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시대
네이트 실버의 '신호와 소음'이라는 책을 보면 빅데이터가 정보를 수집할 때 신호와 소음을 구분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정해져 있어요. 집값이 내려가면 다들 집을 사려고 하죠. 그런데 안 사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빅데이터는 소음으로 봐요. 저는 소설가입니다. 신호보다는 소음에 관심이 많아요. 평소에 열심히 출퇴근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지하철을 탔다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인간의 무리는 상업적인 데이터가 될 수 있지만, 개별적인 인간은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_나영웅
'존 오브 인터레스트'라는 영화를 봤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관심 지역에서 일어나는 극히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잔인했던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다. 수용소 소장의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의 모습 뒤로 깔리는 소각 연기와 총소리, 그리고 비명. 하지만 나는 이런 불편한 배경 요소를 1회 차 시청에서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일종의 '소음'으로 치부한 채, 러닝 타임 동안 어째서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영화의 전통적인 서사를 벗어난 구성에, 두 눈의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의 메인 서사는 '무관심 지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당시의 역사적 사건에만 한정된 표현이 아닌 듯하다. 알고리즘으로 지배당한 삶을 살아가는 요즘,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과 비교해 우리의 '인터레스트'는 넓어졌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려하고 자극적인 쇼츠의 뒤편으로 사라져 가는 소음은 얼마나 많을까.
아,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소음이 있다. 바로 층간소음. 이 소음은 다른 소음과는 달리 매우 치명적이며 누군가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리고 동시에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대체로 위층에서 비롯되는 층간소음에 예민하며, 웬만한 소음이 아닌 이상 아래층의 소리는 위층에 도달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오늘도 발밑의 목소리를 발 구르는 소리로 덮은 채, 천장을 향해 나무라기 바빴던 것은 아닐까. 소음이 비명이 되어 바닥을 뚫고 올라오기 전까지 말이다.
누군가의 천장이 곧 누군가의 바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벽 하나를 종잇장처럼 얇게 만들기도,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두껍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오늘도 수신자를 찾지 못해 길을 헤매는, '아웃 오브 인터레스트'의 수많은 소음들에 귀를 기울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