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스포일러 주의
1.
염력을 뒤늦게 보았다.
2.
연상호 감독은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돼지의 왕> <사이비>는 시궁창 같은 세계 안에서 주인공들이 허우적거리는 영화였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했었던 <부산행>도 연상호 감독 작품 치고는 매우 대중친화적이라 그렇지 희망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좀비가 판치는 세상, 그곳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의 희망이 뭐 그리 찬란할 수 있을까?
3.
많은 사람들의 혹평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나는 <염력>이 꽤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걸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혹평과 비난을 받아야 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이 영화는 연상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따듯하고 어떤 면에선 예쁘고 착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4.
<염력>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혹평과 비난, 때론 분노의 이유를 알 것 같기는 하다.
우선 연상호 감독의 영화 중 <부산행>만 보고 <염력>을 봤을 사람이라면 적잖게 당황했을 가능성이 많다. 혹은 배신감 같은 것도 느꼈을지 모르겠다. <부산행>은 일단 판타지다. 그리고 그 세계를 벗어 날 수 없다. 좀비는 현재까지 영화(드라마)나 만화에만 등장한다. 실제 세상에 있을 리 없는 설정과 재난이고, 그걸 스크린 밖에서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묘사도 현실사회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만, 좀비 영화라는 필터로 한번 걸러져 보는 거라 훨씬 보기 편 했을 수 있겠다. 오락으로 즐길 수 있었던 영화다.
하지만 염력은 그것이 힘들다. 염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요즘 유행하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인공 같은 인물을 가지고 남평 상가(여기서 용산참사를 떠올리기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로 간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있었던 비극과 마주 서야 한다. 안전하고 재미있을 것 같았던 오락이 한순간에 힘들고, 혹은 껄끄럽고, 또는 이해 안 되고, 누군가에게는 화가 나는 뉴스로 돌변한다. 갑자기 스크린이라는 안전막이 걷히고, 머리 아픈 시사 사회문제를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익숙하게 봤던 인물이 설명하고 있는 부조화.
5.
용산참사의 그날,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늘을 날고 자동차도 휙휙 날려 버리는 초능력(염력)으로 세계평화를 위해 봉사하기보다 맥주 서빙을 좀 하면 어떤가?라는 엉뚱하고 착한 상상에서 이영화가 출발한 것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했다.
6.
많은 사람들의 혹평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나는 <염력>이 꽤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걸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혹평과 비난을 받아야 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