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서른에 알게 된 사는 법
취미로 가는 재봉틀 공방이 있습니다. 감염병 사태로 여행을 가지 못한 탓에 시작한 소소한 자기 계발입니다. 그곳에서 만든 옷을 SNS에 사진으로 올렸더니, 댓글은 ‘넌 참 열심히 사네!’가 반, ‘도대체 못하는 게 뭐야!’가 반 정도였습니다. 이실직고하겠습니다. 제가 좀 이것저것 많이 건드리긴 합니다. 꽤 열심히 살고 있거든요.
조금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습니다. 취미로 하는 일들을 가만히 세어보면 일주일에 열 개가 넘습니다. 회사 일은 별개로 하고 있죠. 빨리 끝날 때도 있습니다만, 오늘처럼 책에 들어갈 글을 쓰는 날이면 두 시간이나 세 시간을 고민하다 한 글자도 못 쓰는 일도 있습니다. 다만 그 모든 일들이 나를 망치지 않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그렇게 바쁠 때도 느긋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집안에서 하는 것들은 할 수 있는 한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면서 해결하죠. 최근 가장 좋아하는 집안의 배경음악은 가수 선우정아 님의 <뒹굴뒹굴>입니다. 일상의 마음을 잘 표현한 가사를 찾기란 힘든 일인데 아주 취향을 저격하는 노래입니다. 특히, ‘도망가고 싶어서 살벌한 현실에서’라는 부분입니다.
서울에서 해뜨기 전에 출근해서 해 지고 나서 퇴근해 보았다면 꼭 들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하루 종일 그늘을 만들 정도로 커다란 빌딩 속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서만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 노래가 절실해집니다. 노래만큼 게으르게 하루를 보낼 수는 없지만 취미들로 바쁜 시간이 제게는 일상에 쉼표들을 만들어 내는 순간들이 됩니다. 컴퓨터와 숫자가 아니라 흙과 천과 실과 식재료들을 만지는 시간입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도시에서 자랐지만 늘 나무와 꽃, 동물과 흙길을 좋아하는 시골과 친한 아이였습니다. 조금 게으르고 필요한 타이밍에만 일을 시작하던 그런 사람이었죠. 그런데 마치 인격이 바뀐 것처럼 빠른 승진과 화려한 성과를 위해 잘하라고, 열심히 하라고 스스로 채찍질했으니 망가지지 않을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꽤 심한 강박과 약간의 우울증과 아슬아슬한 무기력증 정도로 견뎌낸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환경이 바뀌니 몇 달 만에 그 증상들을 모두 이겨낼 수 있을 정도였지요.
좋은 사람과 좋은 환경은 사람을 바꿉니다. 공익광고 같지만 정말로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들, 여유가 있는 환경에서 저는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글을 잊고 지냈는데 저의 힘들었던 시절을 조금이나마 글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승부욕에 불타오르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꼭 해 보아야 할 경험이라는 말도 자주 합니다. 다만, 그것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 내가 ‘너무’ 열심히 인지는 않은지, 잘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지는 않는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을 엉망으로 만드는 ‘열심’과 ‘잘’이라면 그것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서툴고 부족한 쪽지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힘들 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2020.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