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서로서로가 무서워진 요즘에도 공항은 붐비고 있었다. 김포, 김해, 제주 할 것 없이 국내선 항공기 가격이 저렴해진 탓도 있을 것이고 봄이 다가오는 날씨에 사람들의 활동이 늘어난 탓도 있을 것이다. 400명이 넘는 확진자 중에 이 비행기에 탄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혼자 있을만한 장소를 찾아 휴대폰과 함께 조용히 기다렸다. 비행기는 언제나 그렇듯 만석이었다. 비행기의 공기는 외부 공기와 계속 순환을 반복한다고 하니 밀폐된 공간은 아니겠지, 하는 자기 합리화를 해 본다.
국내선은 대부분 50여분의 짧은 여행이다. 비행기의 고도도 낮고 이륙 시의 붕 뜨는 감각이 익숙해질 만하면 착륙 준비를 시작한다는 방송이 들려온다. 그리고 국제선보다도 더 일찍 시작하는 안내방송도 있다. 비행기를 타면 항로의 시작 즈음에서 기장의 안내가 들려온다. 대부분은 (목소리 느낌으로만) 30대 중반에 거 40대 초반 사이의 중저음의 목소리를 지닌 남자의 목소리다. 일 년에 왕복으로 열 번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대부분은 하나의 항공사를 이용하는 나는 타는 요일도 비슷하기 때문인지 들어봤던 기장의 목소리가 반복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그날은 늦은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오래간만에 가는 고향이지만 가는 길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힘들고 몸은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뛰어다니느라 녹초가 되어 있었다. 비행기가 지연되지 않은 것 만을 감사하며 얼른 도착하기만을 바라고 있을 때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저는 여러분을 부산까지 모시고 가는 기장입니다."
30대가 갓 넘은 듯한, 전혀 긴장하지 않은 느낌의 나직한 목소리. 처음에는 승무원 중 가장 높은 분이 말씀을 하시는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세상에, 기장이라니!
여성 기장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내게은 아직 경험하기 힘든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여기장'이라는 단어를 붙일 뻔했다. 그것도 여러 번. 반성하는 마음가짐으로 고백한다. 나는 내 생에 여성 기장이 타는 비행기를 경험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내 안의 기장 이미지가 당연한 듯 남성 이어서다. 외국에서 탄 다양한 비행기에도 여성 기장은 한 번도 없었다. 외국에서는 여성 기장의 비율도 늘고 있다고 들었는데 조금 아쉽기도 했다.
멋진 모자와 제복에 달린 마크. 여성 기장의 모습은 얼마나 멋있을까? 또, 항공업계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서 그분은 얼마나 많이 노력했을까. 유리천장이 꽤 얇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보기에 항공업계는 굉장한 남성 위주의 사회였다.
오늘 만난 기장처럼,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성별의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만난 남자 보육교사와 간호사들은 모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고, 여성 정비사분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곳까지 꼼꼼하게 살펴주는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륙도 착륙도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해 내신 여성 기장분에게도 존경심을 느낀다.
얼굴을 마주 칠일은 거의 없겠지만 오늘도 힘내고 있을 세상의 모든 여성 기장님들께 소소하게나마 응원의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