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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인 Sep 24. 2022

소리와 어둠과 차의 순간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나만큼(때로는 나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신뢰가 되고, 믿을 수 있는 친구의 한 마디는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서울의 어느 이름 모를 옥탑의 공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은 고원. 어느 무대미술가가 마련한 전시 공간이었다. 무대미술가 여신동은 ‘무대’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감각 경험을 디자인하는 창작자이다. 내가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던 시기에는 주로 연극 무대를 디자인했지만, 머지 않아 그는 뮤지션의 콘서트 무대를 디자인하거나 자신의 이름을 건 전시를 열기도 했다. 훗날 그에게 더욱 관심을 가졌던 건 그가 연출가로서 연극을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무대미술을 하는 사람이 기획하고 연출한 작품은 기존의 연극과 어떻게 다를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행보들을 보며 어쩌면 그는 나와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극, 콘서트, 전시, 무대미술가, 연출가, 작가··· 사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명칭에 불과하다는 것. 그저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있고, 그것을 어떠한 형태로 만들어야 종래의 목적에 닿을 수 있을지, 그것을 만듦에 있어서 나는 어느 부분에 집중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 때로는 연극의 무대미술가로, 콘서트의 무대연출가로, 전시의 작가로, 연극의 연출가로 자신의 역할을 변모하는 사람.

   옥탑의 공간은 그런 그를 닮아 있었다. 전시라 불리지만 그 어떤 것도 전시하지 않는 기묘한 공간. 친구의 예상대로 나는 그 공간에 사로잡혔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감각이 이런 거였구나, 깨달으면서.


공간은 크게 두 개로 나뉘었다. 대기공간과 체험공간.

   전시는 한 명, 최대 두 명의 관객만을 허용했다. 공간은 오로지 그(혹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었고, 약속된 한 시간 동안 누구도 그(혹은 그들) 방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다음 예약자는 준비된 대기공간에 머물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의자 두 개와 시원한 물, 향수, 인생의 해답을 주는 책**, 안내장이 있었다.


우리 모두는 매일 야트막한 산 하나를 오르는 여행자와 같습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혹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자리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각자의 산에 오릅니다.
 
어쩌면 이 여정은 자신의 본 모습을 찾거나 평안함에 이르기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중략)

숨이 차기도 하고 어디로 왜 가야 하는지 흐릿해지기도 하는 여행길에서 고원은

당신의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로 가는 길에 자리한 쉼터입니다.


안내장에 적힌 글을 읽고 고개를 드니 넓은 창 너머로 내가 지나온 좁은 골목들과 가파른 계단들이 보였다.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전시는 이미 시작되었구나.


검은 옷을 입은 안내자의 뒤를 따라 체험공간으로 입장했다. 그곳은 다시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소리와 명상의 공간, 어둠과 명상의 공간, 차와 명상의 공간.


소리와 명상의 공간은 온 벽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오로지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공간. 그 가운데에는 폭신한 방석이 하나 놓여 있었다. 단 한 명의 관객이자 수행자인 나는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감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 진공의 상태. 그리고 진공을 감싸는 싱잉볼 소리. 소리는 자신이 탄생한 지점을 빠르게 벗어나며 멀리 퍼져나갔다. 자신의 탄생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 존재는 약해지고 느려졌지만, 끝내 사라지지는 않았다. 반복되는 소리의 탄생과 나아감은 곧 흰색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안내자는 안쪽 벽 안에 위치한 좁은 공간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곳은 온통 어둠. 검은색의 공간이었다. 성인 한 명이 누웠을 때 알맞은 크기인 검은 공간은 관을 연상케 했다. 죽음에 드는 마음으로 나는 그곳에 몸을 뉘었다. 안내자는 내 머리맡에 있던 향을 피우고 내 머리에 헤드폰을 씌워주곤 조용히 사라졌다. 신비로운 소리를 들으며 암흑 속에서 눈을 감았다 뜨는 행위를 반복했다. 자연스레 어둠이 눈에 익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약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빛은 공간의 3분의 2 높이에 닿아, 누워있는 내 눈의 바로 앞에 넓게 펼쳐졌다. 빛의 영역 안으로 흰색의 연기가 들어섰다. 피어 오르는 향. 무용수의 몸짓을 바라보듯 연기가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지켜보다 이내 충동적으로 손이 뻗어 나갔다. 내민 손 끝에 향이 만들어낸 흔적이 닿았다. 흩어지고 부서지는 연기.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만졌지만 만져지지 않는 흰 연기들 사이로 두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피어 오르는 향에 온몸의 신경을 집중했다. 함께 춤을 추는 마음으로.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우리의 손이 잠시 닿았음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꿈처럼.


안내자는 잠이 든 사람을 깨우듯 나를 불러 일으켰다. 어둡고 좁은 공간을 빠져나오니 밖은 빛과 색이 가득했다. 마지막 공간은 차와 명상의 공간. 좌식으로 된 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안내자와 나는 마주 앉았다. 우리 앞에는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통창이 있었다. 창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나무 테이블 위에는 다도가 준비되어 있었다. 안내자는 차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한 후 말없이 차를 내렸다. 뜨거운 물을 부어 다기를 데웠고 데워진 다기 안으로 따뜻한 차가 담겼다. 나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양의 차가 내 앞에 놓였다. 안내자는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기를 바란다며 마지막 말을 남기곤 일어섰다. 그리고 창을 드리우던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무대의 막을 열듯이.

   눈앞에 풍경이 펼쳐졌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이. 옅은 하늘. 무심히 흐르는 구름. 가느다란 전기선. 빽빽이 들어찬 지붕들과 창문들. 자동차 소음. 아이들의 웃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연약한 풍경 소리. 멈춰있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온한 모습으로 도시의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전시가 보여준 마지막 풍경이자 유일한 풍경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이곳에 앉아 하염없이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전시는 시간을 담지 않았다. 전시에는 오직 공간과 순간만 존재했다. 그것은 빈 공간. 탄생과 함께 소멸해버리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저 지금 존재하는 것들을 보고 느끼는 것. 그것이 전시가 보여준 ‘감각하기’의 방식이었다.

   존재하는 것들에게 시와 분과 초는 언어로 규정지은 규칙일 뿐이다. 이동하는 구름, 전기선 위에 앉은 새, 달리는 차와 사람들은 영원하지 않다. 보았다 생각할 때, 잡았다 여길 때 그것들은 이미 사라져있다. 하지만 계속 존재하고 있다. 어딘가에서, 어느 순간에나.


채움과 비움. 극단에 있는 두 단어가 주는 의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것을 떠올려야 할만큼 너무 많은 것을 채우며 살고, 그러므로 비워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일 테다.

   나 또한 그러했다. 무대를 채웠고, 박물관의 전시공간을 채웠고, 영상의 타임라인을 채웠고, 지면을 채웠다. 집을 채웠고, 옷장을 채웠고, 책장을 채웠고, 핸드폰을 채웠다. 전화번호부를 채웠고, 스케줄러를 채웠고, 지갑을 채웠다. 그 안에 담기는 수많은 이야기들, 장면들, 사람들. 고민과 번뇌들. 우울들. 피로들. 충동의 감각들. 온전하고 싶다는 열망들. 이 모든 것들이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나(우리)는 무엇을 채우고 다시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그 채움과 비움, 비움과 채움의 고리 안에서 진정으로 유효한 것은 무엇인지.

   전시의 유일한 관객이자 수행자인 나(우리)는 눈을 감고 향을 맡으며 때로는 죽음 가까이 다가갔다가 다시 깨어나 고요하게 차를 마셨다. 그리고 눈앞의 풍경을 마주했다. 나와 당신이 사는 세상을.


나는 알고 싶다. 내가 앉기 전 이 자리에 앉았던 당신은 이곳에서 어떤 풍경을 보았을지. 무엇이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었을지. 비움으로 채워진 이 공간에서 당신은 무엇을 비워내고 다시 무엇을 채웠을지.

   전시가 만들어낸 공간 안에서 당신은 그저 어떻게 존재했을지.




아쉽게도 내가 해당 작품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작품이 막을 내린 후였다. 공연 정보에 따르면, 연극은 ‘연극의 일상성’을 탐구하고자 연극의 기본 요소라 여겨지는 ‘무대’를 극장이 아닌 일상공간 위에 세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행위라 할 수 있는 ‘식사’의 과정을 연극의 주요 서사로 삼는다. 일상의 공간에서 하는 일상적인 행위. 그 안에서 연극은 어떤 형태로 자리하고 있었을까. 누군가의 일상적인 삶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이미 너무도 익숙한 감각인데, 그것이 연극 안에서 벌어질 때 관객들은 어떤 다른 감각을 느꼈을까. 언젠가 작품이 다시 공연되어 내 물음에 대한 연극의 답변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기를. 작품의 제목은 <pan123mE1>이다.


** 마음 속 질문을 생각하면서 손이 이끄는 대로 책의 한 페이지를 펼치면 그곳에 적힌 문장이 인생에 대한 해답이라 말하는 어설프고 이상한 책




전시 정보


전시 <고원(高原)- Go One Hour LOOP>

일시 : 2022.3.30 ~ 오픈런

장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 11다길 39

연출/시노그라피 : 여신동

음악 : 오혁

사진 : 백도현

엠비언스 사운드 디자인 : 임서진

내레이션 : 우정원

협력 : 남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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