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Things Last

Rachel's - Last Things Last

by B Side



0.






1.

‘더 라스트 오브 어스 (The Last of Us)’라는 게임은 내게 인류 마지막의 순간을 체험하게 해주었다. 게임 속 인류멸망의 묘사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이 죽거나 좀비로 변한 세상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일부는 도적이나, 게릴라가 되었고 아직도 정부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누군가는 군인들을 동원해 감염자를 색출하고 통제하는 세상이다. 조엘(주인공)은 이 암울한 세상에서 모두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이고, 도와줄 사람도 믿을 만한 사람도 없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지켜내야 하며 게임 속 챕터 제목의 표현대로 ‘짐짝’ 같은 엘리(또 다른 주인공)도 책임져야 한다. 게임은 시종일관 폐허와 지하도, 모두 떠나고 좀비만 득실거리는 마을과 학교를 누벼야 한다.


괴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오직 식욕만이 남은 좀비가 된다는 설정은 이미 흔한 소재지만, 나는 왠지 이런 세상이 조만간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 이미 슬그머니 와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게임에서처럼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좀비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바이러스는 많으며 인류 스스로 식물과 동물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런 영화 같은 날이 절대 오지 않을 거라 믿는 것도 영화 같은 일이다. 뉴스에서, 인터넷에서 이미 우리는 좀비들을 보고 있다. 다만 그 좀비들은 인간의 살을 먹는 대신 돈을 먹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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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결혼할 때부터 아기는 내게 어떤 숙제 같은 것이었다. 평생 안 낳고 살 자신은 없지만, 낳아 기를 자신도 없는. 아기를 간절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낳지 않기로 결정하지도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흘렀고 아이가 생겼다. 아내의 임신소식을 알았을 때, 나는 이제 적어도 어떤 고민 한 가지는 안 해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마음. 태어날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 그리 좋은 세상이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을 다 건다 해도 세상이 좋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기 때문에 더 미안했다.


나는 찬란한 미래, 좋은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하루아침에 수질이 좋아질 리 있겠는가? 지구 온난화가 멈추고, 기온이 자기 자리를 찾으며, 빙하가 녹기를 멈추겠는가? 노동자들의 권리가 안전하게 보장을 받으며, 성, 인종,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차별이 사라지겠는가? 갑자기 모든 나라들이 전쟁하기를 멈추겠는가? 이 모든 일들이 그대로인 채로 과연 찬란한 미래가, 좋은 미래가 가능하겠느냐고. 그러니까, 인류는 지금 마지막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아니, 인류의 태동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질주이고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질주를 멈추는 일이 아니라, 그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일일 것이다.


아이와 함께 살며 새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 있다. 내 아이를 보면서, 그리고 주위에 같이 커가는 모든 아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부모, 선생, 어른 따위의 꼰대 같은 마음들을 버리자. 아이들은 멸망해 가는 인류의 마지막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다.



3.

내가 밴드 Rachel's를 처음 알게 된 건 1996년 음반 <Music For Egon Schiele>를 통해서였다. 앨범 재킷이 에곤 실레 그림이었는데, 당시 에곤 실레 그림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커버를 보는 순간 ‘사야 겠구나’ 생각했다. 이 앨범은 음반 매장에 ‘록’ 코너에 꽂혀 있었고 나는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밴드 정도로 이 밴드를 생각했다. 집에 와서 처음 시디를 듣는데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밴드가 전혀 아닌, 피아노,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클래식에 가까운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실내악 같은 음악이 나에게는 굉장히 새로운 록음악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이 밴드를 좋아하게 되었다.


2003년 음반 <Systems / Layers>는 이들의 현재까지의 마지막 앨범이자, 이 밴드의 곡 중 유일한 보컬 곡 ‘Last Things Last’가 수록돼있는 음반이다. 이곡은 Shannon Wright라는 가수가 보컬로 참여했으며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라앉아 있다. 기승전결이라 부를 수 있는 드라마틱한 구성을 가진 곡도 아니며, 고음의 보컬도, 현란한 연주가 있는 곡도 아니다. 고요하고 우울한 3분 37초짜리 곡이다.


우울하고 고요하게 3분 37초를 보내는 일은 꽤 힘든 일이다. 그리고 요즘처럼, 10초, 아니 5초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몸은 스마트폰을 향하지 않던가.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면서 과자를 씹는 동시에 가려운 등을 긁는 일은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음악만을 3분 37초 듣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한번 실험해 보시길!) 그런데 음악은 그렇게 들어 볼 일이다. 핸드폰, 태블릿으로 걸어가며 음악을 듣는 것이 요즘 아주 흔한 풍경이지만, 집중에서 음악을 들을 때 오는 감동 같은 것이 있다.

나는 이 곡에 나오는 피아노, 현악기, 타악기, 그리고 가수의 목소리는 합쳐진 하나가 아닌, 각 각 독립된 하나로 3분 37초를 향해 걸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마치 인생처럼.

그리고 3분 37초 후에 오는 것은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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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s++Layers+Systems+Layers.jpg



4.

흔한 게임이나 영화처럼 마지막은 그렇게 극적으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늦게 배운 도둑이 밤새는 줄 모르듯 그렇게 서서히 마지막으로 갈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을 향한 그 끝없는 질주를 멈출 수 없다면, 나는 그 질주 안에서 최대한 빈둥거리고 싶다. 그 질주의 시간과 다른 시간을 살고 싶다. 흙을 매만지는 일이 즐거운 일임을, 사람들과 만나서 수다 떠는 것이 의미 있는 일임을, 집에서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 일이 얼마나 깊이 있는 일인지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며 같이 경험하고 싶다.


오늘 만져보지 못한 흙 위로 내일 아스팔트가 덮일지도 모를 일이고, 오늘 못 만났던 사람이 내일 어디론가 먼 곳으로 떠나갈지도 모를 일이니까.

오늘 빈둥거리지 않으면 ‘여유’를 모른 채 매일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니까.


같이 경험하고 싶은 또 한 가지.

세상의 모든 음악 끝에 오는 침묵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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