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2019)
*** 스포일러 주의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악당의 목표가 '돈' 일 때 허무함을 느꼈었다. 나는 좀 더 그럴싸한 이유나 사연이 있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엔 고작 돈 때문에 수많은 인물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게을러 보였다고나 할까? 악당의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기 힘들어서 손쉽게 둘러대는 이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어른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되다 보니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돈이 얼마나 중요한 목표이며 이유가 될 수 있는지. 특히 지금과 같은 냉혈한 자본주의 시대에서 더더욱.
살인청부 회사 사장은 계약서를 썼다. 요원이 퇴직을 하면 퇴직금을 주되 퇴직하기 전에 요원이 죽으면 퇴직금은 고스란히 회사가 가져간다. 그래서 요즘 퇴직을 앞둔 요원들을 죽이는 중이다. 퇴직금 주기 싫어서.
이 뻔뻔스러운 이유가 좋았다. 거대한 흑막이 있어서도, 어떤 사적인 인연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사용자 입장에서 고액의 퇴직금이 나가는 게 아까워서가 주인공을 죽이려는 이유라니!!
이 단순하고도 명쾌한 이유가 영화를 빛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사장은 마땅히 주어야 할 돈을 주기 싫다. 그리고 퇴직을 앞둔 전설의 킬러는 그 돈을 받기 전에 일단 자기 목숨부터 구해야 한다. 이렇게 판이 깔리니 폭력적이고 때론 과해 보이는 액션도(그래서 나는 더 좋았지만) 설득력이 생긴다. 그깟 돈 줘버리면 되지 않겠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이 갖던 적게 갖던, 100원이든 1억이든 돈이란 물건이 신기해서 액수가 별 의미가 없을 때도 있는 것 같다. 금액에 상관없이 아깝기 시작한 돈은 어떠한 무리수를 이용해서라도 메우고 싶은 게 인간의 어리석음이 아닐까?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좀 아쉽다. 주인공은 왜 사장에게 돈을 달라 말하지 않는 걸까? 사장의 목을 치는 일은 입금 후에 해도 늦지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