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의 끝,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자주 마주치는 모자(母子)가 있다.
(사실 모자 관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엄마는 빈 휠체어에 아들 가방을 올려놓은 채 끌고 있고, 교복을 입은 아들(중학생으로 추정)은 땀을 뻘뻘 흘리며, 보행기에 의지하여 힘겨운 걸음을 내딛고 있다. 아마 몸의 절반이 마비가 된 듯하다. 소아마비 환자이지 않을까? 걷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엄마의 지도하에 매일 걷기 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2~3번 정도 마주쳤을 때는 딱하다는 감정밖에 없었다. 그런데 4번, 5번, 6번 계속 마주칠 때마다 생각이 많아졌다. 중학생인 저 친구가 성인이 되면 삶이 더 나아질까? 소아마비 환자로서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잘 살 수 있을까? 지금은 엄마가 옆에서 도와주고 있고, 아들을 지켜주고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몸으로도 인생이 이렇게 고단한데 장애를 안고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저 친구에게는 걷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로서 그가 만나게 될 또 다른 역경과 고난이 주는 고통은 지금보다 10배, 100배 이상 아플 것이다.
비장애인이 저들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런 다짐은 해본다.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가 겪고 있는 일이 아니라고 시선을 돌리지는 않겠다고. 저 엄마와 아들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지금보다는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올해 언젠가 김예지 의원의 국회에서 한 발언은 다시 한번 감동을 준다.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코이의 법칙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작은 어항 속에서는 10㎝를 넘지 않지만 수족관에서는 30㎝까지 그리고 강물에서는 1m가 넘게 자라나는 그런 고기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기회와 가능성, 그리고 성장을 가로막는 어항과 수족관이 있습니다. 이런 어항과 수족관을 깨고 국민이 기회의 균등 속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강물이 돼주시기를 기대한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기회와 가능성이 박탈되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삶의 의지가 꺾인다. 누군가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그런 마음가짐을 요구하고, 포기하지 말라는 건 선을 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 연민, 응원보다도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국회와 정부가 움직인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