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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Mar 06. 2021

구름 위를 걷는 삶

하나하나 뜯어보고 싶은 구름들

 구름 위에 누운 듯 한 느낌. 구름 위를 걷는 삶. 모두 현실에서 이룰 수 없을 만큼 편하거나 천상계를 의미한다. 하얗고 몽글거리는 솜과 멀리서 희게 피어오르는 구름은 솜 같은 구름, 구름 같은 솜으로 동일시된다. 비행기 없이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어릴 적에는 구름 위에 누우면, 구름 위를 걸으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고는 했다. 사실 지금도 종종 꿈에서 구름을 헤치고 나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꿈속의 구름은 조금 끈적한 크림을 저어나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물속에서 팔을 휘젓는 느낌이 든 것을 보면 스노클링을 하던 기억이 남아있었나 보다. 


 나는 월평균 수입이 전국 직장인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다. 연차가 10년이면 회사에서는 이미 중견 직원이라 한다는데 회사에서의 내 위치는 아직도 하위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사적으로는 주식이 대박 나지도, 부모님이 숨겨두신 강남 30층짜리 건물도 없는 그저 그런 서민의 삶을 산다. 아마 앞으로도 초대박을 치는 일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내가 구름 위를 걷는다니. 누가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다.


 그러니 조금, 비유적이 아닌 쪽으로 표현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출근해서 내가 하는 일은 오늘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래에서도 위에서도. 출근하며 하늘을 관찰하고 동쪽에 어제의 예상과는 다른 구름이 있진 않을까 훑어본다. 회사의 내 컴퓨터를 켜고 가장 먼저 접속하는 페이지에는 10분 전쯤에 촬영된 한반도의 구름들이 나타난다. 총 천연색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흰색과 붉은색, 푸른색이 적절히 섞인 느낌의 구름이다. 여름이라 해가 일찍 뜬다면 조금 더 다양한 색의 선명한 사진이 나온다. 그렇다. 위성사진이다. 기상청 직원이 되면서 만들어진 습관이다. 업무의 종류에 따라서 굳이 기상자료를 보지 않아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업무를 맡은 적도 있지만 손에 익은 동작들은 익숙하게 클릭을 반복한다. 멍하게 마우스로 영상을 훑어보다가 아차 싶어서 원래의 업무로 돌아간 적도 많다.


 기상청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가장 큰 메리트 중 하나를 꼽자면, 원하는 시점에 한반도가 찍힌 위성사진을 고화질로 잔뜩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19년에 쏘아 올린 천리안 2A위성은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도 훨씬 해상도가 좋고 촬영 주기가 짧아서 촬영된 사진을 영상처럼 시간순으로 돌려보면 타임랩스 같은 느낌도 난다. 하늘 위에서 구름을 보는 그 느낌.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바로 그것 말이다.


 그렇게 구름의 하루 변화를 관찰하다 보면 내가 구름 위를 지나다니며 예보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도 한다. 어릴 적에 생각했던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심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일까. 무협 소설에 나오는 허공답보나 해리포터에 나오는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주문 혹은 님부스 2000 같은 빗자루 같은 것을 이용해 구름 위 까지 올라가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다면! 추울 것이 분명하지만 날씨를 예보하는 일을 했던 사람에게는 더 없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일하기가 싫을 때, 힘든 일이 있을 때 관측을 핑계로 당당하게 밖에 나가 하늘을 본다. 예보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특권이다. 오늘 하늘에는 금방 흩어질 권운 무리가 서쪽을 덮고 있다. 곧 날씨가 흐려지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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