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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Apr 03. 2021

눈 오리 만들기 좋은 날


 지난겨울은 그야말로 눈 오리 천국이었다. 도로를 막는 펜스 위에 놓인 몇 마리의 눈 오리 사진을 봤던 사람들은 올해 눈을 맞으며 눈사람, 눈 오리, 심지어는 눈으로 만든 미니언즈까지 공장처럼 찍어냈다. 어딘가로 쉽게 놀러 갈 수도 없는 사람들은 집 앞에 내리는 눈이라도 즐겨야 했을 것이다.   

   

 눈 오리는 만들고 싶고 추운 것은 싫었던 나는 전문가로서 눈을 정확히 구분하기로 했다. 눈 오리를 만들기 좋은 눈과 아닌 눈. 그리고 오리 양산 시간대와 기피 시간대로.     


 노란 눈 오리 집게 하나를 가지고 아파트 단지를 누비는 30대가 조금 철없어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마스크와 롱 패딩으로 가리고 안경까지 끼고 나면 동네 키 큰 고등학생과 그리 달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라고 믿고 싶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발바닥에 핫팩을 하나씩 붙이고 주머니에도 하나를 넣은 채 장갑까지 끼면 눈도 얼음도 두렵지 않은 완전무장 패션이 완성된다.


 우선 눈이 오는 바로 그 순간에는 오리 공장을 돌리지 않는 것이 낫다. 눈은 금방 쌓이는 데다 뭉쳐져 있는 눈에 잘 달라붙는 성질이 있다. 거기다 만들어낸 오리들은 높이가 10cm 남짓이라, 눈이 쌓여버리면 오리의 각진 자태가 눈에 덮여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눈이 잠시 멈춘 틈을 타 나갈 때도 기온을 확인한다.     


 보통 사람의 손이 닿아도 눈이 금방 녹지 않는 온도 정도가 되려면 영하 3도에서 0도 정도가 딱 좋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더 좋다. 850 hPa(지표에서는 1500m 정도) 기온이 영하 8도 이상에서 영하 5도 정도라면 잘 뭉쳐지는 눈을 만들 수 있다. 혹시 지상기온이 영하 10도 이하일 때 눈이 온다면, 당장 눈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는 다음날 오전에 햇볕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다. 눈이 살짝 녹으면서 뭉치기 좋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도 날이 춥지만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면 방법은 분무기뿐이다. 물 1리터에 소금 반 숟가락 정도의 양을 녹여서 분무기에 채운다. 소금물은 아주 훌륭한 접착제다. 소금을 섞지 않은 물로 했을 때는 생각보다 효과가 좋지 않아서, 그 후로는 소금물을 애용한다.      


 눈이 오는 시간대가 그때그때 다르니 쌓이면 즉시 놀러 나가는 것이 좋기야 하지만 기왕이면 오전 7~10시 사이, 태양 고도가 낮아 눈 녹는 속도가 조금 느린 아침이 최적이다. 오후 한 시가 넘으면 눈이 10cm 이상 쌓이지 않은 이상 대부분 녹아서 질척해져 있기 마련이다. 기온이 낮다면 녹으면서 얼어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만들기도 한다.      


 유독 눈이 잦았던 올해는 나 외에도 눈을 가지고 노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아 뿌듯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가 추위에 떨면서 뭉쳐지지 않는 눈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있다가 단시간에 고효율을 낼 수 있는 시점을 계산했다. 완성된 오리 왕국을 사진으로 남기고 유유히 떠나기도 했다. 이제 겨울 시즌은 갔으니 오리 집게는 창고 한편에서 여름잠을 자며 다가올 눈 소식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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