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구해야 하는 순간이다. 몇 번 집을 구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이사는 힘들다.
최근에는 삼사년간 이사를 한 적이 없다보니 어떻게 견적을 내야 할지도 잘 모르겠던 것이다. 이번에 독립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짐도 늘어난 데다, 이번에는 가져가야 할 짐과 분리해야 할 짐을 잘 구분해서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상태. 그러다 보니 포장이사이기는 해도 반포장이나 일반이사와 비슷한 형태가 되어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곳저곳 중구난방으로 돌아다니며 알아보다가, 비교적 대단지 아파트와 치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동네를 찾아냈다. 회사와는 40분 정도 거리이기는 해도 버스가 자주 다니는 지역이다. 다만, 지하철이 조금 멀어서 걸어서 15~20분 정도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그나마 두개의 지하철 노선이 겹치니 접근성이 나쁘지는 않은 편인가 보다.
처음으로 생각한 곳은 회사 근처의 재건축 단지였다. 84년에 지어진 그 아파트는 나름대로 수리도 많이 되어있었지만 현관문을 강하게 띄운 흔적이 남아있었다. 집 구조도 특이해서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았다. 아파트 외관이 곧 쓰러질 것처럼 허름하고 숲이 너무 무성해 밤에는 제법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2억 도 안 되는 가격에 14평의 아파트를 사용하는 셈이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번째 집을 보러 가기 전 생각한 곳이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과연, 신축답게 깔끔하고 예쁜 집이었다. 하지만 신축이라 등기부등본이 안 나와있다는 점은 정말로 큰 단점이었고, 내부 평수가 실평수로 7~8평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그랬다. 회사와는 가깝기는 했지만 지하철역은 위치적으로 애매했고 무엇보다 그 인근에 아직도 개발이 전혀 되지 않은 지역이 남아있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집 구경은 잘했다.
사실 처음 집을 보러 가기 전에 본 동네가 현재 고려하고 있는 동네였다. 가격도 2억, 크기도 나쁘지 않았는데 나름대로 수리가 되어있기는 했으나 인테리어가, 너무, 미묘했다. 아주, 굉장히라고 할 만큼이었다. 붙박이장을 설치는 해 놓았는데 디자인은 장롱에 가까웠고, 내부 색감도 통일되어있지 않은 데다 세탁기를 숨길 다용도실 공간이 없어서 거실에서 세탁기가 보이는 구조였다. 생활공간에 그런 구조를 싫어하는 내게는 조금 곤란한 집이었다. 하지만 가격과 장소의 메리트가 크다는 점이 장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이 동네의 다른 단지로 넘어왔다. 하루 동안 집은 4개를 봤는데 결국 처음 본 동네로 돌아오게 되다니. 그나마 이곳이 전세매물이 가장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맨 마지막 집은 내 마음에 쏙 드는 구조였다. 공사도 다 되어있고, 젊은 취향으로 인테리어까지 완료되어 있는 데다가 베란다 크기나 구조도 나쁘지 않았다. 가격은 가장 높았다. 그런데, 그 집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 놓은 후 세입자가 돌연 계약 연장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지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근 5년을 미뤄놓았던 부동산의 세계는 여전히 어려웠다. 공부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동산을 믿을 수 없다는 점이 좀 컸다. 지금까지 연락하시는 분 또한 내게 잘 대해주려고 하긴 하지만 사람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가계약 500만을 걸어놓은 집은, 인테리어 상황 같은 것들이 물론 매우 마음에 들기는 하였으나, 가격이 시세보다는 조금 높은 편이었다. 그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근저당 말소조건을 통해서 대항력도 만들 수 있고, 다른 특약에도 동의했다. 안심전세대출이나, 전세금반환보증도. 하지만 문제는 후순위 대출을 할 만큼 집주인의 현금 유동성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어느 대출사에서 대출을 할지도 모르는데 나로서는 위험부담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너무 컸다. 무섭기도 했다.
가계약금을 걸어놓고 이제 끝인 줄 알았는데, 후순위 대출이라는 변수가 끼어든 것이다. 부동산에는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다. 가계약금을 걸어두었지만, 사정이 그러시다면 대출을 받지 않으면서 좀 더 편하게 후순위 대출을 낄 수 있는 집으로 하신 것이 아니냐고.
며칠은 잠이 잘 오지.. 않는 것 치고는 피로에 지쳐서 잠에 들었다.
피곤한 현실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