의 도서관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 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